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리고 내일
그리고 내일
어느새부터인가 직업 훈련이 고등 교육 기관의 주된 역할로 부각되고 취업 지표가 대학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됨으로써 교육 또한 기업들의 업무와 같은 구조적, 내용적 효율성을 요구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업이 원하는 ‘즉시 사용가능한 인재’라는 상에 맞추어 기업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에 맞추어 학생들을 교육해야 하는 수동적인 역할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학 본연의 역할이 시대를 읽어내고 앞으로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은 지난 40년간 바람직한 대학의 모습을 지키고자 애써왔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의 행보는 ‘혁신적Innovative’이며 ‘합리적Practical’이었다. 즉 비전은 혁신적으로 제시하되 합리적인 방법들로 그 혁신적 비전을 현실화해온 역사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존의 영역 틀 안에서의 고민이 아닌 새로운 영역 자체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하지 않고 판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판을 창조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1975년 조형학부로 출발한 조형대학은 90년대 이미 그린 디자인, 디지털미디어 디자인, 웹사이트 디자인, 유비쿼터스 디자인, 패션 디자인, 게임 디자인, 인터랙션 디자인 등의 개념을 제시하며 업계의 움직임을 주도하였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은 다음 시대의 화두를 위한 끊임없는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고민은 지금의 시대, 즉 디자인을 위한 컴퓨터 소프트웨어나 스마트폰 등의 촬영 매체가 보편화되고 UCC 등의 플랫폼, 매체 및 디지털 인쇄, 3D 프린터 등의 출력 기기가 대중화되어 가는 등 다양한 디자인관련 기술이 보편화 되어가는 시대에 디자이너가 어떻게 전문성을 유지하고 사회적 역할을 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으며, 이에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은 디자이너의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여 그린디자인과 커뮤니티 디자인을 중요한 커리큘럼으로 다루었고, 디자인이 조형을 넘어 디자인적 사고, 디자인적 문제 해결 방법론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침투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서비스 디자인 개념을 본격적으로 교육하였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40년 역사를 위해 지금의 조형대학은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이에 필자는 본인의 세부 전공분야인 융합 영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분야를 중심으로 현재 직면한 과제들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첫째로 독립적 콘텐츠로서의 디자인, 작가로서의 디자이너 역할에 대한 고민이다. 디자이너의 작업들이 두산, 에르메스 등의 예술상 후보에 오르고 순수 예술 작가의 작업이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예술과 디자인은 서로의 영역을 확장하며 점차 그 고전적 분류 체계에 의한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다. 디자인이 장식·기능·형태를 넘어 이야기를 담게 되면서 디자이너가 담아내는 이야기의 맥락이 디자인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게 되 고 이러한 방법론의 공유는 예술과 디자인이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하였다. 콜라보레이션이라는 형태를 통해 이야기를 담아내는(빌려오는) 소극적인 방식을 넘어 디자이너가 작가로서 이야기를 생산하고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방법론의 선택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으며 디자이너의 역할이 제품생산 프로세스의 일부나 장식 미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 콘텐츠 생산자로 변화하고 있다.
Rift & Touch, Oculus, 2015 가상 현실은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디자인 영역과 함께 건축,도시 계획 등의 다양한 개념을 아우르며 발전해 나가고 있다.
이에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들 또한 단발적인 아이디어 중심의 작업이 아니라 가치관이 반영된 자신만의 맥락을 만들어나가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중시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내용적 바탕이 될 인문학적 소양 또한 강조되어야 한다. 이는 디자인의 비평적 역할을 강조한 비평적 디자인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여 이미 모든 디자인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디자인을 통해 그 디자이너가 세상을 읽는 시선,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론을 선보이고 관객들은 그의 세계관에 대한 동의를 소비라는 형식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이 경우 디자인의 가치는 물질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에 디자이너로서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그에 필요한 소통을 해나가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자 책임이라 하겠다. 둘째로 개념 디자인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함에 따라 대학이 이에 적합한 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상디자인학과는 2011년 학과의 영문명을 엔터테인먼트디자인으로 변경하며 개념 중심·가치 중심의 디자인이라는 비전을 담았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영상, 공간, 의상 등의 매체 구분에 의한 기술적 전문성을 넘어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개념을 정의하고 그에 적합한 콘텐츠를 창조하는 역할임을 제시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을 정의, 창조하는 역할로서의 디자인은 미래 삶의 중요 가치를 읽어내는 융합적 리서치가 필수적으로 선행 연구되어야 하고 이러한 연구는 학제 간 교류를 통해 보다 긴 호흡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대학 기관이 오히려 이러한 기능을 거대 기업들에게 빼앗기고 수동적인 인력 수급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하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즉, 연구기관으로서의 대학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융합을 통한 미래 가치 창출의 중심적인 역할을 되찾아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대학은 이미 오랜 역사를 통해 독립성을 확보하고 이러한 연구를 통한 교육에 최적화된 환경을 구축해왔기에 기업의 근본적인 속성과 구조로 인해 소화할 수 없는 긴 호흡의 독립적 연구와 실험들을 교육 및 연구기관이 담당해야 할 것이다.
Bio-Light, Philips, 2011 조명 디자인 영역에 생물학적 개념을 접목하는 등 학제간의 벽을 깨는 새로운 과감한 아이디어가 연구 중심의 대학 교육을 통해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운전이 자동화된 자동차에서 창출된 새로운 공간과 시간 안에서 어떠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필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자동차 안의 작은 모니터의 UX를 만드는 개념과는 차원이 다른 복합적인 방향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이고 이에 새롭게 제시되어야 할 이동성 Mobility의 개념 정의에 대한 융합적 논의가 필요함은 당연할 것이다. 또한 건축물 내외부의 미디어 파사드나 미디어 월, 거리의 미디어 폴 등을 통해 건축 및 공간디자인이 매체로서의 역할, 즉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부여되고 있는 시점에서 도시 공학자, 행정가, 건축가 등과의 융합적 연구가 없이는 콘텐츠와 미디어 간의 유기적 관계를 만들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연구 리서치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개념 창출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학 기술들이 그 개발과정에서 디자인의 여러 영역들과 밀접한 교류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해외 유수 대학의 학과운영을 살펴보면 성공적인 여러 사례1)들을 찾아볼 수 있다.
디자인이 디자인이란 분류체계에 매여 있으면 디자인의 미래는 스스로 위축되고 한정지어 지며 다른 영역의 확장에 의해 잠식될 것이다. 오히려 디자인은 보다 모호한 형태로 확장하고 발전해 나가고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 디자인이란 영역을 끊임없이 디자인해나가는 것 또한 디자인 교육·연구기관의 중요한 몫일 것이다.
박제성
영상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