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lations:대문/248/ko
동문 글 | 공방 작가로, 교육자로
벌써 2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1986년 대학 졸업과 함께 서울 시내 한 가정집의 14평짜리 차고에서 시작한 공방생활, 여기서 5년 동안 밤낮 없이 일하며 대학원에 다녔다. 경기도 덕소로의 작업장 이사, 외국 유학 3년, 다시 1994년부터 현재까지 천안 변두리에서 작업장을 운영했고, 이듬해부터는 남서울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초기에는 공방운영을 위해 하루 18시간씩 일을 했다. 다행히 그 당시 수작업 공예품의 쓰임이 시작되고, 많은 사람이 이를 선호하는 덕분에 공방을 운영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두려움 없이 공방을 시작할 수 있었던 힘은 아마도 은사님들께서 아름다운 생활도자기를 손수 제작하는 모습을 늘보고 느껴 왔기 때문일 것이다.그 시대에 남들이 접할 수 없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의 유학은 타일과 전통도자 마죨리카 수업을 통해 건축도자와 채색기법을 익히는 기회가 되었고, 미국에서의 거주 작가로서의 경험은 도예의 넓은 세계와 다양한 작업 스킬에 심취하는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은 없고, 실패도 늘 곁에 있었다. 나는 삼수를 하며 어렵게 대학에 입학했으나 이는 나의 내면세계를 키운 결과가 되었고, 대학원과 취업의 실패는 공방을 남보다 일찍 창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귀국 후 경제적인 문제로 천안으로 이사하게 되었으나, 이것은 올해 21년째로 접어든 교수로 처음 임용되는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국민대와의 만남은 이 모든 과정이 형성된 주춧돌이다.
윤 장 식 생활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79학번
남서울대학교 환경조형학과 교수, 1995년-현재
체세라미코 운영, 1986-현재
한국, 일본, 독일, 태국 등에서 16회의 개인전 개최
이탈리아 국립도예학교 졸업
국민대학교 생활미술학과, 동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