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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조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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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국민대학교 조형전</strong> <br>
<strong>국민대학교 조형전</strong> <br>

2025년 6월 17일 (화) 09:01 판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의 교육 50년을 기념하고 기록하기 위한 KDMW(Kookmin Design Media Wiki)가 설치되었습니다.

교육50년

굿 디자인, 굿 디자이너

조형학부의 출범

한국 최초의 디자인 대학 —조형대학의 탄생과 발전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대학체제는 소수의[종합대학교 University와 다수의 단과대학 College으로 구성되었으며, 대학입시 전형도 1차와 2차로 구분해서 학생을 선발했기 때문에 당시 우리나라에는 1차 대학은 일류 대학, 2차 대학은 이류 대학이라는 대학 서열의 사회적인 통념이 있었다. 국민대학은 해방 후 가장 먼저 생긴 사립대학이지만, 1980년 이전까지는 이러한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2차 단과대학이었다. 1973년 3월 새로 부임한 서임수 총장1)은 소규모 2차 단과대학으로는 대학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우선 각 전공 분야에서 이미 잘 알려진 우수한 인재를 교수로 영입함과 동시에 특정한 학과를 중점 육성함으로써 대학의 지명도를 높이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 발전계획 속에 생활미술학과(1971년 설립)와 장식미술학과(1973년 설립)특성화가 있었다. 1974년 장식미술학과에 초빙된 부수언 교수가 이 계획의 실현을 위해 힘썼다. 부 교수는 그 때까지 생활미술학과와 장식미술학과뿐이던 체제를 조정하고 새로운 전공을 개설하고자 했는데 서 총장이 제때 돌파구를 마련해 주었다. 서 총장은 1974년 토목공학과와 건축공학과를 설립하고, 같은 해에 당시 최고의 명성을 가졌던 공간건축 연구소의 건축가 김수근을 건축공학과 교수로 초빙한 후 1975년 이공계열인 건축공학과와 예능계열인 생활미술학과, 그리고 장식미술학과를 하나의 학부로 통합하여 ‘조형학부’라고 명명했다. 김수근 교수가 조형학부장, 부수언 교수가 학부장 대리로 임명되었다. 이듬해인 1976년 일반계열 의상학과(1968년 설립)가 조형학부로 통합되었다. 당시 소규모 단과대학인 국민대학에서 계열이 다른 4개의 학과를 통합하여 조형학부를 만든 것은 국민대학 안에서도 획기적인 것일 뿐만 아니라 1976년 제 1회 ‘조형전’을 개최하면서부터는 전국의 대학 디자인 교육에 큰 반향을 일으켰을 정도로 새로운 발상이었다. 이렇게 조형대학은 한국 최초의 디자인 대학으로 탄생했다.

1981년 한국 최초의 디자인 대학
197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 대학들은 앞 다투어 단과대학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기 시작했다. 현재는 모두 4년제 종합대학과 2년제 전문대학 체제로 되어있지만, 당시로서는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는 일이 각 단과대학의 숙원사업이었다. 국민대학도 1980년 문교부(현재 교육부)에 종합대학 승격을 신청했으며, 그 속에 조형학부의 조형대학 승격 프로그램이 포함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1980년 가을 문교부는 조형학부의 건축공학과는 공과대학으로, 의상학과는 가정학과로, 생활미술학과와 장식미술학과는 문과대학으로 편입시켜 발표함으로써 조형학부 설립 이전으로 상황을 되돌려 버리고 말았다. 이에 정범석 총장은 당시 조형대학의 조형이라는 용어가 문교부 담당자에게는 아주 생소한 개념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조형대학의 취지를 문교부에 건의하여 변화를 이끌어 냈다. 그 결과 1981년 종합대학교로서 국민대학교, 단과대학으로 조형대학이 탄생되었다.

조형대학의 정체성은 디자인 대학College of Design이다. 전국 모든 대학의 획일적 명칭인 미술대학이 아니라, 디자인 관련 학과로만 구성해 특성화함으로써 성공한 사례이다. 조형대학이 선택한 명칭과 1970-1980년대를 통해 행한 교육내용 및 전시회는, 디자인이란, 미술을 응용하는 학문이 아니라, 현대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독자적인 조형 영역임을 실제 학생작품을 통해서 확실하게 지각시켰으며, 학생들에게도 장차 활동하게 될 디자인 전문분야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했다. 그 결과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지방에는 우리 대학의 명칭을 본받은 조형대학, 디자인대학이 생겨났고, 그 때 이후 의상디자인, 공업디자인, 시각디자인의 명칭 등이 보편화 된 것은 모두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의 사례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때부터 배출된 조형대학 졸업생 중에는 현재 한국 디자인 산업계와 대학 디자인 교육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국민대학교 조형전
1970년대 당시 한국의 대학 응용미술교육 상황은 전반적으로 교육시설, 기자재 등이 잘 갖추어지지 않았으며, 교육과정, 지도방법도 체계적이지 못했다. 특히 2차 대학이었던 국민대학의 경우는 전공에 대한 불확실성과 학생들의 자신감 결여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많았다. 대학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에 조형학부 교수들은 대외적으로 조형학부의 인지도를 높임과 동시에 학생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자율적 창작학습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것이 곧 조형전이었다. 조형전은 발상에서 완성까지 학생이 자율적으로 창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하는 지도방법이었다. 발상에서 완성에 이르는 모든 창작 과정을 학생이 스스로 체험하지 않으면 독립된 디자이너 또는 공예가로서 성장하기 어렵다. 모든 학생이 학과별, 학년별로 같은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공통(거시적)의 주제로 동시에 함께 작업하면서(협동), 각자 개인(미시적)의 과제에 몰입(개성)하는, 조형전을 위한 수업은 학생에게는 ‘함께 배우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교수에게는 자기 분석적으로 창의성을 개발하는 지도방 법을 요구했다. 교수와 학생이 일정기간 동안 지속적이고 계획적으로 몰입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조형전은 조형학부 교육목표의 집약된 표현과 다름없었다. 조형전은 1-4학년 전 학생이 참여하는 학생작품 전시회로 그 규모나 내용면에서 지금까지 한국의 어느 대학도 따라하지 못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1976년 제 1회 조형전은 ‘한국인의 손’이라는 주제로 건축학과, 장식미술학과(공업디자인전공, 시각디자인전공), 의상학과, 생활미술학과(도자공예전공, 금속공예전공)의 학생작품을 서울, 광주, 전주, 부산, 대구 5개 도시에 10월-11월, 총 30일 동안 전시함으로써 당시 우리나라 디자인 교육계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그 중에서도 특히 건축학과의 작품과 의상학과의 작품이 디자인 분야의 작품으로 전시되었다는 것은 아주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로써 건축공학이 건축디자인으로, 의상학이 의상디자인(패션 디자인)으로 널리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1) 제 1회 조형전의 슬로건은 ‘한국 유일의 조형학부’와 ‘한국 유일의 조형전’이었다. 그러나 당시 조형이라는 용어는 대중에게 아주 생소하게 받아들여져 열심히 설명해야 했다. 당시 대학 전체가 적극적으로 조형전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대학 안에서조차 조형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아 1977년 제 2회 조형전 때에는 필자가 국민대학 신문의 사설에 조형학부의 특성을 해설하기도 했다.2) 전국 순회전은 1978년의 제 3회 조형전까지 매년 같은 형식으로 진행했다. 3년마다 한번씩 서울에서만 개최하기로 결정한 제 4회 조형전을 계기로 조형대학 교육내용을 더욱 충실히 전시회에 담아 나갔다.

