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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조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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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조형전

국민대학교 조형전
조형대학의 이념과 교육성과는 조형학부 출범 이후 각 학과의 학생작품들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대학 차원의 종합디자인 전시회로 기획된 ‘국민대학교 조형전The Exhibition of College of Design, Kookmin University’을 통해 통합적으로 발표할 수 있었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전교생이 참여하는 조형전은, 대학 본부의 전폭적인 지원, 대규모의 종합적인 구성, 교 수와 학생 간의 혼연일체의 열정 등에 의해 대학의 최대행사로 자리 잡았으며, 1976년 조형학부 출범과 같은 해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14회에 걸쳐 개최되었다. 각 학과의 출품작들 속에 반영된 새로운 교육 체계와 내용은 국내의 건축, 디자인, 공예 분야의 교육계와 현장으로부터 큰 반향을 이끌어냈으며, 초기의 3년에 걸쳐 계속된 지역 도시 순회전은 조형대학과 국민대학교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획기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조형전의 개최는 조형학부 초기에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고취하기 위한 정규 수업 이외의 자율적 창작학습 프로그램이었다. 교수들은 회의를 거쳐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리고 대학을 가장 빨리 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조형전을 선택했으며, 이를 대학 본부가 수용함으로써 조형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조형학부가 출범한 해인 1976년에 부임한 정시화 교수는 조형전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형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작품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첫째, 전임교수의 의욕적인 학생지도이다. 정규수업시간 외에 자발적으로 조형전 준비기간 동안 학생들의 작품창작 지도에 몰입하는 일이다. (중략) 조형전 준비기간 동안 학생들과 함께 야간작업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학기 중의 학점중심 교과수업은 원리학습이기 때문에 주어진 학기 안에 완성도 있는 결과까지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조형전을 위한 수업은 학기수업의 연장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배운 원리를 실제사례에 시뮬레이션 해보는 과정까지 교수가 직접 지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성취감과 실력은 당시 타 대학 학생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도 일취월장했다.

둘째, 1970년대의 대부분의 대학은 실습실과 기자재와 관련하는 한 실습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국민대학은 조형전을 계기로 개인의 작업 공간, 공동 워크숍, 기자재 등은 다른 어느 대학보다 앞섰기 때문에 조형대학의 교육환경은 지금까지 타 대학의 모범이 되고 있다. 현재 조형대학의 건물은 각 학과 학생들의 개인 스튜디오임과 동시에 공동 워크숍, 그리고 작품전시장으로서 종합 디자인 센터가 된 것은 모두 조형전의 컨셉트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셋째, 조형전의 발의는 비록 조형대학의 교수들로부터 비롯되었지만 대학본부의 예산지원과 행정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규석 총장이 지원한 조형전 예산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으며, 전적으로 학생들의 작품제작과 조형전 디스플레이를 위해서만 사용되었을 뿐 조형전을 위한 일체의 교수 인건비에는 스스로 그 어떤 예산도 편성하지 않았다. 이것은 지금까지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다.”또한 당시 조형학부의 부수언 교수는 조형전에 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조형전은 1학기와 여름방학에 준비하고 가을에 오픈했는데, 준비기간에는 디자인 계열 교수들이 대부분 학교에서 생활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갔다 올 정도로 열심히 했다. 조형전 준비 기간에는 학생들도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잠자리는 본인들의 책상 위였다. 마치 군대생활과 같았다. 전시 장소는 미도파 백화점이었는데 많은 학생들과 디자인 지망 고등학생들이 전시회를 보러 왔다. 여기서 힘을 얻어서 지방 순회전을 하게 된 것이다. 광주, 전주, 대구, 부산 등을 번갈아 순회전을 했다, 당시만 해도 지방에서 그러한 전시회를 볼 기회가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렇게 조형전은 계속되었다.”1)

