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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6일 (일) 15:20 판
도자공예학과
공예도자 작업과정 굽깍기
한국도자문화의 전통과 현대를 이어가다
탁명인, 그 순간을 기억해, 2010
조형대학 40년사는 도자공예학과의 역사이기도 하다. 초기의 조형대학은 김수근 학장에 의해 공학계열의 건축학과, 일반계열의 의상학과, 예능계열의 장식미술학과와 생활미술학과가 통합되어 운영되었다. 이중 도자공예학과의 전신은 생활미술학과로 초기의 교육에서는 크로키, 도자, 금속이 통합된 교육이 실시되었다. 이후 1978년 일반대학원 과정에, 1994년 디자인대학원에, 1999년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에 도자공예전공의 석사과정이 설치되었고, 1984년 공예미술학과로 개칭되어 도자공예와 금속공예로 전공이 분리되어 교육이 진행되었다. 공예미술학과에서는 1학년 입학 후 한 학기씩 도자와 금속을 학습한후 2학년 진학 시 전공을 분리하였다. 2002년부터 도자공예학과와 금속공예학과가 분리, 독립되어 한층 심화된교육을 실시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4년 황종례 교수가 부임하여 초창기의 교육을 시작하였으며, 1975년 김익영 교수가 임용되었다.1) 이후 노경조 교수가 1985년 임용되어 본격적으로 전문화된 전공교육이 이루어졌다. 1993년 박경순 교수가 교육의 한 분야를 담당하기 시작하였으며, 2003년에는 최초의 동문교수인 이상용 교수가 임용되었고 2013년 정진원 교수가 합류하였다. 도자공예학과는 실기 교육뿐 아니라 이론 분야에서도 타 대학과는 차별화되는 심도 있는 교육을 진행해 왔다. 특히 이론과목을 전담하는 교원의 필요성을 인지하여,역량 있는 비정년 트랙 강의전담 교원을 임용하였다. 김인규 교수(2004-2008)와 이희경 교수(2008-2012)가 도자사 교육을 담당했으며, 2013년부터는 슬립캐스팅작업을 진행하는 민세원 교수(2013-현재)가 임용되어 도자공예학과의 일원으로 학생들을 지도해오고 있다. 또한 전문적인 가마번조 및 기술적 운영을 위해 학과설립 초기부터 학생들의 기술학습을 지원하는 기술기능직 전문 인력으로 김광오 기사(1975-2009), 신경섭 기사(2010-현재)가 배치되어 학과 운영에 동참하고 있다.
조형대학 내에서 도자공예학과는 입학정원, 공간, 교수인원 등 타 전공에 비해 작은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노경조 교수가 12대(2004-2006), 14대(2008-2010)학장을 연임한 후 대학원장(2012-2014)을 역임하였고,이상용 교수가 18대 학장(2014-현재)으로 선출되어 대학행정을 책임지는 등, 도자공예학과는 크지 않은 학과임에도 대학 내의 행정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도자공예학과 40년의 역사는 비가시적 결과물과 함께 다양한인적, 물적 성과를 이룩해내었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주석, 우은주, 간판공모대상
교육적 측면에서 전통의 조형성과 사회적 인식을 기반으로 한 공예의 본질을 확립하고 있다. 많은 동문 작가들이 우리만의 특징적 미감이 강조된 테이블웨어와 우수한 조형성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을 제작해왔다. 이러한 성과의 바탕에는 전문적이고 지속적인 도자사 교육이 있었으며,특히 1990년도 이래 유지되고 있는 백자 달 항아리 제작수업이 있었다. 한국 미술의 조형사에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달 항아리를 현대의 시선으로 제작하여 이론적 기술적으로 세련된 조형미를 담아내고자 한 진지한 노력이 지속되어 온 것이다. 해외의 다양한 현대도예의 물결속에서 이러한 도자공예학과의 선도적 교육은 공예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것으로 타 대학에도 모범이 되고 있다.