조형대학의 체계와 학풍
1970년대 당시 전국 대부분의 대학교University와 대학College에는 모두 미술대학College of Fine Art이란 명칭 속에 서양화과, 동양화과, 공예미술학과, 응용미술학과, 생활미술학과 등이 혼재되어 있어 디자인과 공예는 항상 미술의 한 분야이거나 미술을 응용하는 분야로 인식하는 데에 지나지 않았다. 기술혁신을 통해서 사회와 문화가 빠르게 변하는 가운데, 특히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요구가 세계적으로 급증하고 있었어도 우리나라 디자인 관련 대학들은 인습적인 미술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1978년까지 3년 동안 전국 순회 조형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조형학부는 1981년 건축학과, 공업디자인학과, 시각디자인학과, 공예미술학과(도자공예전공, 금속공예전공), 의상학과의 5개 전공으로 구성된 한국 최초의 조형대학으로 승격했다. 종합대학 승격 당시 디자인 대학의 명칭을 사용하려 했지만, 그 당시까지만 해도 디자인이라는 용어는 생소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렇지만 대학의 영어 명칭을 ‘College of Architecture and Design’으로 표기함으로써 우리 대학 졸업생들이 외국유학 갈 때에 국내 어느 대학보다 더 디자인 전문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의 정식 명칭에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1983년 장식미술학과를 공업디자인학과와 시각디자인학과로 분리하며 디자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획기적인 것으로서 오늘날 각 대학의 공업디자인학과, 시각디자인학과라는 명칭의 효시가 되었다. 1990년부터 디자인계는 많은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전자 환경이 21세기 디자인의 중요한 전제로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개발 중심적이고, 시장지향적인 디자인 개발에 대한 세계적인 문제의식에 부응해서 조형대학의 디자인 교육에서는 21세기의 미래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디자인 교육에 반영해 왔다. 그 결과 대학입시에서 조형대학 학생들의 수준이 아주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전공인 디자인 분야에 대한 관심도 다양해 졌고, 그 의욕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되었다. “입학하기 전에 들은 소문보다 들어와 보니 더 좋은 대학이 곧 조형대학”이라고 많은 재학생들이 한 결 같이 입을 모으고 있다. 이것은 우리대학의 자랑임과 동시에 앞으로 더욱 좋은 대학으로 발전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한국 최초의 디자인 대학으로서 조형대학은 중요하지 않다. 한국 최고의 디자인 대학으로 발전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그 책임은 현재의 교수들에 달려 있다. 미래의 조형대학도 역시 학생을 잘 가르치는 데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을 열심히 가르쳐 역량 있는 디자이너로 발전하게 하는 일 외에 대학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은 없다. 특히 디자인 분야는 더욱 그러하다. 1976년 교수들이 밤낮으로 열심히 가르친 결과인 ‘조형전’으로부터 시작된 조형대학의 발전이 이것을 증명한다. 1970년대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대학 교육에서 학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변할 수 없는 대전제이다. 1976년 이후 지금까지 이어온 조형대학의 기풍은‘학생을 잘 가르치는 대학’이라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형대학의 장래는 교수들의 열정적이고도 새로운 ‘학생 가르치기’ 프로그램 개발에 달려있다고 확신한다.

정시화
시각디자인학과 명예교수

조형이라는 용어의 발단: Gestalt=Design=조형造形

조형造形이라는 용어는 독어의 게슈탈트Gestalt, Gestaltung의 한자漢字 번역으로서 한국과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게슈탈트는 영어의 형태Form, Shape라는 뜻이지만 실제 내용은 전체Wholeness, 체제화Configuration, 구성Organization 등을 의미한다. 바우하우스의 교육철학이 반영된 실제 명칭은 바이마르 게슈탈트 대학Hochschule fuer Gestaltungin Weimar으로 영어로는 디자인Design 대학으로 번역되며, 일본과 한국에서는 조형造形 대학으로 번역되고 있다. 서양의 Fine Art를 일본이 먼저 순수미술이라고 한자로 번역하여 오늘날 한자문화권에서 관용적으로 통용되고 있듯이 동일한 맥락에서 독일어의 게슈탈트는 조형으로 통용되고 있으며, 영어권에서는 Design으로 번역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에서 조형대학은 곧 디자인대학을 가리키며, 조형예술대학은 미술과 공예, 디자인이 종합되어 있는 과거의 미술대학의 명칭을 오늘날의 동향에 맞게 변경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1975년 국민대학 조형학부의 설립과 1981년 조형대학College of Architecture And Design의 출발은 한국에서 대학 디자인교육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70년대 산업화와 디자인

조형학부 출범 당시의 한국 디자인계 —1975-1985년


조형학부가 교육을 시작한 1970년대는 60년대에 시작된 공업근대화를 위한 지속적인 경제개발 계획과 각종 무역제도의 정비, 수출 지원체제의 확립 등으로 우리나라의 무역과 경제가 본격적인 도약을 이루었던 시기였다. 의류, 가발 등의 초창기 수출 주류품목이 가전제품 등과 같은 공산품 위주로 바뀌었고, 또 급속한 도시화에 따른 핵가족화는 아파트 붐과 함께 가전제품의 폭발적 수요를 촉진시켰다. 이와 같은 산업적 배경에서 우리나라 디자인산업의 초창기는 금성사(현, LG전자), 삼성전자, 대한전선(후에 대우전자에 흡수됨)의 가전업계 3사가 선도하였다.

초창기 산업디자인은 가전업계가 선도
1958년 한국 최초의 산업디자이너를 공개 채용한 금성사는 1960년 공업의장과를 설치하여 1973년 공업의장실로 승격하고 1983년에는 디자인 종합연구소를 설립함으로써 업무의 독자성을 갖게 하고 1991년 디자인 종합연구소장을 임원으로 임명했다. 삼성전자는 1971년 산업디자이너를 공개 채용함으로써 본격적인 디자인 업무를 시작하였고 1973년 디자인 부서가 기술개발실로 소속되면서 1974년부터 해외활동을 포함한 대외적인 활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1971년 설립된 대한전선은 각 공장 개발부에 분산 소속되어 있던 디자이너들을 모아 1973년 의장개발과를 발족시키면서 본격적 디자인 업무를 시작하였고, 주력 제품인 TV에 수직형, 포터블형 등 참신한 디자인을 선보여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자동차디자인 시대
정부에서는 중화학공업 육성책의 일환으로 1973년 국산 자동차의 생산 정책을 공표하였다. 현대자동차는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의 이탈디자인Italdesign사와 자동차 설계 계약을 체결하고 고유 모델 생산에 착수했으며,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6번째로 고유 모델을 갖는 나라가 되었다. 1975년에 출시된 ‘포니’와 ‘포니쿠페’가 차체, 디자인, 성능, 경제성 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음으로써 우리나라의 고유 모델 승용차 생산 계획은 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한국의 자동차 산업 기술 수준을 조립 기술 단계에서 제조 기술 단계로 한 단계 발전시키면서 향후 한국 자동차 산업의 밝은 미래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1981년 종합대학 승격으로 조형학부가 조형대학이 되어 본격적으로 졸업생을 배출하기 시작한 1980년대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대우자동차의 경쟁 체제로 승용차가 대중화되어 소형차 중심의 마이 카 시대가 시작된 시기로서 현대는 ‘포니’에 이어 ‘엑셀’과 ‘프레스토’를, 기아는 ‘프라이드’, 대우는 ‘르망’을 전 세계에 진출시키는 등 국내 자동차 산업이 대량생산 과 국제화로 급격히 성장한 시기였다.

진흥기관과 전문단체
정부는 ‘진흥’을, 기업은 ‘경영’을 한다.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정부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진흥기관을 설립하게 되는데, 1965년에 발족한 사단법인 한국공예·디자인연구소와 한국포장기술협회로 이들은 1970년 설립되는 재단법인 한국디자인포장센터KDPC: Korean Design & Packaging Center의 모체가 된다. 한국디자인포장센터(1991년 한국산업디자인포장개발원KIDP: Korea Institute of Industrial Design & Packaging으로, 1997년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KIDP: Korea Institute of Design Promotion으로, 2001년 한국디자인진흥원KIDP: Korea Institute of Design Promotion으로 개편)는 디자인의 향상과 포장기술의 개선을 위하여 연구 개발 및 지도, 진흥, 포장재 생산과 공급을 주요 사업으로 했다. 디자인에 대한 인식 제고, 새로운 정보의 수집과 보급, 실태조사, 교육연수, 전문서적 발간, 전시사업 등의 진흥사업이 초창기 한국 디자인계에 기여한 공로라 하겠다. 1972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업디자인 전문 단체인 한국 인더스트리얼디자이너회1)가 9명의 산업디자이너들에 의해 창립되어,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매년 ‘창립전’, ‘전기·전자전’, ‘어린이의 세계’, ‘여성을 위한 디자인’, ‘조명전’, ‘산업도자전’ ‘레저전’, ‘어린이의 환경’을 주제로 회원전을 통한 작품발표와 한국공업디자인상 공모전 그리고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KSID 하계대학 등을 통해 굿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켰다.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람회와 디자인 공모전들
1966년부터 개최된 대한민국 상공미술전람회(1977년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람회로 명칭 변경)는 미술이 경제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모하고, 미술계와 산업계를 연결시켜 디자인 개선을 촉진시키고자 상공부에서 주최한 디자인 전반에 걸친 최초의 관전官展이다. ‘미술 수출’이라는 슬로건으로 수출 상품의 고급화와 다변화를 통한 국제 경쟁력 강화를 추진하던 정부는 이 전람회를 개최함으로써 미술계와 산업계를 연결시켜 수출 및 국내 디자인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고, 디자인 분야는 이를 계기로 전문화되면서 디자인 학계와 실무에서 활동할 전문디자이너들을 배출하는 등용문이 마련되었다. 1978년에는 제1회 한국공업디자인상 공모전이 한국 인더스트리얼디자이너협회KSID주최로 개최되었는데, 이는 디자인 전문단체가 주최한 최초의 산업디자인 공모전으로 ‘소형 자동 차’, ‘스트리트 퍼니처’, ‘어린이 부문’, ‘전기 전자제품’의 주제별로 공모하여 입선 이상의 수상 작품들은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전시관에서 전시되었다. 1983년에는 금성사가 금성 디자 인 공모전을 개최하였으며 이후 격년제로 시행되었고 1990년 ICSID의 공인을 받아 1991년부터 금성 국제디자인 공모전으로 승격하여 격년마다 실시되었다.