국민대학교 개교 30주년을 기념하며 출범한 1976년의 1회 조형전은 서울, 광주, 부산, 대구, 전주에서, 이듬해의 2회전은 서울, 대구, 광주, 대전, 춘천, 연이어 1978년 3회전은 서울, 광주, 마산, 대구, 청주 등에 연속적으로 개최되면서 전국의 주요 도시들에서 당시까지 생소했던 디자인 중심의 조형세계와 창작물을 종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으며, 지방의 많은 고등학생들로부터 조형대학에 대한 선호도와 지원율을 크게 끌어올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1981년에 개최된 4회 조형전부터는 약 3년마다 정기적으로 개최되었으며, 장소 역시 서울에 한정되었는데 7회 조형전까지는 한국디자인포장센타 전시장에서, 이후에는 교육현장인 조형대학의 전시장과 실기실을 활용하여 전시회, 학술행사, 공연행사, 고교생워크숍 등의 종합적인 행사로 개최되었다.
출품작은 재학생들의 수업결과물을 위주로 하되, 매 전시회마다 채택한 전시주제를 해석하는 기획 작업을 병행함으로써, 디자인교육에서 요구되는 사회성과 시의성을 반영하고 이를 교육적 콘텐츠로 삼았다. 한국성과 디자인방법론을 부각한 ‘한국인, 한국’ 시리즈(1·2·3회), 환경문제를 다룬 ‘그린디자인’(8회)2), 디지털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Cydex’(9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고취한 ‘소수를 위한 디자인’(10회)3) 등이 대표적인 예로, 이들 시의적 주제에 대한 성찰과 이를 표현한 작품을 통해 디자인의 사회적 공여와 실천적 태도를 고취했다. 2010년에는 해외 최초의 조형전이 북경 칭화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역대 조형전
회차 전시회명 연도 장소
제1회 한국인의 손 1976 미도파백화점 장미홀(서울), 전남일보사 전일회관(광주),
탑 과학미술관(부산), 동아백화점 비둘기홀(대구), 풍남백화점(전주)
제2회 한국인의 눈 1977 미도파백화점 장미홀(서울), 홍명미술회관(대전),
동아백화점 6층 화랑(대구), 학생회관 1층(광주), 시립문화관 대회의실(춘천)
제3회 한국의 조형미 1978 한국디자인포장센터(서울), 학생회관(광주),
학생과학관(마산), 동아백화점(대구), 청주문화원(청주)
제4회 인간의 의지와 생활문화의 창조 1981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전시관
제5회 조형전(무제) 1984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전시관
제6회 조형2000 1987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전시관
제7회 디자인시대정신 - 하이테크 디자인과 로우테크디자인 1990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전시관
제8회 Green 21 1995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9회 Cydex ’98 1998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0회 소수를 위한 디자인 2001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1회 나눔 - 디자인교육과 실천 2004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2회 디자인 - 새로운 파트너쉽 2006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3회 From Logic to Magic 2010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해외조형전: 중국칭화대학교 미술대학갤러리
제14회 IM 2013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5회 디자인 잇다 2014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6회 Artificial Nature 2019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7회 MetaDEx:Meta-Design Experiment 2022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8회 A(x) : Generating Next AI 2025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조형관별관, 형설관, 본부관 별관


건축학과 서상우 교수의 조형전 관련 메모, 1992




다음 글은 1977년 정시화 교수가 교내 신문인 국민대학보에 기고한 사설의 전문으로, 정 교수는 “당시 대학 전체가 적극적으로 조형전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조형의 개념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기고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1977년 국민대학보, 사설 〈제 2회 조형전에 붙여서〉

우리는 ‘웅비 국민대학’의 기치를 높이 들고 개교 3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학술제, 예술제, 체육제를 성공적으로 끝맺은 바 있으며, 금년 31주년을 맞이하는 대학축전에서는 북악인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더욱 알차고 진지하게 진행하고 있다. 자칫 형식적인 축제 분위기로 흐르기 쉬운 것이 대학 축제인데, 우리의 경우는 아주 조직적이고, 자치적이며 질서정연하게 거행되어 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작년의 축전이 이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이러한 축전 가운데에서도 대외적으로 또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것이 조형학부의 조형전으로서 여러 가지로 그 의의가 크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학과, 생활미술학과의 도자공예전공·금속공예전공, 의상학과, 장식미술학과의 공업디자인전공·상업디자인전공 4개 학과 6개 전공의 남녀 학생들이 창작한 작품들이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대구·광주·전주에서 순회 전시하였으며, 이 계통의 전람회로는 그 규모나 내용에 있어서 예외가 없었던 것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으며 국민대학의 이미지를 선양하는 데 크게 이바지 하였던 것이다.
성공적으로 끝맺었던 작년의 전람회에 이어 13일부터 23일까지의 서울전에 계속해서 11월 27일 까지 대전·대구·광주·춘천에서 개최되는 제2회 조형전이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길 희망하며, 이 기회에 우리는 ‘조형’의 의미를 다시 음미하고 조형전의 의의를 피력함으로써 북악인의 성원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먼저 이해되어야 하는 것은 조형이라는 용어가 생소한 말이거나 또는 전혀 새로운 용어는 아니라는 점이다.