정규 교육 외에 도자공예학과는 다양한 실험적 시도를 해오고 있다. 2010년 조형전을 통해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인 세라믹쇼가 그 중 하나로 도자장신구의 기본이미지를 쇼라는 과정을 통해 영역의 확산을 이루었다. 세라믹쇼는 2013년 조형전에 Cerappin이라는 명칭으로 전시가 이어졌으며, 조형전 외의 기간에는 졸업전시의 오프닝 이벤트로 2011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1975년 도자공예교육이 시작된 이래 많은 동문이 배출되었으며 우리나라 문화, 산업,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중부대학교 교수로재직 중인 75학번 이춘혜를 비롯하여 남서울대학교의 윤장식(79), 공현구(86), 청주대학교의 김준용(91) 등 다수의 동문 교·강사들이 본교 및 타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외 국립중앙박물관등 국내 공사립 미술관과 화랑 등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개인 창업 및 작가활동 분야에서 도자공예학과 동문 작가들의 활동과 성과는 한국의 도예계 전체에서 매우 우수한 평가를 받아왔다.
2011년 청주 공예비엔날레에서 국민대 도자공예학과 출신 들이 동시에 대상(전상우, 99), 금상(박종진, 00), 은상(이혜원, 02)을 동시에 수상하는 등, 유래를 찾기 힘든 실적을 이루어 내었다. 이외 수많은 수상 실적은 도자공예학과의 우수성을 나타내는 척도가 될수 있다. 예술 분야에서 졸업 후 전공을 이어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여건 상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다수의 대학에서 수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지만 현재 동일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할 때 본교 도자공예학과 출신 작가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역사성 있는 학과의 전통, 교육의 우수성, 출중한 재학생 및 동문들의 능력이 조화되어 나타난 결과라 할 것이다.
특히 많은 졸업생들이 공방운영 및 독립작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보이고 있다. 현재 송정인(77), 윤장식(79), 정인모(79), 공현구(86), 김명례(87), 김규태(88), 허상욱(88), 이동식(88), 심지수(89), 박성욱(90), 민승기(93), 박중원(93), 정용현(97), 장재녕(99), 박종진(00) 등 많은 우수한 동문 작가들이 국내외에서 활동 중이며, 이들은 도자공예 학과뿐 아니라 한국 도예계 전체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1983년에 백상기념관에서 창립전을 개최한 동문 도예가들의 전시단체인 북악도예가회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2014년 현재 65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북악도 예가회는 현재까지 26회의 전시를 개최해왔으며, 전시회를 통한 동문들의 모임이라는 초기의 목적에서부터 발전되어, 현재는 전문적 미술정보를 교류하고 후배들에게 작가로서의 신규 진입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도자공예학과는 2015년 새로이 23명의 신입생을 맞이하고 2011년도의 입학생이 졸업하며 현재 100여 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수학하고 있다. 입학과 졸업이라는 40년간쉬지 않고 진행되고 있는 역사 속에서 많은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업을 이어가고, 작가로, 다양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동문으로서 자부심을 이어가고 있다.
도자공예학과의 교육
한국미술사의 커다란 줄기 중 대표적인 것은 공예이며 특히 도자공예는 그 중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도자사를 독립적으로 교육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일본,중국뿐이다. 이외의 국가는 사기砂器의 역사가 18세기 이후에 시작되므로 사학으로서의 기록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도자공예는 유물 및 사료에서 풍부한 기록을 가지고,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9세기 말에 자기Porcelain의 일종인 청자를 제작하였으며 시기적으로 서양의 중세를 앞선 것이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중국과 우리만이 이룬 기술적 결과물이다. 이러한 전통은 우리 공예교육의 커다란 자산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도자공예는 초기의 토기가 제작된 이래 예술적, 기술적으로 커다란 성과를 이루어냈으나, 일제강점기와 6.26전쟁을 거치며 그 전통의 맥이 흐려졌다. 이후 피폐해진 혼란 속에서 민족문화를 부흥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미국 록펠러재단의 지원과 국립중앙박물관의 김재원,최순우가 중심이 된 한국조형문화연구소가 1955년 발족되었다. 이러한 시도는 전통적으로 한국문화에서 도자공예의 자취가 얼마나 강하게 각인되었는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이후 산업계와 학계에서 도자공예는 다양하게 발전하게 된다. 학교의 경우 50년대 말 홍익대학교 및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과가 신설된 후 1970년대에 들어 각 대학의 미술대학에서 도예전공이 필수 과목으로 채택되기 시작한다. 국민대학교 역시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도예교육이 시작되었다. 이는 당시 주요 대학에 비해 늦은 출발이나 유능하고 열정적이며 투철한 교육관을 가진 젊은 교수들을 영입, 미래지향적인 교과과정, 학생들의 기량과 디자인감각을 신장시킬 수 있는 실질적이고 참신한 형식의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현재 우리나라의 도자공예를 선도하는 학과로 발돋움했다.