언론과 사회의 디자인 관심
디자인이 전문화되고 세분화되면서 각종 정보의 체계화가 절실히 요구되던 1976년 월간 잡지인 ‘디자인’이 창간되어 국내 디자인의 정보 수집과 확산에 기여하고 대중화에 앞장섰으며, 77년 ‘꾸밈’, 80년 ‘포름’, 87년 ‘시각디자인’, 88년 ‘월간 공예’, ‘디자인 저널’이 창간되었고, 이어서 ‘디자인 비즈니스’, ‘코스마’, ‘디자인 네트’ 등이 뒤를 이었다. 1983년 KBS텔레비전이 방영한 6부작 기획물 ‘세계는 디자인 혁명시대’는 매스컴의 위력을 실감시키며 큰 효과를 파급시켰다. 이 기획은 매스컴의 입장에서 일반인들에게 디자인의 윤곽만을 소개한 것에 불과했지만 당시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디자인의 가치를 이해시키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85년에는 국내 공산품 중에서 디자인의 우수성을 인증하기 위하여 ‘GD마크’를 부여하는 굿 디자인 시상제도를 제정하여 현재까지 매년 시행하고 있다. GD상품 선정제의 실시로 산업계에는 디자인 개발 촉진을 위한 동기 부여를, 소비자들에게는 상품 선택의 안목을 높임으로써 산업의 발전과 생활의 질적 향상을 함께 도모하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또 1986년과 1988년에 서울에서 개최된 제10회 아시아 경기대회와 서울 올림픽은 그 준비 과정에서부터 우리나라 디자인 사에 커다란 이정표를 세우게 된다. 그것은 주최국으로서 디자인 수준이 급상승되었기 때문이다.

조형대학과 산업체
초창기의 우리나라 산업디자인은 가전업체가 주도했지만, 그 당시 가전 3사의 제품은 종류와 수요가 매우 적었고 제조 기술 수준도 낮아 디자이너 채용도 소수에 그쳤기 때문에 후발 대학인 우리 졸업생들에게 산업체 취업은 좁은 문을 통과하는 일이었다. 그때 새롭게 떠오르는 자동차산업은 우리 대학의 졸업생들에게는 블루 오션이었다. 80년대 초 조형대학에서는 기존의 산업미술학과를 공업디자인학과와 시각디자인학과로 분리하여 전문화하였으며, 특히 공업디자인학과에서는 가장 먼저 ‘자동차 디자인’ 과목을 4학년 1,2학기에 개설하고 집중한 것이 주효해, 자사의 우수디자이너 확보를 위한 자동차 제조회사들의 경쟁적 지원 속에 많은 졸업생들을 동 분야의 우수디자이너로 진출시킬 수 있었다. 1979년부터, 조형대학의 학장이었던 건축가 김수근 교수의 공간연구소에 ‘ID파트’를 설치하고 5인의 산업디자이너들과 함께 ‘건축과 산업디자인의 콜라보레이션’을 5년간 진행한 과정과 결과를 토대로 80년대 초 ‘환경디자인론’, ‘환경디자인Ⅰ’, ‘환경디자인Ⅱ’를 개설함으로써 1983년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람회부터 ‘공업디자인부’가 ‘제품 및 환경디자인부’로 변경되는 디자인 산업의 변화에 선도적으로 적응하였다. 1983년 조형대학에서는 기존의 산업미술학과를 공업디자인학과와 시각디자인학과로 분리 개편하면서 국내 최초로 대학의 학과 명칭에 ‘디자인’이라는 외래어 사용이 허가되었다. 이를 계기로 ‘CADComputer Aided Design’, ‘산학협동 프로그램’등 미래지향적 교과과정을 개설함으로써 1984년 당시 문교부로부터 이 분야의 특성학과로 지정되었고, 이러한 교육의 과정과 결과를 모든 재학생들의 포트폴리오Portfolio에 수록하여 산업체 입사시험 면접 시 활용한 것도 성공요인의 하나였다. 이렇게 7, 80년대의 조형관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조형학부가 출범하고 이듬해인 1976년 3월 교수로 임용되어 합류한 후 지난 2012년 8월에 정년퇴임을 하기까지 36년 6개월을 함께하는 동안에도 그 불빛은 여전했다.
김철수
공업디자인학과 명예교수


종합적 영역의 디자인교육

통합적 가치의 시대와 디자인 교육

광복 후 근대 교육을 시작하고도, 예술 교육은 일제의 것을 준용하고 있었다. 한동안 친일예술가가 회자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미술과 디자인이 혼동되었고 건축은 기술공학 에 편중되어 있었다. 그런가 하면 1955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건축이 끼어든 것은 건축의 예술지향이라는 목적성을 드러낸 것이다. 건축이 예술인가라는 논의는 요즈음 들어 많이 수정되었지만, 디자인과의 콜라보레이션은 이미 바우하우스에서부터 익숙한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닫힌 독자적 전공의 구습으로 인해 열린 총합적 시스템의 구현 은 멀어 보였다. 1970년대 산업과 디자인이 융합을 도모할 즈음, 건축은 설계 직능을 특화하고 있었다. 공학기술과 디자인 기량을 구분하며 건축공학과와 건축학과가 교육 목표를 달리 하기 시작했다. 한국 건축교육사에서 후발 주자인 국민대학교 조형학부 건축학과의 가속력은 건축공학과와 차별되는 시스템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이 새 그릇에 설계중심교육을 담았다. 이는 당연히 조형학부의 이웃 전공들과의 교합 구조에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20세기 후반 한국 사회문화가 그러했듯이, 부문의 통합성이 지배적인 수단이었다. 기업도 CI로 경영의 개념을 표시하며 이미지를 앞세웠고, 디자인과 생산이 결합된 시스템이 산업 이라는 개념이 형성되었다. 그즈음 조형대학이 어떻게 구조와 내용과 형식의 통합성을 이루는가 돌이켜본다.

