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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과 디자인의 관계
건축대학이 조형대학에서 독립하기 전 조형대학의 영문이름은 College of Architecture & Design이었다. 굳이 번역하자면 ‘건축과 디자인대학’이다. 이상하다. 한글이름에는 없 던 Architecture라는 단어가 영문이름에는 등장한다. 물론 ‘조형’이 ‘디자인’의 적절한 번 역어가 아님은 모두가 아는 바이지만 적어도 국민대 조형대학에서는 ‘조형’과 ‘디자인’이 같 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흥미로운 추리가 가능하다. 우선, 조형대학이라는 체제에 함께 묶이기는 했지만 건축이 디자인 분야와는 엄연히 다 른 분야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외국의 예를 보면 대부분의 대학에서 건축학과는 School of Architecture로 독립되어 있다. 건축학과가 디자인 분야 학과와 함께 편제되었을 경 우에는 College(School) of Architecture & Design, 혹은 College(School) of Arts & Architecture가 많이 보인다. College(School) of Design에 건축학과가 소속된 경 우가 없지는 않지만, 지극히 드물다. 이것은 건축과 디자인이 유사성과 독자성을 동시에 갖는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조형대학의 영문이름 역시 이러한 기존의 인식과 무관하지 않 았을 것이다. 터무니없는 상상이기는 하지만 대학의 이름을 정할 때 먼저 영문이름을 결 정하고 국문으로 번역했다고 가정해보자. ‘건축디자인대학’이 되었든, ‘건축·디자인대학’ 이나 ‘건축과 디자인대학’이 되었든, 조형대학을 대신할 수 있는 이름으로 받아들이기 쉽 지 않았으리라. 조형대학 내에서 건축학과의 비중은 디자인 분야의 학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컸을 것으로 짐작한다. 건축학과는 편제상으로는 조형대학의 5분의 1에 불과했으며 입학정원 역시 50 명에 그쳤지만 그 무게감은 그 수치를 상회했다. 건축학과에는 ‘천하의’ 김수근 교수가 있 었다. 그밖에 이런 저런 이유로 건축학과에 가야할 ‘몫’ 이상이 가거나 가는 것처럼 느껴지 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건축과 디자인의 차이는 특히 인적구성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건축학과 학생들은 대부분 자연계 출신인 데 비해 디자인 분야 학과 학생들은 예능계 출신이었다. 건축학과 교수들은 공대 출신인 반면 디자인 분야 교수들은 미대 출신이었다. 받은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다른 만큼 사고방식도 달랐고 세계관도 차이가 있었다. 물론 극복하지 못할 차이는 아니었으나 일체감을 느끼기에는 늘 2%의 모자람이 있었다.

건축대학의 독립
2000년대를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건축교육은 혁명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WTO의 서비스 교역에 대한 일반협정에 의거하여 건축설계는 서비스영역으로 분류되고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정의되었다. 건축사는 세계시장을 무대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된 반 면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건축사의 자격기준을 정할 필요가 생겼다. 1999 년 UIA(국제건축가연맹)는 WTO의 의뢰에 따라 그 기준을 만들었으니 ‘최소 5년 이상의 인증된 전일제 건축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최소 3년간의 실무경험을 가질 것을 권장하 는’ 국제권고안이 그것이다. 그에 따라 우리나라 유수한 대학의 건축학과들은 동시다발적으로 5년제 학제로 개편을 서 두르게 되었다. 국민대 건축학과도 이에 뒤질세라 기민하게 5년제 학제를 가진 독립된 건축 대학을 추진하게 된다. 다행히 현승일 당시 총장이 건축대학의 독립의 취지와 당위성을 충 분히 이해하고 전향적인 결정을 해 주었으므로 건축학과는 ‘5년제 학제를 가진 최초의 건 축대학’으로 개편될 수 있었다. 2001년 3월 건축학과는 국민대학교의 11번째 단과대학인 건축대학으로 독립하였다. 건 축대학 건축학부 건축설계전공으로 59명의 입학정원 규모를 가진 작은 단과대학이었다. 2000년 당시 학부정원은 BK사업 신청으로 인한 자율감축으로 47명으로 줄어있었는데 공 대 토목공학과의 호의로 12명의 정원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 초대학장에는 서상우 교수가 취임했다. 이듬해인 2002년에는 5년제 학제 첫 신입생이 입학하였다. 건축대학의 터전은 북악관의 3층으로, 교수연구실은 14층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1998년에 신설된 이래 자체 공간을 갖지 못했던 실내디자인학과가 건축학과가 쓰던 공간을 사용하게 되었다. 사실 건 축대학의 독립과 공간이전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기는 했으나 거의 동시적으로 진행되는 바 람에 건축학과가 조형대학을 떠나는 걸 아쉬워하는 목소리는 조형대학의 공간에 다소나마 숨통이 트이고 제 몫의 파이가 늘어나는 걸 반가워하는 목소리에 묻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