조형대학 도자공예학과는 전공학생들이 교육을 통해 한국의 전통적 미의식과 문화를 바탕으로 현대의 조형세계와의 조화를 이루도록 끊임없는 노력을 진행해왔다. 이를 위해 우리 미의 특성을 바탕으로 창의적 교육 컨텐츠를 개발하고, 예술적 표현능력과 폭넓은 창의력을 갖추도록 다양하고 깊이 있는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국제적 감각을 지닌 전문 도자공예인을 양성하며, 지식기반사회에서 직업인으로서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 이를 바탕으로 21세기 문화산업사회와 지식기반사회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전문 인재 육성을 위해, 인접학문과의 접목을 통해 여러 분야에 대한 이해와 응용력, 전문성을 갖춘 경쟁력 있는 도자공예인 양성을 교육의 주요한 목표로 삼고 있다.도자공예학과 교육은 ‘이론과 실기의 조화’와 함께 ‘공예·조형·산업·으로 분류되는 실기과목의 심층화’ 그리고 ‘디지털교육 강화’로 분야별 연계성과 심층성을 동시에 구현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2015년 현재 주요 교과목은 다음과 같다. 1학년에서는 조형연습, 기초 도자공예, 창의적 방법을 통한 공예교수법 등의 교과목이 진행되며, 2학년에서는 공예도자, 조형도자, 도자재료학 등의 본격적인 전공 입문교육이 실시된다. 3학년에서는 공예도자, 조형도자, 도자제형, 도자장식, 유리공예, 도자사, 현대도예론 등, 심화된 실기수업과 함께 이론수업이 함께 진행되고 있으며, 4학년에서는 공예도자, 환경도자, 산업도자,유리조형, 현대도자론, 포트폴리오 등의 수업을 통해 졸업전시회 준비와 졸업 후의 활동을 준비할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진다.
각각의 전공교육을 통해 전공학생들은 ‘한국적 특성을 바탕으로 한 미의식과 문화를 현대의 조형세계와 조화시키며, 이를 통해 세계무대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국제적 감각을 지닌 전문 도자공예인’, ‘다양한 표현능력과 창의력을 갖춘 전문인’, ‘디지털 시대의 정보화를 선도하는 창조적인 지식인’으로 양성된다. 현재 도자공예학과는 1200㎡의 실기 전용공간을 보유하고 있으며 7.2루베에 이르는 총 15기의 가마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석고제형 실기실과 유약 실습실, 그리고 소지개발이 가능한 제토시설 등
다양한 실습 설비를 운용하고 있으며, 조형대학 전산실 이외에 도자공예학과 단독으로 컴퓨터실을 운용하여 학생들의 디지털디자인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였다. 이와 더불어 첨단기술과 수공예의 접목을 시도하기위해 3D Printer와 RP Machine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향<후 신속조형기술을 접목한 도자공예의 새로운 표현을 위해 지속적인 교육내용개발을 하고 있다.>
| 연도 | 내용 | 비고 |
|---|---|---|
| 1968 | 생활미술학과 신설, 도자공예교육 시작 | |
| 1974 | 황종례 교수 임용, 1993년까지 재직 | |
| 1975 | 김익영 교수 임용, 2000년까지 재직 김광오 기사 임용, 2009년까지 재직 조형학부 신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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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 | 진영선 교수 임용, 1989년까지 재직 | |
| 1978 | 일반대학원 공예미술학과 석사과정 개설 | |
| 1984 | 생활미술학과가 공예미술학과로 개칭 도자공예와 금속공예로 전공분리 | |
| 1985 | 노경조 교수 임용 | |
| 1993 | 박경순 교수 임용 | |
| 1994 | 디자인대학원 개설 | |
| 1999 |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개원 일반대학원 석사과정 공예미술학과가 폐지되고 도예과 신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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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 공예미술학과를 금속공예학과와 도자공예학과로 분리 | |
| 2003 | 이상용 교수 임용 | |
| 2004 | 노경조 교수 조형대학 제12대 학장으로 취임 김인규 교수(비정년) 임용, 2008년까지 재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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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 노경조 교수 조형대학 제14대 학장으로 취임 이희경 교수(비정년) 임용, 2012년까지 재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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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 신경섭 기사 임용 | |