통합적 연구-교육 시스템 통합적 시스템이라는 것은 교육으로 구시求是하기 위한 - 미학적 집합을 - 단단한 조직으로 - 병치 구조를 만들되 - 사슬처럼 연계되는 겹침에서 - 미묘한 경쟁 아래 - 상대성을 발 휘하며 - 꼴라쥐의 모습에서 나타나지만 - 그 합목적성은 총합적 효과에 이르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개체적 우월성의 집합으로 통합적 수월성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자주 전 공보다는 대학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1980년 조형대학은 김수근 교수를 초대 연구소장으로 환경디자인연구소를 설치하는데 연구와 실천을 동조시킬 체계였다. 당시 대학에서 연구 프로젝트의 기회가 많지 않았고, 대학 에서도 독려하는 태세가 아니었다. 처음 서울시에 연구용역의 계약을 하는데 이사장의 직인이 필요했다. 재단 사무처에 직인사용을 의뢰했지만 그런 것은 해본 적도 없고 안 된단다. 지금처럼 산학협력단이 연구를 지원하고 대학이 연구용역을 독려하는 시스템은 상상도 못했다. 할 수 없이 연구소가 계약 당사자가 되려고 독자적인 사업자 등록을 성북세무서에 신 청했는데 이도 반려되었다. 한 기관(대학교) 안에 복수의 사업자 번호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곤란에 처했는데 꼭 안 되는 일은 아니었다. 경영대학 모교수의 협조로 다시 추진 하니 사업자 번호가 나왔다. 1983년 연구소가 독자적인 계약자가 되니 살림이 훨씬 편해졌고, 연구 프로젝트도 줄지어 들어왔다. 초기의 프로젝트는 주로 도시설계와 건축기획이었고 다른 전공들의 연구 프로젝 트도 이 사업자등록 덕분에 수월하게 추진할 수 있었다. 조형대학 안의 커뮤니티도 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연구비의 일부도 적립해 갔고, 연구저널 《조형논총》도 연구소가 편 집했으며, 디자인 심포지엄도 여러 번 가졌다. 정년퇴임 교수의 송별도 연구소가 주관했다. 조형대학 야외스케치 행사에는 교수들이 각자 음식을 만들어와 서로 권하며 함께 했다. 조형대학 안에서 전공 사이에 견제와 긴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런 가족 같은 교수 사회는 어디에서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조형대학의 교수사회는 그런 분위기만이 아니라, 조형전이라는 의기투합도 이루어냈다. 식구들이 한 집의 공간을 쓴다는 것도 중요하다. 자못 공간이 집단의 사회성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1978년 건립한 중앙도서관이 지금의 성곡도서관으로 이전하고, 1993년 현재의 조형관을 증개축하여 1994년 조형관으로 모두 들어갔다. 1998년에는 3차 증축을 하여 공간을 안정시켰다. 조형관은 원래 도서관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실습-교실로서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으나, 비교적 적절한 밀도로 대학 살림을 꾸려갔다.
김수근의 존재감과 포스트 김수근
김수근 교수는 1975년 우리 학교에 부임하기 이전부터 새로운 디자인 교육 체계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는 1950년 서울대학 건축공학과에 입학하나, 곧 해방과 전후의 교육 환경에 실망한다. 1952년 서울대학을 중퇴하고 일본에 들어가 1954년 도쿄예술대학에서 예술-건축학으로 자신의 성장 프로그램을 짠다. 1960년에는 도쿄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이수한다. 1960년 귀국하여 김수근건축사무소를 시작하면서 대학 교육에 참여한다. 1961년 홍익대학 건축미술과에 전임강사, 1972년 건국대학에도 잠시 적을 두었으나 내외의 사정으로 거두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예술과 디자인과 건축의 합일合一을 공간 그룹에서 이루고 있었다. 월간 《공간》 창간(1966), ‘공간 사랑’의 예술 발굴, ‘인간환경연구소’(1969)의 전통과 인문학적 접근 등은 그의 문화의 범주를 알게 한다. 1979년에는 공간연구소에 공업디자인 부문이 영입된다. 여러 저널이 그를 르네상스 맨이라 말했는데, 예술과 문화의 종합적 구조에서 일하고 있는 바를 본 것이다. 조형대학의 교육 체제는 여러 방향에서 가치가 이야기 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연대적 프로그램이다. 김수근의 ‘공간’ 조직에는 싱크 탱크가 있어서 그의 문화적 이상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이 시대사회적 이상을 얹어 총합적 문예체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디자인 교육에 대한 이상은 발터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Bauhaus, Dessau나, 프랭크 로이드 라 이트의 탈리어신 웨스트Taliesin West, Scottsdale처럼 도제적 구조에서 인적 종묘種苗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뜻은 1982년 공간의 원서동 시대를 거두고, 파주 홍릉으로 옮겼을 때 가능성이 있었다. 말하자면 작업과 생활과 도제적 조직이 이루는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1986년 여름 김수근 교수는 떠났다. 그동안 김수근 교수의 존재감은 그야말로 ‘김수근 효과’였다. 한국의 큰 별을 떠나보낸 것은 아쉽기 짝이 없지만, 이제 포스트-김수근 대학에서도 ‘항상 새로운 개념으로 다시 서있을 자기自己’를 찾는 수밖에 없다. 어떤 교수의 기념적 존재감이라 하더라도, 그의 조상彫像을 두 개나 한 캠퍼스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김수근이 유일할 것이다. 1996년 별리 10주기에 조형대학 로비에 만든 것이 있고, 다른 하나는 2009년 건축대학이 독립하면서 설치한 것인데 모두 금누리 교수가 만들었다.

공합적共合的 교육 시스템 조형전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조형전은 홍보 효과와 종합 교육 시스템으로 돋보였다. 조형전의 즐거움은 그 해의 주제를 논의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의지와 생활문화의 창조’(1981), ‘조형 2000’(1987), ‘디자인 시대정신’(1990) 등이 그렇다. 아마 전시 주제를 실사구시로 해보기 시작한 것은 ‘Green 21’(1995)부터일 게다. 윤호섭 교수의 리드도 튼실했지만 표현과 매체도 다양해졌다. 전시회와 함께 여러 전공들이 모여 논의하던 세미나와 연구는 왜 함께 공부하고 같이 전시하는가의 합목적을 이룬 셈이다. ‘사이덱스CyDEX ’98’도 컴퓨터 응용이라는 디자인 수단에 집중하며, 그 후 조형대가 최고의 CAD 역량을 갖추는 데 줄기세포를 이룬 셈이다. ‘소수Minority를 위한 디자인’도 디자인의 사회성과 합목적에서 실천적인 교육 경험이었다. 건축 전공이 조형대학 전공들과 어떤 부가적 가치를 공유했는지는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다. 건축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세련된 표현은 괄목할 만한 것이다. 타 전공들과 나누던 공간과 구조의 건축적 이해도 주목할 만하다. 금속-도자 공예가 건축을 모델로 하는 프로젝트도 여럿 보았다. 의외로 의상학과 작품에서 구조화와 공간 구축의 뜻을 활발히 읽는 것이 흥미로웠다. 비록 1학년 기초전공이지만, 전 전공이 함께 학습하던 ‘기초조형’, ‘그린디자인’은 다른 대학교에 가서도 두고두고 자랑하던 시스템이다. 물론 전공과목 교실에서 타 전공학생의 수강생을 자주 발견한다. 아마 이러한 동지적 교육 환경은 이후 흐려져 갈 것이다. 개인화 되어가는 대학 사회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 설계교육도 대학의 정체성 보다는 교수 개인의 스튜디오가 지향하는 개별성이 지배하여 간다. 조형대학은 올해 40년 불혹不惑의 잔치를 한다. 이 기록의 화두를 ‘통합적 가치의 시대’로 시작했지만, 그것이 불변의 가치인가는 모른다. 이미 분해와 개별의 가치가 더 유려해지는 시대문화를 지나고 있다. 이제 타성이 호시탐탐하는 중년기에 들어서며 새로운 교육철학을 더 자꾸 물어야 할 것이다.
박길룡
건축학부 명예교수


시대정신, 디자인 윤리

새로운 시도

01 조형전

국민대학교 조형전
조형대학의 이념과 교육성과는 조형학부 출범 이후 각 학과의 학생작품들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대학 차원의 종합디자인 전시회로 기획된 ‘국민대학교 조형전The Exhibition of College of Design, Kookmin University’을 통해 통합적으로 발표할 수 있었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전교생이 참여하는 조형전은, 대학 본부의 전폭적인 지원, 대규모의 종합적인 구성, 교 수와 학생 간의 혼연일체의 열정 등에 의해 대학의 최대행사로 자리 잡았으며, 1976년 조형학부 출범과 같은 해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14회에 걸쳐 개최되었다. 각 학과의 출품작들 속에 반영된 새로운 교육 체계와 내용은 국내의 건축, 디자인, 공예 분야의 교육계와 현장으로부터 큰 반향을 이끌어냈으며, 초기의 3년에 걸쳐 계속된 지역 도시 순회전은 조형대학과 국민대학교를 전국적으로 알리는 획기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조형전의 개최는 조형학부 초기에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고취하기 위한 정규 수업 이외의 자율적 창작학습 프로그램이었다. 교수들은 회의를 거쳐 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리고 대학을 가장 빨리 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조형전을 선택했으며, 이를 대학 본부가 수용함으로써 조형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조형학부가 출범한 해인 1976년에 부임한 정시화 교수는 조형전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조형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작품이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첫째, 전임교수의 의욕적인 학생지도이다. 정규수업시간 외에 자발적으로 조형전 준비기간 동안 학생들의 작품창작 지도에 몰입하는 일이다. (중략) 조형전 준비기간 동안 학생들과 함께 야간작업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학기 중의 학점중심 교과수업은 원리학습이기 때문에 주어진 학기 안에 완성도 있는 결과까지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조형전을 위한 수업은 학기수업의 연장일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배운 원리를 실제사례에 시뮬레이션 해보는 과정까지 교수가 직접 지도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성취감과 실력은 당시 타 대학 학생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도 일취월장했다.

