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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 금속공예학과</strong> | |||
마음이 담긴 물건들 – MMMG와 D&D | |||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직접 손으로 만드는 과정을 익히면서 일상 사물들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1999년 학교를 졸업하면서 뜻을 함께 나누던 | |||
동문들, 유미영(공동대표), 오현석(CBB대표), 정경희(버드스틱대표)와, ‘디자이너’ 보다는 ‘제작자’로서 밀리미터밀리그람이라는 브랜드를 시작하였다. | |||
공예를 전공하고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며, 물건과 관계하는 모든 것을 향해 관심이 확장되었고, 우리 일상의 작은 사물들을 통해 형태나 기능을 넘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윤리적 | |||
순환의 문제까지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너무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값싸고 흔한 물건들은 상점에 가득 차 있지만, ‘맥락’이 없는 이 값싼 물건들은 생산자와 유통업자 더 나아가 소비자인 우리들 모두를 패자로 만들 수밖에 없다. 물건 속에서 생산자의 의도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의 방향도 바뀌어 갈 것이다. | |||
밀리미터밀리그람을 16년 동안 운영하던 나에게도 변화가 왔다. 2013년에는 소비의 질과 속도를 정상으로 만들자는 ‘롱라이프디자인Long Life Design’의 컨셉을 확장시킨 일본의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앤디파트먼트 프로젝트D&Department Project’와 뜻을 같이해,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을 이태원의 MMMG 매장에 함께 열었다. 일본에서 온 롱라이프 제품들을 소개하는 한편, 한국 땅에서도 올바른 생산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소개하는 매장으로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 |||
물건을 직접 만드는 공예가가 되지 않더라도, 공예를 통해 일상의 물건들을 다르게 보고 변화를 가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이 있다. 그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를위한 일이다. 물건을 대하는 바른 태도, 올바른 의식이 담긴 소비문화가 확산될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 변화를 위해 공예가의 행동과 태도가 요구되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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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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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배 수 열</strong> 공예미술학과 금속공예전공 92학번<br> | |||
현 ㈜밀리미터밀리그람 공동대표<br> | |||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2010<br> | |||
Korea Design Award 제품디자인부문 영 디자이너상 수상, 2002<br> | |||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금속공예전공 입학, 2000<br> | |||
밀리미터밀리그람 브랜드 런칭, 1999<br> | |||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예미술학과 졸업, 1999<br> | |||
작가로 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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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tant-테이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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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전업 작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자유를 주는 일인가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이러한 특권(?)을 영위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정열, 인내의 투자가 필요하다. 혹시 작가로의 길을 망설이며 고민에 빠져있는 동문들이 있다면 말하고 싶다. 조금만 더 노력하고 기다려보자고. 어쩌면 나도 기다리는 사람 중에 하나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 |||
대학원 시절에 겪었던 작업에 대한 고민과 열망을 기억한다. 그것은 얼마나 원대하고 추상적이었던가.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이 공예에 국한되어야 하는 것인지, 순수미술, 예술의 경계에서 디자인까지 아우르고 싶은 욕심을 가져도 되는 것인지... 결론이 없는 토론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내가 공예작가, 가구 디자이너, 심지어 대장장이로까지 불리는 것을 보면, 아득했던 그때의 고민과 토론이 단순한 안주거리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국민대학교 출신의 금속공예가로 자랑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의 노력도 있었지만 교수님들, 먼저 활동한 선배들, 각 분야에서 폭넓게 활약하고 있는 후배들의 땀과 노력의 결과이다. | |||