| 2013 | 노경조 교수 대학원장 취임 정진원 교수 임용 민세원 교수(비정년 트랙 강의전담 교원) 임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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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 | 이상용 교수 조형대학 제17대 학장으로 취임 |
조형표현 작업 과정
물레성형 작업과정
나의 도자 조형교육
‘도자는 형태이다’라고 나는 늘 생각했다. 지난 25년 동안 도자공예를 전공을 하는 제자들에게 행한 나의 교육은 ‘창의적인 조형’을 할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었다. 기초과목에서의 조형연습부터 강조했으며, 이를 위해 조소 전공의 강사를 초빙하기도 했다. 전공과정에서는 점토의 특성을 알고 활용가능성을 넓혀나가도록 했다. 전통적 형태나 눈에 익숙한 기성의 형태의 틀을 벗어나 자기만의 조형을 찾도록 하였다. 전통적 형태에 근거해 시작하더라도 이를 해체하고 분해하고 조합하여 다른 형태가 드러나도록 하는 경험도 하게 하였다.
조형성을 강조하다 보면, 도자공예가 용도를 수반하는 기물이라는 고전적 의미가 사라질 우려도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도자는 우리의 삶을 받쳐주며 다양하게 쓰여져 왔으므로 우리들의 현대의 삶에서도 적극 활용할 수 있다는 기능적인 사고를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교육에서 창의적인 사고와 형태의 표현은 핵심이다. 창의적 조형은 기술과도 연관된다. 물레 성형 기술은 생산성의 측면에서, 작가의 감성을 드러내는 기법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므로 의무적으로 숙달하도록 했다. 물레를 통해 전통적 성형의 장점을 살려 여러 가지 형태를 얻는 한편, 이를 절단하고 접착시키고 조립하여, 스케치 단계에서 자유롭게 구상했던 형태들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도록 했다. 물성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다. 점토의 특성을 보다 철저히 알기 위해서는 나무, 금속 등의 타재료를 함께 체험해야 한다. 도자는 손으로 직접 느끼는 재료이므로, 건조 이전, 반건조 시,건조 시에 나타내는 다양한 특징의 텍스추어의 표현도 시도하도록 했다. 현대 도예에서 거의 무한대로 확장된 유약과 색상 표현의 가능성 역시 적극 수용하도록 했으며, 입체물의 중력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경량화 시도도 해보도록 했다.
나는 도자예술이 현대미술계에서 대접 받으려면 타 조형예술 분야와 겨루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교육과 창작에 임했다. 이 과정에서 나에게 유효했던 것은, 조선조 백자에 대한 조형성 연구였다. 세계인이 칭송하는 조선조 도자의 탄생은 솔직하고 정직한 한국인의 품성, 자연에 대한 경외심, 유교적 사상 등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단순화가 이루어진 것은 어쩌면 바우하우스의 이념이나 현대미술의 미니멀리즘과 통하기도 한다. 특히 조선 도자에서 형태는 물질세계를 넘는 우리의 사상적 세계를 표출하면서 세계인의 감동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역시 교육과 작품을 통해 내가 학생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던 내용이다.
김익영, 흑유사면호, 백자, 흑유, 2003(1990 재현)
김 익 영
도자공예학과 명예교수
공방도예가 양성을 위한 여정
국민대학교 도자공예학과는 40년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교육 과정의 개발과 시대적 요구의 수용을 통해 많은 도예가, 특히 도자공예품 제작에 두각을 나타내는 작가들을 배출했다.나는 1981년부터 생활미술학과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1975년부터 1983년까지는 생활미술학과라는 명칭으로 도자공예, 금속공예 전공이 운영되었는데, 학과명에 담긴 의도도 인간의 생활에 쓰이는 공예품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함이었다. 1984년에는 공예미술학과로 명칭이 바뀌었는데, 여기에는 공예와 미술 사이의 관계, 그리고 한국의 도자공예가 추구할 방향에 대한 생각이 담겼다.