둘째, 1970년대의 대부분의 대학은 실습실과 기자재와 관련하는 한 실습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러나 국민대학은 조형전을 계기로 개인의 작업 공간, 공동 워크숍, 기자재 등은 다른 어느 대학보다 앞섰기 때문에 조형대학의 교육환경은 지금까지 타 대학의 모범이 되고 있다. 현재 조형대학의 건물은 각 학과 학생들의 개인 스튜디오임과 동시에 공동 워크숍, 그리고 작품전시장으로서 종합 디자인 센터가 된 것은 모두 조형전의 컨셉트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셋째, 조형전의 발의는 비록 조형대학의 교수들로부터 비롯되었지만 대학본부의 예산지원과 행정지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이규석 총장이 지원한 조형전 예산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으며, 전적으로 학생들의 작품제작과 조형전 디스플레이를 위해서만 사용되었을 뿐 조형전을 위한 일체의 교수 인건비에는 스스로 그 어떤 예산도 편성하지 않았다. 이것은 지금까지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다.”또한 당시 조형학부의 부수언 교수는 조형전에 관해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조형전은 1학기와 여름방학에 준비하고 가을에 오픈했는데, 준비기간에는 디자인 계열 교수들이 대부분 학교에서 생활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갔다 올 정도로 열심히 했다. 조형전 준비 기간에는 학생들도 학교에서 살다시피 하였다. 잠자리는 본인들의 책상 위였다. 마치 군대생활과 같았다. 전시 장소는 미도파 백화점이었는데 많은 학생들과 디자인 지망 고등학생들이 전시회를 보러 왔다. 여기서 힘을 얻어서 지방 순회전을 하게 된 것이다. 광주, 전주, 대구, 부산 등을 번갈아 순회전을 했다, 당시만 해도 지방에서 그러한 전시회를 볼 기회가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렇게 조형전은 계속되었다.”1)

국민대학교 개교 30주년을 기념하며 출범한 1976년의 1회 조형전은 서울, 광주, 부산, 대구, 전주에서, 이듬해의 2회전은 서울, 대구, 광주, 대전, 춘천, 연이어 1978년 3회전은 서울, 광주, 마산, 대구, 청주 등에 연속적으로 개최되면서 전국의 주요 도시들에서 당시까지 생소했던 디자인 중심의 조형세계와 창작물을 종합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으며, 지방의 많은 고등학생들로부터 조형대학에 대한 선호도와 지원율을 크게 끌어올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1981년에 개최된 4회 조형전부터는 약 3년마다 정기적으로 개최되었으며, 장소 역시 서울에 한정되었는데 7회 조형전까지는 한국디자인포장센타 전시장에서, 이후에는 교육현장인 조형대학의 전시장과 실기실을 활용하여 전시회, 학술행사, 공연행사, 고교생워크숍 등의 종합적인 행사로 개최되었다.
출품작은 재학생들의 수업결과물을 위주로 하되, 매 전시회마다 채택한 전시주제를 해석하는 기획 작업을 병행함으로써, 디자인교육에서 요구되는 사회성과 시의성을 반영하고 이를 교육적 콘텐츠로 삼았다. 한국성과 디자인방법론을 부각한 ‘한국인, 한국’ 시리즈(1·2·3회), 환경문제를 다룬 ‘그린디자인’(8회)2), 디지털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Cydex’(9회),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고취한 ‘소수를 위한 디자인’(10회)3) 등이 대표적인 예로, 이들 시의적 주제에 대한 성찰과 이를 표현한 작품을 통해 디자인의 사회적 공여와 실천적 태도를 고취했다. 2010년에는 해외 최초의 조형전이 북경 칭화대학교에서 개최되었다.

역대 조형전
역대 조형전
회차 전시회명 연도 장소
제1회 한국인의 손 1976 미도파백화점 장미홀(서울), 전남일보사 전일회관(광주), 탑 과학미술관(부산), 동아백화점 비둘기홀(대구), 풍남백화점(전주)
제2회 한국인의 눈 1977 미도파백화점 장미홀(서울), 홍명미술회관(대전), 동아백화점 6층 화랑(대구), 학생회관 1층(광주), 시립문화관 대회의실(춘천)
제3회 한국의 조형미 1978 한국디자인포장센터(서울), 학생회관(광주), 학생과학관(마산), 동아백화점(대구), 청주문화원(청주)
제4회 인간의 의지와 생활문화의 창조 1981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전시관
제5회 조형전(무제) 1984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전시관
제6회 조형2000 1987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전시관
제7회 디자인시대정신 - 하이테크 디자인과 로우테크디자인 1990 한국디자인포장센터 전시관
제8회 Green 21 1995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9회 Cydex ’98 1998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0회 소수를 위한 디자인 2001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1회 나눔 - 디자인교육과 실천 2004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2회 디자인 - 새로운 파트너쉽 2006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3회 From Logic to Magic 2010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해외조형전: 중국칭화대학교 미술대학갤러리
제14회 IM 2013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5회 디자인 잇다 2014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6회 Artificial Nature 2019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7회 MeraDEx:Meta-Design Experiment 2022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제18회 IM 2013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다음 글은 1977년 정시화 교수가 교내 신문인 국민대학보에 기고한 사설의 전문으로, 정 교수는 “당시 대학 전체가 적극적으로 조형전을 지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조형의 개념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기고하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1977년 국민대학보, 사설 〈제 2회 조형전에 붙여서〉 우리는 ‘웅비 국민대학’의 기치를 높이 들고 개교 3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학술제, 예술제, 체육제를 성공적으로 끝맺은 바 있으며, 금년 31주년을 맞이하는 대학축전에서는 북악인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더욱 알차고 진지하게 진행하고 있다. 자칫 형식적인 축제 분위기로 흐르기 쉬운 것이 대학 축제인데, 우리의 경우는 아주 조직적이고, 자치적이며 질서정연하게 거행되어 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작년의 축전이 이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이러한 축전 가운데에서도 대외적으로 또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것이 조형학부의 조형전으로서 여러 가지로 그 의의가 크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학과, 생활미술학과의 도자공예전공·금속공예전공, 의상학과, 장식미술학과의 공업디자인전공·상업디자인전공 4개 학과 6개 전공의 남녀 학생들이 창작한 작품들이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대구·광주·전주에서 순회 전시하였으며, 이 계통의 전람회로는 그 규모나 내용에 있어서 예외가 없었던 것으로서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으며 국민대학의 이미지를 선양하는 데 크게 이바지 하였던 것이다. 성공적으로 끝맺었던 작년의 전람회에 이어 13일부터 23일까지의 서울전에 계속해서 11월 27일 까지 대전·대구·광주·춘천에서 개최되는 제2회 조형전이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되길 희망하며, 이 기회에 우리는 ‘조형’의 의미를 다시 음미하고 조형전의 의의를 피력함으로써 북악인의 성원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먼저 이해되어야 하는 것은 조형이라는 용어가 생소한 말이거나 또는 전혀 새로운 용어는 아니라는 점이다. 돌이켜 보건데 1960년대 초반부터 정부의 정책이 생산교육의 이념을 보다 강조함에 따라 예술교육에 있어서도 지금까지의 그리기 중심의 미술교육에서 만들기 중심의 조형교육을 강조하게 되었고, 그때 이후 개편되었던 미술교과서에서도 특히 이러한 점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소위 응용미술학과의 지망생이 급증하였으며 각 대학에도 응용미술계학과가 신설되어 왔던 것이다. 사실 응용미술이라는 용어는 이론상으로는 타당한 용어가 아니지만 그 때 이후부터 생활미술, 장식미술, 응용미술이 학과 명칭으로 공식화됨으로써 사실상 더욱 통념화 되어버렸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형이라는 용어는 표현이라는 용어와 비교함으로써 더 쉽게 그 내용을 이해 할 수 있다. 표현적인 것을 ‘그리기’에 비유한다면, 조형적인 것은 ‘만들기’에 비유할 수 있다. 미학적인 논의에 깊이 들어가지 않는 한에 있어서 조형이란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기’를 주안으로 하는 실용예술을 실현하는 분야를 의미한다. 우리대학의 조형학부가 바로 그렇다. 집 만들기(건축), 공예품 만들기(도자, 금속공예), 옷 만들기(의상), 공업 생산품 만들기(공업디자인), 포스터, 캘린더, 포장 만들기(상업디자인)와 같은 그리기를 주안으로 하는 미술은 아닌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 미의 구극성이나 절대성을 추구하는 일면이 있고, 미의 효용성 또는 공리성을 추구하는 일면도 있으며, 양자의 결합을 추구하려는 가설도 존재할 수 있지만 적어도 우리들이 의미하는 조형이란 미의 효용성을 집약적으로 추구하는 실용미술의 분야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우리들이 인습적으로 생각해 오던 미술의 개념으로는 우리의 조형전은 이해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소위 순수미술에서 획득된 미의 원리로써는 이해되지 않는 형태들인 것이다. 나아가 산업이나 실용에 응용한다는 피상적인 의미의 응용미술의 개념으로도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의 사회구조나 산업, 또는 현대인의 생활의 리얼리티 속에 내재하는, 현대의 생활 그 자체가 요구하는 새로운 실용미학의 추구가 바로 현대조형의 목적이며, 조형학부가 연구해 나가는 방향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대학의 조형학부는 오늘의 시대가 절실히 요청하고 우리의 사회가 긴급히 요청하는 실용 미술학과만으로 구성된 조형대학의 체제와 특성을 갖추고 있는 명실 공히 디자인 대학인 것이다. 끝으로 조형에 대한 이해 못지않게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조형전이 비단 조형학부의 행사로 생각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이다. 물론 조형학부의 학생작품으로써 이루어지는 전람회 이긴 하지만 이 전시회에 나타난 작품, 그것을 제작 할 수 있는 환경, 과정, 지도방법, 내용, 의식의 흐름 등이 국민대학 전체의 교세나 학교 환경, 학습 분위기가 생산적이고 창조적이라는 의미를 갖게 하며, 그러한 것을 상징적으로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형학부만의 행사는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학이 안정되고 면학 분위기가 가장 바람직한 상태가 아니면 이렇게 체계적이고 순수한 창작품들이 창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창조교육을 심화하는 한 표본으로서의 국민대학을 조형전으로서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훌륭한 전시회가 될 수 있게 한 학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도해 주신 교수 및 강사, 그리고 진지한 창작 의욕을 보여준 학생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02 입시제도개혁

