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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zzyBot (토론 | 기여)님의 2025년 6월 24일 (화) 19:07 판 (외부 원본에서 새 판을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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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방도예가 양성을 위한 여정


국민대학교 도자공예학과는 40년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교육 과정의 개발과 시대적 요구의 수용을 통해 많은 도예가, 특히 도자공예품 제작에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들을 배출했다.나는 1981년부터 생활미술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1975년부터 1983년까지는 생활미술학과라는 명칭으로 도자공예, 금속공예 전공이 운영되었는데, 학과명에 담긴 의도도 인간의 생활에 쓰이는 공예품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함이었다. 1984년에는 공예미술학과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여기에는 공예와 미술 사이의 관계, 그리고 한국의 도자공예가 추구할 방향에 대한 생각이 담겼다. 80년대 초반의 도자공예 교육은 다양한 배경에서 훈련받은 교육자들이 담당했다. 일례로 물레 성형 수업에서, 서구권에서 교육받은 강사는 물레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동양권에서 교육받은 강사는 시계 방향으로 회전해서 그릇을 빚도록 가르쳤다. 이와 같은 교육 환경에서 나는 ‘1인공방도예가 양성’이라는 목표를 세웠고 그 실천방법을 실기 능력 배양과 이론 기반 형성으로 나눴다. 실기 능력과 관련해 초창기 기름 가마를 사용할 때는 학생 스스로 소성 경험을 갖기 힘들었는데, 80년대 초반 학과에 가스 가마를 도 입함으로써 직접 소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수 있었다. 또한 유약에 관한 안정적인 데이터 구축으로 유약 제조 및 입히기 과정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하였으며, 석고 캐스팅 수업을 개설하는 등 다양한 제작기법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하였다. 철저한 기능의 습득은 1인 공방도예가 양성을 위해 필수적이었다. 아울러 당시의 도예 경향을 반영하는 교과과정도 있었다. 80년대는 미국의 추상도자 조각 운동이 한국의 도예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시기였으므로, 도자조형과 환경도예에 관한 수업을 개설하였다. 그러나 일률적인 흐름에 편승하는 것보다 공예의 본질, 그리고 쓰임의 미학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도자공예로서의 기능 그리고 한국 도자의 역사와 특징을 해석함으로써, 하나의 그릇이 작가의 개성 추구를 위한 역할뿐 아니라, 한국 도자공예의 정체 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수 있다는 교육철학을 담았다. 90년대는 소득의 증대에 따라 삶의 질이 향상되고, 대중들이 생활에서 사용하는 용기에 대한 아름다움과 가치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한국적 생활도자공예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나는 이런 흐름을 반영해 석사학위 논문에서 조선시대의 전통기법이나 기형을 주제로 삼도록 지도하기 시작했으며, 조선 초기 관요 제작 체제로 유지되다가 지방 민간요장에서 제작되었던 분청사기의 기법들(귀얄, 덤벙, 박지, 상감 등)을 수업에 도입하였다. 시대적 요구와 학풍이 맞아 떨어지면서 자연스레 90년대에는 전통 도자를 기반으로 용기 제작에 힘쓰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분청사기에 대한 큰 관심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고, 장성배, 김상만, 허상욱, 이동식, 박성욱, 김국환, 민승기, 조원석, 박희현 등 많은 동문 작가들이 지금까지 분청사기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