도자공예 수업 중 물레성형 평가
80년대 초반의 도자공예 교육은 다양한 배경에서 훈련받은 교육자들이 담당했다. 일례로 물레 성형 수업에서, 서구권에서 교육받은 강사는 물레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동양권에서 교육받은 강사는 시계 방향으로 회전해서 그릇을 빚도록 가르쳤다. 이와 같은 교육 환경에서 나는 ‘1인공방도예가 양성’이라는 목표를 세웠고 그 실천방법을 실기 능력 배양과 이론 기반 형성으로 나눴다. 실기 능력과 관련해 초창기 기름 가마를 사용할 때는 학생 스스로 소성 경험을 갖기 힘들었는데, 80년대 초반 학과에 가스 가마를 도 입함으로써 직접 소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수 있었다. 또한 유약에 관한 안정적인 데이터 구축으로 유약 제조 및 입히기 과정을 스스로 할 수 있게 하였으며, 석고 캐스팅 수업을 개설하는 등 다양한 제작기법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하였다. 철저한 기능의 습득은 1인 공방도예가 양성을 위해 필수적이었다. 아울러 당시의 도예 경향을 반영하는 교과과정도 있었다. 80년대는 미국의 추상도자 조각 운동이 한국의 도예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시기였으므로, 도자조형과 환경도예에 관한 수업을 개설하였다. 그러나 일률적인 흐름에 편승하는 것보다 공예의 본질, 그리고 쓰임의 미학을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도자공예로서의 기능 그리고 한국 도자의 역사와 특징을 해석함으로써, 하나의 그릇이 작가의 개성 추구를 위한 역할뿐 아니라, 한국 도자공예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수 있다는 교육철학을 담았다.
90년대는 소득의 증대에 따라 삶의 질이 향상되고, 대중들이 생활에서 사용하는 용기에 대한 아름다움과 가치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한국적 생활도자공예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나는 이런 흐름을 반영해 석사학위 논문에서 조선시대의 전통기법이나 기형을 주제로 삼도록 지도하기 시작했으며, 조선 초기 관요 제작 체제로 유지되다가 지방 민간요장에서 제작되었던 분청사기의 기법들(귀얄, 덤벙, 박지, 상감 등)을 수업에 도입하였다. 시대적 요구와 학풍이 맞아 떨어지면서 자연스레 90년대에는 전통 도자를 기반으로 용기 제작에 힘쓰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분청사기에 대한 큰 관심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고, 장성배, 김상만, 허상욱, 이동식, 박성욱, 김국환, 민승기, 조원석, 박희현 등 많은 동문 작가들이 지금까지 분청사기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2000년대는 한국 도자문화에 대한 재평가가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된 시기였다. 한국은 기술적 완성도의 정점으로 평가되는 백자를 중국에 이어 15세기부터 제작했다. 일본은 17세기부터, 독일 마이센의 경우 18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제작이 가능했다. 그러나 한국의 백자는 과거의 재현에 멈춰있는 상황이고, 사회적으로 현대적 미감을 반영한 백자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3학년 수업과정에 백자 달 항아리 제작을 할 수 있는 교과과정을 개설하였다. 달 항아리를 실제로 제작해볼 수 있다는 것은 도예가로서 누릴 수 있는 놀라운 경험이며, 조선시대 도공의 제작 태도와 그 시대상을 유추하는 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백자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동문으로는 정인모, 이능호, 김규태, 이상욱, 심지수, 류천욱, 우은주, 이정용, 장재녕, 강기호, 전상우, 지승민 등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통도자에 대한 현장감 있는 이해를 위한 수업이 진행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경기도자박물관 등의 전시, 세미나, 발굴 유적 답사에 참여함으로써, 학생들로 하여금 역사 의식을 갖도록 했다. 여러 박물관과의 교류를 통해서 이정용, 장재녕, 강기호, 이현규, 신광섭, 김경수, 신수연(이상 경기도자박물관), 박종진(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윤보름(서울역사박물관), 정진규(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등의 동문들이 미술사 연구와 전시기획 분야에서 학예사, 연구원, 인턴 등으로 근무했다.