창의적 인재를 찾기 위한 노력

조형대학은 고교생들의 입시 준비과정이 대학교육의 출발이 되는 기초조형교육에 해당된다는 인식하에, 바람직한 입시제도를 개발하고 시행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특별히, 계량 화가 용이한 학력 평가에 비해 다양한 가능성과 변수를 가진 실기능력 평가 방식에 관해 대학 차원의 다각적인 연구와 제도 개선을 이루어왔다. 1976년 조형학부 출범부터 2001년까지 조형대학은 타 미술대학과의 호환성을 중시하여 석고소묘를 시행했다. 중형크기의 석고인 간도, 아리아스, 모리엘, 투사 중 시험당일에 출 제된 한 개를 소묘하는 방식이었으며, 1996년부터 공예미술학과와 의상디자인학과는 이 석고소묘와 함께 평면구성 시험을 병행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부터 창의적인 디자인교육을 위한 새 입시제도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였고 이에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실기고사인 ‘발상과 표현’이라는 고사안을 개발하였으며 이는 타대학의 입시와 차별화된 것이었다. ‘발상과 표현’은 실물의 외형을 주로 다루던 이전의 방식으로부터, 아이디어와 상상력을 강조하는 것으로, 주어진 주제를 창의적으로 해 석하고 표현하는 실기고사 방식이었다. 당시 매우 새로웠던 이 고사는 주변의 우려와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으나, 지속적인 논의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차례의 모의시험을 통 한 시뮬레이션, 그리고 고등학교 교사, 입시학원 등의 유관기관의 관계자를 대상으로 공청회를 갖고 최종적으로 2001학년부터 적용했다. 예를 들어, 시행 첫 해인 2001학년도 입시에서는 ‘자신의 미래직업을 생각하고 이와 관련한 실내공간을 구성하고 표현하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이는 각 수험생의 희망 분야에 대한 관심의 정도와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표현능력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에서 개발한 ‘발상과 표현’은 시행된 지 몇 년 만에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대학입시 고사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이후 약 10년 동안 대학 실기고사의 대명사로 불리었다. 국내의 응용미술(디자인) 관련학과에서 해방 이후 거의 반세기 가까이 지속되어온 석고소묘를 입 시 현장으로부터 밀어낸 결과가 되기도 했다. ‘발상과 표현’이 시행되던 2001년부터 조형대학에서는 전공에 따라 일부학생들을 실기시험 없이 학력으로만 선발하는 비실기전형선발을 시행했다. 조형분야에 관심은 있으나 형편 상 입시미술을 준비하지 못한 일부의 학생들에 대한 배려이며,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들의 혼합으로 인한 교육 현장에서의 시너지효과를 얻고자 한 기획이었다. 1990년대 말부터 정시 특차에서 소수를 선발하던 인원을 확대하여 2002년부터 별도의 군에서 약 14%의 학생을 실기 없이 전형하였다. 새로운 실기고사의 영향력과 함께 무실기전형 역시 타 대학으 로 확산될 것을 우려한 입시학원가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으나, 시행을 거듭하면서 정착되어 다소간의 비율과 인원 변동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또한 타 대학의 입시 제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2001년부터 10년 이상 큰 변화 없이 시행되었던 조형대학의 입시제도는, 2010년 이후, 그동안 부분적으로 드러났던 문제점을 개선하고, 교육 환경의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점차 세분화되고 있는 디자인 분야의 학문별 특성이 입시선발 방식에서의 다변화를 요구해 왔으며, 한편으로는 학생과 학부모의 사교육 부담을 조금이라 도 덜 수 있는 방안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2012년부터 조형대학에서는 입시위원회를 통해 새 입시제도를 연구해 왔으며, 2015년 현재 확정을 앞두고 있다. 조형대학은 앞으로도 대 학 교육과의 관련성에 따라 전공별 요구를 수용하되, 고교생의 수준을 감안하고, 사교육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바람직한 입시제도를 운영해 나갈 것이다.


03 조형실기대회

내 아이디어에 불 붙이자!

조형대학은 고교생들의 창의력과 조형실기 능력을 고취하고 우수한 잠재력을 가진 학생을 발굴하기 위한 목적으로 2000년부터 조형실기대회를 개최했다. 조형분야를 전공하려는 전 국의 고교생이 학년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으며, 입시고사의 틀에서 벗어난 비교적 자유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경험의 장으로 마련한 행사였다. 또 한 시상제도를 통해 최상위의 입상자들이 조형대학에 실기특기자로 지원하는 경우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특전도 제공함으로써 실기특기자를 발굴하는 한편, 대회의 경험을 축적하 면서 바람직한 입시제도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고자 했다. 대회는 평면조형과 입체조형 2개 부문으로 나누어 시행했다. 입시를 준비하는 고교생들에게 익숙한 평면조형뿐 아니라, 고교생들의 기초조형능력 배양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입체조형도 포함시켜 교육적 효과를 꾀했다. 2000년 제1회 대회에 700명이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대회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지원자 수가 늘어 2006년 제7회 대회에는 1만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응시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고사 당일에는 지원학생 뿐 아니라 지도교사, 가족 등이 함께 국민대학교를 방문하면서 캠퍼스를 메우기도 했는데, 조형실기대회는 국민대학교 개교 이래 단일 행사로 가장 많은 외부방문객이 캠퍼스를 방문하는 행사라는 기록을 만들면서, 국민대학교와 조형대학을 전국적으로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14년의 제15회 대회까지 연인원 84,916명이 참가했으며, 부문별로는 평면부분에 69,828명, 입체부문에 15,088명이 응시했다.