10년 혹은 20년 후 지금 이 순간이 어떻게 기억될까? 19세기 초의 시인이며 신학자였던 콜러리지 Samuel Coleridge는 “강압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행복은 없다”고 말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현재를 즐길 수만 있다면, 이야말로 미래의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 | |||
<strong>이 대 원</strong> 공예미술학과 금속공예전공 89학번<br> | |||
현 금속공예가, 가구디자이너, AA공작소 운영<br> | |||
대장공예+3, 예술의전당 갤러리 7, 서울, 2013<br> | |||
개인전 7회, 단체전 100여 회<br> | |||
미국 남일리노이주립대 대학원(Blacksmith) M.F.A, 2003<br> | |||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금속공예전공 M.F.A, 1999<br> | |||
디자인대학원, 늦깎이 학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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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보랑에서, 신라호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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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동시에 나는 교수님 추천으로 파인주얼리Fine Jewelry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 그곳은 특급호텔에 위치한 귀금속 전문점으로, 단순히 귀금속 판매에 머무르지 않고 금속공예작가들을 후원하거나, 초대전을 개최하기도 했던 곳이다. 나는 직접 작품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분야의 전공자들과 교류하며 그들이 꿈을 이루는 데 적게나마 도움을 주었다. | |||
내가 대학을 졸업한 1980년대 후반에는 여성의 직업이 다양하지 않았고 더구나 미대를 졸업한 후에는 직업선택의 폭이 더욱 좁았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대다수의 선후배들은 대학원 | |||
을 진학하거나 개인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만들곤 했다. 큰 꿈을 안고 졸업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많았고 결혼과 동시에 전공과 멀어지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런 사회분위기에서 나는 감사하게도 25년 이상을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큰 행운이었다. | |||
나는 늦깎이 대학원생이다. 디자인대학원에서의 공부는 직장을 다니면서 젊은 친구들과 경쟁하는 일이기에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이 2년 반의 시간은 나에게는 흘려보낼 | |||
수도 있던 일상에 신선한 활력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제까지와는 전혀 또 다른 일에도 새롭게 도전할 수 있겠다는 의지가 자라날 수 있게 했다. 나는 그동안의 긴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도전을 시작해 나만의 파인주얼리샵 ‘보연’을 2015년 오픈했다. 고인 채로 멈추지 않고 과감히 새롭게 떨쳐나설 수 있는 용기를 낸 결과이다. 과거 내 인생의 미욱하나마 진지한 첫 발자국을 뗄 수 있게 격려해준, 그리고 지금의 내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다독여준 디자인대학원과 금속공예학과의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 |||
<strong>조 영 선</strong> 공예미술학과 금속공예전공 84학번<br> | |||
파인주얼리샵 보연 오픈, 2015<br> | |||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주얼리디자인전공 졸업, 2015<br> | |||
파인주얼리샵 명보랑 실장, 신라호텔, 2004-2015<br> | |||
명보랑 입사, 하이얏트호텔, 1988<br> | |||
국민대학교 공예미술학과 졸업, 1988<br> | |||
2025년 9월 7일 (일) 16:03 기준 최신판
금속공예학과
마음이 담긴 물건들 – MMMG와 D&D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직접 손으로 만드는 과정을 익히면서 일상 사물들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1999년 학교를 졸업하면서 뜻을 함께 나누던 동문들, 유미영(공동대표), 오현석(CBB대표), 정경희(버드스틱대표)와, ‘디자이너’ 보다는 ‘제작자’로서 밀리미터밀리그람이라는 브랜드를 시작하였다.
공예를 전공하고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며, 물건과 관계하는 모든 것을 향해 관심이 확장되었고, 우리 일상의 작은 사물들을 통해 형태나 기능을 넘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윤리적 순환의 문제까지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너무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값싸고 흔한 물건들은 상점에 가득 차 있지만, ‘맥락’이 없는 이 값싼 물건들은 생산자와 유통업자 더 나아가 소비자인 우리들 모두를 패자로 만들 수밖에 없다. 물건 속에서 생산자의 의도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의 방향도 바뀌어 갈 것이다.