실기 능력과 이론을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을 통해 다수의 동문들이 국내·외 공모전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세계도자비엔날레 공모전에서 허상욱(특선), 박중원(특별상)이, 청주국제공예공모전에서 전상우(대상), 박종진(금상), 류천욱, 이혜원(동상)이, 아름다운우리도자기공모전에서 김상만(대상), 민승기(동상)가, 광주백자공모전에서 우은주, 박종진(대상), 강기호, 지승민(동상)이, 도자트랜드 공모전에서 민승기, 이주석/우은주(대상)이, 토야테이블웨어공모전에서 박성욱(대상)등이 수상했으며, 국민대학교 도자공예학과는 전통에 대한 이해를 통해 생활도자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학풍을 확고히 정립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매년 3학년 1학기에 수업의 일부로 도요지 답사를 진행했다. 30여 년간 전국의 도요지를답사하며 얻었던 나의 경험과 도자기 파편을 통해 알 수 있는 그 시대상을 실제 현장에 서서 학생들과 함께 나누고자 했던 것이다. 2003년 개관한 경기도 분원백자 자료관의 요청으로, 그동안 수집한 경기도 광주 일대(도마리, 금사리, 우산리, 분원 등)의 도요지 파편을 자료관에 10년간 대여하기도 했다.
인류는 도자기를 만들었다. 흙을 두드리고 빚어 그릇을 만들었고 그것들은 일상에서 사용하다가 깨지고 땅에 묻혔거나, 지금까지 완형으로 남아 박물관 진열장에 놓여있기도 한다.중요한 사실은 그 그릇들은 시대적 상황을 읽을 수 있는 명백한 증거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는 제자들이 도예가로서 책임의식을 가지고 인간과 자연의 경계에서 주체적으로 사고하며 작품을 창작하기를 바란다. 공예는 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두드리고 빚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 경 조
도자공예학과 교수
동문 글 | 공방 작가로, 교육자로
벌써 2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1986년 대학 졸업과 함께 서울 시내 한 가정집의 14평짜리 차고에서 시작한 공방생활, 여기서 5년 동안 밤낮 없이 일하며 대학원에 다녔다. 경기도 덕소로의 작업장 이사, 외국 유학 3년, 다시 1994년부터 현재까지 천안 변두리에서 작업장을 운영했고, 이듬해부터는 남서울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초기에는 공방운영을 위해 하루 18시간씩 일을 했다. 다행히 그 당시 수작업 공예품의 쓰임이 시작되고, 많은 사람이 이를 선호하는 덕분에 공방을 운영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또한 두려움 없이 공방을 시작할 수 있었던 힘은 아마도 은사님들께서 아름다운 생활도자기를 손수 제작하는 모습을 늘보고 느껴 왔기 때문일 것이다.그 시대에 남들이 접할 수 없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에서의 유학은 타일과 전통도자 마죨리카 수업을 통해 건축도자와 채색기법을 익히는 기회가 되었고, 미국에서의 거주 작가로서의 경험은 도예의 넓은 세계와 다양한 작업 스킬에 심취하는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이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은 없고, 실패도 늘 곁에 있었다. 나는 삼수를 하며 어렵게 대학에 입학했으나 이는 나의 내면세계를 키운 결과가 되었고, 대학원과 취업의 실패는 공방을 남보다 일찍 창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귀국 후 경제적인 문제로 천안으로 이사하게 되었으나, 이것은 올해 21년째로 접어든 교수로 처음 임용되는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국민대와의 만남은 이 모든 과정이 형성된 주춧돌이다.
시내 작업장 및 전시장
Landscape, 1970, 60×60×13cm
윤 장 식 생활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79학번
남서울대학교 환경조형학과 교수, 1995년-현재
체세라미코 운영, 1986-현재
한국, 일본, 독일, 태국 등에서 16회의 개인전 개최
이탈리아 국립도예학교 졸업
국민대학교 생활미술학과, 동대학원 졸업
한용범, Choice, 2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