역대 조형전
년도 총 지원자 수 평면조형 입체조형
제1회 2000 700 452 248
제2회 2001 2054 1214 840
제3회 2002 2439 1450 989
제4회 2003 4231 3197 1034
제5회 2004 6630 4956 1674
제6회 2005 9579 7575 2004
제7회 2006 10331 8483 1848
제8회 2007 9112 7800 1312
제9회 2008 3850 3091 759
제10회 2009 3418 2408 1010
제11회 2010 4949 4177 772
제12회 2011 5788 4987 801
제13회 2012 8445 7571 874
제14회 2013 8191 7576 615
제15회 2014 5199 4891 308


04 열린교육

제로원(01)디자인센터

국민대학교 유일의 오프캠퍼스 교육동이라고 할 수 있는 제로원디자인센터는 애초 조형대 학이 담당한 디자인교육의 전진기지로 출범해 운영되다가, 이후 대학본부 차원의 복합적인 교육기관으로 변환되어 현재는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성북구 동숭동 1-1번지에 위치한 센터는 2004년에 출범했으며, 센터의 명칭는 2001년에 설치되어 잠시 운영되었던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의 창업 인큐베이터 ‘제로원 스튜디오’에서 가져왔다. 설립 당시 센터의 교육 목표는 그동안 조형대학과 디자인대학원이 구축한 교육 콘텐츠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정규 대학과정의 권역 밖에 있는 일반인들을 교육하고자 함이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문화가이며, 미술, 연극 등 청년 문화 활동이 왕성한 동숭동에 설립함으로써, 디자인교육의 인프라를 보다 확장하는 한편, 본 캠퍼스에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홍보 활동도 시도하고자 했다. 초대 소장은 당시 디자인대학원 원장이었던 시각디자인과의 유영우 교수가 역임했으며 같은 과의 이준희 교수, 금속공예학과의 정용진 교수가 부소장을 역임했다. 출범한 해에 이루어진 센터 건물의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강의장, 실습실, 전시장, 회의실, 도서관 등을 갖춤으로써 디자인교육기관으로서의 수준 높은 하드웨어를 구축했다. 교육내용은 여러 단계의 디자인 실무교육과정과 학점은행이수 강의 등을 중심으로 했으며, 전공별로는 시각디자인과 금속공예·주얼리 디자인 관련 강좌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시각디자인의 경우, 영상과 웹디자인, 그래픽디자인 등 일반인들의 관심도가 높은 시각디자인 전반의 강좌가 이루어졌다. 주얼리디자인의 경우, 1998년부터 강남교육관1)에서 운영되었던 금속공예학과 주관의 ‘주얼리디자인센터’프로그램이 제로원디자인센터로 이전되어 합류했으며, 이 강좌들은 학점은행 강좌들과 함께 2015년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센터의 출범 초기에는, 강좌 운영과 함께 대규모의 국제적인 전시행사와 강연회도 기획되어 국내 디자인계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각각 1만 2천명과 8천명의 방문객 수를 기록한, 2004년의 스테판 시그마이스터전과 2005년의 파브리카 10주년전 등이 대표적이다. 2006년 2대 소장으로 의상디자인학과의 박선경교수가 취임하여 2008년까지 재임했다. 이후 제로원디자인센터는 대학 본부의 평생교육원에서 운영하게 됨에 따라 소장도 평생교육원장이 겸임하게 되었으며, 디자인관련 강좌는 주얼리디자인 전공 외에는 점차 축소되었다.

‘제로원’의 명칭 유래 1999년 7월 말, ‘BK21’ 사업 신청서 작성으로 분주했던 조형대 학장실. 작성팀은 전문대학원에 벤처창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기 위한 창업인큐베이터를 설치하기로 결정, 명칭을 지어야 했다. 당시 IMF 여파로 전례 없이 불투명해진 졸업생들의 진로 선택 패러다임을 기존의 ‘취업’ 일변도에서 ‘내 회사 창업’으로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99에서 100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0에서 1을 창조하는 교육을 추구한다는 미국 MIT대학 미디어랩Media Lab의 사례로 박영목 교수가 말문을 열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취지가 창업정신과 부합하므로 ‘제로원’이 어떤가라는 전승규 교수의 의견이 더해졌다. 이렇게 10여 분 정도의 회의 끝에 생겨난 ‘제로원스튜디오’는 곧 김민 교수의 로고디자인을 거쳐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창업 인큐베이터의 명칭이 되었고 2001년, 강남구 역삼동 근도빌딩에 설립되었다. 몇 년 후에 창업인큐베이터에 관한 교육부법이 변하여 사업을 접으며 사라졌던 ‘제로원’은 2004년 오프캠퍼스의 디자인교육동인 ‘제로원디자인센터’로 부활했다. 1) 국민대학교가 대치동 부지에 1994년에 건축한 빌딩으로 2004년에 교육동으로 변환했다. 여기에 1998년부터 금속공예학과에서 ‘주얼리디자인센터(JDC)‘를 운영했으며, 2001년에는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의 제로원디자인 스튜디오를 잠시 운영했다.


  • 도전과 확대
01 특성화사업

- UIT — 국책 사업 수행을 통한 디자인 교육의 특성화

조형대학은 그동안 다양한 국책사업과 산학연계사업을 수행함으로써, 국가와 산업계에 봉사하고, 우수한 디자이너를 양성할 수 있는 디자인교육 전문기관으로서의 교육 역량을 강화해 왔다. 이중에서도 2004년, 2006년, 2007년, 3회에 걸쳐 선정되어 수행한 교육부(교육과학부)지원 수도권특성화사업은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융합적 창의력 및 기술을 이끌어내는 교과과정을 새롭게 구축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마련함으로써, 디자인교육 선도 대학으로 거듭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2004년 조형대학은 ‘UITUbiquitous IT 디자이너 육성을 위한 교육시스템 구축’이라는 과제명으로 교육부 수도권대학특성화사업에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UIT 디자인교육개발원과 UIT 디자인솔루션센터가 대학 본부 소속으로 설치되었다. 1년 동안의 이 과제연구에서는 국내 디자인 분야의 교수진, 교사, 학부모, 학생 등을 대상으로 디자인교육 만족도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조사를 통해 창의적 디자이너를 육성하기 위한 국내 교육 시스템이 열악하다는 점이 부각되었다. 특히 학문 정보의 공유 부족, 장기적 교육 프로그램 부재, 교육기자재 미비로 인한 뒤처진 교육환경 개선 등이 시급히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학과별 공통 교과목 개발, 입시 개혁, 교육기자재 및 교육 시설 확충 등 방안이 제시되었 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노력은 이후 전반적인 과제 수행의 초석이 되었다. 2006년 조형대학은 과제명 ‘UIT 디자이너의 융합적 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시스템 구축’으로 교육부 수도권대학특성화사업에 선정되어 2004년의 사업을 연계할 수 있었다. 2차 년도의 연속사업을 통해 국민대 조형대학의 교육 시스템 차별화와 경쟁력 강화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 특허 지원을 통해 재학생 디자인 360건의 디자인권을 출원함으로써, 국내 디자인 관련 대학 중 ‘지식재산권에 강한 디자인 인재양성’을 실천하는 조형대학의 차별화된 이미지를 만들고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었다. 또한 디자인 교육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미국, 영국, 중국, 이태리의 디자인교육 및 경영센터를 방문, 현지 대학 및 산업체와의 교수 및 학생들과의 교류를 촉진시켰다. 뿐만 아니라 해외 무대에서 현직 디자이너로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는 한국 국적의 디자이너로부터 디자인경영 교육의 필요성 및 교육 방법에 관한 실제적이고 전문적인 의견을 구하여 이를 디자인교육에 적극 반영하였다.

2007년에는 과제명 ‘UIT 디자인의 융합적 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시스템 구축’이 교육과학부 수도권대학특성화사업에 선정됨으로써 3차 연계사업을 진행했다. 2004년부터의 수년에 걸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3차 사업에서는 디자인 교육시스템, 프로그램 및 교육시설을 대폭 개선하였으며, UIT형 디자이너 인재선발을 위한 입시제도 개편을 시행하였다.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을 위하여 다양한 전공 배경을 가진 교수진을 포함하는 6개의 사업 분과와 이를 총괄하는 사업추진단을 구성함으로써 보다 적극적이고 효율적인 사업의 추진이 가능하였다. 사업 추진 결과 조형대학 15개 과목, 경영대학 5개 과목, 정보통신대학 4개 과목 등 총 25과목이 개설되었고, 이를 통해 각 전공간 상호 이해의 폭이 증진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조형대의 디자인 교육뿐만 아니라 국민대학교 전체 대학교육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고, 디자인교육 리더로서의 조형대학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조형대학의 서른 살 즈음에 실행한, 3회에 걸친 연속적인 교육부 지원의 특성화사업 수행은 미래지향적 디자이너 양성을 위한 교육내용을 개발하고 강화함으로써, 조형대학이 보다 선진화된 교육프로그램과 학습 환경을 제공하는 대학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무엇보다 선진 교육으로의 발돋움을 위한 과감한 개혁적 시도에 동참한 조형대학의 교수진과 학생들의 열정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UIT 디자인교육원과 UIT 디자인솔루션센터