밀리미터밀리그람을 16년 동안 운영하던 나에게도 변화가 왔다. 2013년에는 소비의 질과 속도를 정상으로 만들자는 ‘롱라이프디자인Long Life Design’의 컨셉을 확장시킨 일본의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앤디파트먼트 프로젝트D&Department Project’와 뜻을 같이해,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을 이태원의 MMMG 매장에 함께 열었다. 일본에서 온 롱라이프 제품들을 소개하는 한편, 한국 땅에서도 올바른 생산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소개하는 매장으로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물건을 직접 만드는 공예가가 되지 않더라도, 공예를 통해 일상의 물건들을 다르게 보고 변화를 가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이 있다. 그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를위한 일이다. 물건을 대하는 바른 태도, 올바른 의식이 담긴 소비문화가 확산될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 변화를 위해 공예가의 행동과 태도가 요구되고 있다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
배 수 열 공예미술학과 금속공예전공 92학번
현 ㈜밀리미터밀리그람 공동대표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2010
Korea Design Award 제품디자인부문 영 디자이너상 수상, 2002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금속공예전공 입학, 2000
밀리미터밀리그람 브랜드 런칭, 1999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예미술학과 졸업, 1999
작가로 살기
이 시대에 전업 작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자유를 주는 일인가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이러한 특권(?)을 영위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정열, 인내의 투자가 필요하다. 혹시 작가로의 길을 망설이며 고민에 빠져있는 동문들이 있다면 말하고 싶다. 조금만 더 노력하고 기다려보자고. 어쩌면 나도 기다리는 사람 중에 하나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대학원 시절에 겪었던 작업에 대한 고민과 열망을 기억한다. 그것은 얼마나 원대하고 추상적이었던가.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이 공예에 국한되어야 하는 것인지, 순수미술, 예술의 경계에서 디자인까지 아우르고 싶은 욕심을 가져도 되는 것인지... 결론이 없는 토론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내가 공예작가, 가구 디자이너, 심지어 대장장이로까지 불리는 것을 보면, 아득했던 그때의 고민과 토론이 단순한 안주거리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국민대학교 출신의 금속공예가로 자랑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의 노력도 있었지만 교수님들, 먼저 활동한 선배들, 각 분야에서 폭넓게 활약하고 있는 후배들의 땀과 노력의 결과이다.
10년 혹은 20년 후 지금 이 순간이 어떻게 기억될까? 19세기 초의 시인이며 신학자였던 콜러리지 Samuel Coleridge는 “강압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행복은 없다”고 말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현재를 즐길 수만 있다면, 이야말로 미래의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
이 대 원 공예미술학과 금속공예전공 89학번
현 금속공예가, 가구디자이너, AA공작소 운영
대장공예+3, 예술의전당 갤러리 7, 서울, 2013
개인전 7회, 단체전 100여 회
미국 남일리노이주립대 대학원(Blacksmith) M.F.A, 2003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금속공예전공 M.F.A, 1999
디자인대학원, 늦깎이 학생
졸업과 동시에 나는 교수님 추천으로 파인주얼리Fine Jewelry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 그곳은 특급호텔에 위치한 귀금속 전문점으로, 단순히 귀금속 판매에 머무르지 않고 금속공예작가들을 후원하거나, 초대전을 개최하기도 했던 곳이다. 나는 직접 작품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분야의 전공자들과 교류하며 그들이 꿈을 이루는 데 적게나마 도움을 주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1980년대 후반에는 여성의 직업이 다양하지 않았고 더구나 미대를 졸업한 후에는 직업선택의 폭이 더욱 좁았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대다수의 선후배들은 대학원 을 진학하거나 개인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만들곤 했다. 큰 꿈을 안고 졸업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많았고 결혼과 동시에 전공과 멀어지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런 사회분위기에서 나는 감사하게도 25년 이상을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큰 행운이었다.
나는 늦깎이 대학원생이다. 디자인대학원에서의 공부는 직장을 다니면서 젊은 친구들과 경쟁하는 일이기에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이 2년 반의 시간은 나에게는 흘려보낼 수도 있던 일상에 신선한 활력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제까지와는 전혀 또 다른 일에도 새롭게 도전할 수 있겠다는 의지가 자라날 수 있게 했다. 나는 그동안의 긴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도전을 시작해 나만의 파인주얼리샵 ‘보연’을 2015년 오픈했다. 고인 채로 멈추지 않고 과감히 새롭게 떨쳐나설 수 있는 용기를 낸 결과이다. 과거 내 인생의 미욱하나마 진지한 첫 발자국을 뗄 수 있게 격려해준, 그리고 지금의 내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다독여준 디자인대학원과 금속공예학과의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조 영 선 공예미술학과 금속공예전공 84학번
파인주얼리샵 보연 오픈, 2015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주얼리디자인전공 졸업, 2015
파인주얼리샵 명보랑 실장, 신라호텔, 2004-2015
명보랑 입사, 하이얏트호텔, 1988
국민대학교 공예미술학과 졸업, 19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