돌이켜 보건데 1960년대 초반부터 정부의 정책이 생산교육의 이념을 보다 강조함에 따라 예술교육에 있어서도 지금까지의 그리기 중심의 미술교육에서 만들기 중심의 조형교육을 강조하게 되었고, 그때 이후 개편되었던 미술교과서에서도 특히 이러한 점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소위 응용미술학과의 지망생이 급증하였으며 각 대학에도 응용미술계학과가 신설되어 왔던 것이다. 사실 응용미술이라는 용어는 이론상으로는 타당한 용어가 아니지만 그 때 이후부터 생활미술, 장식미술, 응용미술이 학과 명칭으로 공식화됨으로써 사실상 더욱 통념화 되어버렸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형이라는 용어는 표현이라는 용어와 비교함으로써 더 쉽게 그 내용을 이해 할 수 있다.
표현적인 것을 ‘그리기’에 비유한다면, 조형적인 것은 ‘만들기’에 비유할 수 있다. 미학적인 논의에 깊이 들어가지 않는 한에 있어서 조형이란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기’를 주안으로 하는 실용예술을 실현하는 분야를 의미한다. 우리대학의 조형학부가 바로 그렇다. 집 만들기(건축), 공예품 만들기(도자, 금속공예), 옷 만들기(의상), 공업 생산품 만들기(공업디자인), 포스터, 캘린더, 포장 만들기(상업디자인)와 같은 그리기를 주안으로 하는 미술은 아닌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 미의 구극성이나 절대성을 추구하는 일면이 있고, 미의 효용성 또는 공리성을 추구하는 일면도 있으며, 양자의 결합을 추구하려는 가설도 존재할 수 있지만 적어도 우리들이 의미하는 조형이란 미의 효용성을 집약적으로 추구하는 실용미술의 분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들이 인습적으로 생각해 오던 미술의 개념으로는 우리의 조형전은 이해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소위 순수미술에서 획득된 미의 원리로써는 이해되지 않는 형태들인 것이다.
나아가 산업이나 실용에 응용한다는 피상적인 의미의 응용미술의 개념으로도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의 사회구조나 산업, 또는 현대인의 생활의 리얼리티 속에 내재하는, 현대의 생활 그 자체가 요구하는 새로운 실용미학의 추구가 바로 현대조형의 목적이며, 조형학부가 연구해 나가는 방향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대학의 조형학부는 오늘의 시대가 절실히 요청하고 우리의 사회가 긴급히 요청하는 실용 미술학과만으로 구성된 조형대학의 체제와 특성을 갖추고 있는 명실 공히 디자인 대학인 것이다.
끝으로 조형에 대한 이해 못지않게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조형전이 비단 조형학부의 행사로 생각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이다. 물론 조형학부의 학생작품으로써 이루어지는 전람회 이긴 하지만 이 전시회에 나타난 작품, 그것을 제작 할 수 있는 환경, 과정, 지도방법, 내용, 의식의 흐름 등이 국민대학 전체의 교세나 학교 환경, 학습 분위기가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라는 의미를 갖게 하며, 그러한 것을 상징적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형학부만의 행사는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학이 안정되고 면학 분위기가 가장 바람직한 상태가 아니면 이렇게 체계적이고 순수한 창작품들이 창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창조교육을 심화하는 한 표본으로서의 국민대학을 조형전으로서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훌륭한 전시회가 될 수 있게 한 학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도해 주신 교수 및 강사, 그리고 진지한 창작 의욕을 보여준 학생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