2004년 조형대학이 교육부(교육과학부)가 지원한 수도권특성화 사업에 선정됨에 따라 대학본부는 UIT 디자인교육원과 UIT 디자인솔루션센터를 설치하였다. 개발원은 디자인 교육의 전 과정을 디지털화함으로써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교육장의 개념으로 설치되고 운영되었으며, 솔루션센터는 교육 프로그램용 실행과 정보제공서비스를 위한 디지털 기반의 각종 장비를 설치하고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제공했다. UIT 디자인교육원은 3회의 특성화사업 과제수행 이후 2007년에 폐쇄되었으며, UIT 디자인솔루션센터는 본부 산학협력단 소속으로 2015년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정도성
공업디자인학과 교수


디자인도서관 — 최초의 디자인주제 전문도서관
국민대학교 디자인도서관은 국내 대학 최초의 디자인주제 전문도서관이다. 2001년에 개관한 디자인도서관은 국민대학교 성곡도서관이 기획한 도서관 특성화사업의 결실이었으 며, 대학본부, 성곡도서관, 조형대학이 디자인교육의 전문화와 특성화에 대한 의지를 공유하고 상호협조를 통해 만들어낸 모범적인 교육인프라 구축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최초 의 구상은 당시 저성곡도서관의 전영우 관장(산림과학대 교수)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설립 시 최대의 수혜를 받게 될 조형대학은 당시 전용일 학장의 주도로 교수들 대부분이 기 부 모금에 동참했으며,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모금 운동도 함께 진행하며 디자인도서관 설립에 힘을 실었다. 2001년 10월 17일 개교기념일에 맞춰 개관식을 가진 디자인도서관은 국내외 디자인 분야의 다양하고 전문적인 자료를 수집하여 정보를 제공함과 함께, 관련 분야 간의 연계를 도모 하고 디자인 학술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한다는 설립 취지를 표명했다. 이 취지는 이후 도서관의 두 차례에 걸친 장소 이전에도 불구하고 15년 동안 순조롭게 구현되었으며, 조형대학 의 전공생들은 물론 조형분야에 관심을 갖는 교내의 다양한 전공의 재학생들에게 디자인에 관한 학술정보를 제공하는 특성화 도서관의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하도록 하였다. 디자인도서관은 설립 당시 성곡도서관 내 3층에 위치하고 있다가, 2005년에 종합복지관 2층으로 이전되었으며, 2013년에는 다시 성곡도서관 4층으로 이전했다. 541㎡ 면적에 87석의 열람좌석을 갖추고 있으며, 2015년 현재 관련 도서 6만 9천여 권을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특별히 건축, 디자인, 공예 분야의 최신 국제 동향과 정보를 생생하게 전하는 194종의 정기간행물(해외 151종)은, 디자인도서관을 찾는 각 분야의 전공생들에게 가장 유익하고 활용도가 높은 자료가 되고 있다. 디자인분야의 흐름에 발맞춰 최근에는 영상과 디지털 자료를 확충하고 있다. 열람실의 개방과 함께 복사와 기록을 위한 각종 장비 및 소프트웨어를 지원하고 있으며, 다양한 매체의 온라인 서비스도 확대하면서 활용도를 높이고 있다.

02 BK21사업

- 대학원 교육의 새로운 모델

사업의 비전과 신청 배경 

국가 핵심동력인 과학기술영역의 세계적 수준 대학원 육성과 우수한 연구인력 양성을 위해 석·박사 과정생 및 신진연구 인력 등 고등교육 인력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대책이 절실하다는 시대적 요구에 의해 1999년 봄, ‘21세기 지식기반 사회대비 고등 인력 양성사업High Quality Human Resource Development Project, 약칭 BK21Brain Korea 21 사업’이 교육부에 의해 추진되었다. 총 예산은 1조 3천억 원에 달했다. 당시 한국 교육계는 일류대·인기 학과 위주의 대입경쟁과 초·중등교육의 파행이 심화되고 있었다. 최종 학위과정인 대학원의 교육여건은 더욱 열악했다. 석·박사학위 과정의 체계가 미확립되어 있었고 이로 인해 고급인력의 해외의존도가 심화되고 있었다. 99년 당시 한국 대학의 국제 경쟁력은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세계 47개국을 비교한 결과 47위에 머물렀다. 이처럼 국가 핵심동력으로 과학기술 영역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는 사업 영역 가운데 이례적으로 디자인 특화분야가 포함되어 5년 동안 매해 20억 씩 총 100억 예산(해당 대학의 매칭펀드 50억 포함)이 배정된 것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이는 국내 디자인분야의 비약적인 발전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디자인이 국가경쟁력 제고에 핵심적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차원에서 인식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99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BK21사업 참여 여부 결정을 위해 당시 김인철 조형대학장에 의해 조형대학 전체 교수회의가 소집되었다. 학장에 의해 새로운 디자인 전문대학원 설치를 골자로 한 사업의 취지가 설명되자 이를 바탕으로 당시 열악한 일반 대학원의 재정 실태, IMF 여파로 인한 디자인 실무 분야의 급격한 위축, 그로부터 비롯된 졸업생들의 취업기회 박탈과 같은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이 사업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일반대학원 통폐합, 생소한 전문대학원 전임교수제도, 사업 참여 조형대 교수의 전문대학원 이적, 학부와 분리된 전문대학원 학제 운영의 문제점 등에 관해 우려 섞인 의견 등이 오갔다. 토의 끝에 국가와 대학본부의 확실한 지원을 기반으로 한 디자인전문대학원 체제를 통해 대학원 디자인 교육을 혁신하고 세계수준의 디자인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중론에 도달, 사업 신청이 결정되었다.


선정 및 개설
1999년 8월, 디자인 전문가들로 구성된 평가단의 심사 결과 조형대학은 디자인 특화분야에 최종 선정되었고 그 결과 9월1일, 석사 75명 박사 16명으로 국내 최초의 디자인전문대학원이 개설되었다. 설립 당시 개설 학과와 전문대학원 전임교수는 다음과 같다.


학과 전임교수
학과 전임교수
디지털미디어디자인학과 전승규(시각디자인학과에서 이적), 이성식(신임),박영목(공업디자인학과에서 이적), 정지홍(신임)
퓨전디자인학과 김인철(시각디자인학과에서 이적), 김철수(공업디자인학과에서 이적), 김민(신임), 변추석(신임)
스페이스건축디자인학과 김용성(건축학과에서 이적), 이찬(실내디자인학과에서 이적)
생활문화디자인학과 김승희(공예미술학과에서 이적), 금누리(공예미술학과에서 이적), 강병석(의상디자인학과에서 이적)


국내 최초의 디자인전문대학원 설립은 국내외에서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의 디자인 교육 비전 및 위상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의 변화 조형대가 추진한 BK21 사업의 결과로 설립된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은 명실상부한 전일제 대학원임과 동시에 전임교수제를 채택하여 교육에 전념하는 체제를 갖추었다. 이를 기반으로 91명(박사 16명, 학사 75명)의 학생 및 10명의 전임 교수진으로 이루어진 인적자원을 확보하고 디자인 이론의 전문화와 실무중심 디자인 교육의 균형을 구현하기 위해 최초의 디자인학 박사 학위과정과 산학스튜디오를 통한 전공 융합형 산학프로젝트 수행이라는 두 축을 확립하였다. 1단계 사업이 끝난 2006년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은 총 1034편(국제 387편, 국내 647편)의 논문을 발표·게재하고 총 75건(20여 억원)의 산학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국내외 작품전 입상 및 전시는 594회, 특허출원은 총 129건(국제 35건, 국내 94건), 홍보는 NHK Digista 특집 ‘BK21-TED’, 《Italia Correre Di Faenza E Lugo》, 《L’Orienr Le Jour》지, 《The Daily Star》지 등 119건이었다. 2001년에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평가 결과 최우수 디자인대학원에 선정되었다.1) 이후 2014년도에는 BK21플러스 사업과제에 ‘I-TEC Hyper Designer 양성 사업’과 ‘Well Formed Smart Designer 양성 사업’이 선정되어 현재 진행 중에 있다

전문대학원 설치배경 21세기의 신지식사회에서의 디자인은 창조력이 중심이 되는 핵심가치의 경쟁으로 돌입할 것으로 전망되며 특히 디지털미디어를 기반으로 하는 고급디자인 인력의 양성이 산업의 국제경쟁력에 절대적인 조건이 될 것이다. 디자인도 이제 물적 생산 개념에서 비물질적 가치의 창조로, 아트중심의 아날로그형 디자인에서 테크놀로지 중심의 디지털형 디자인으로 재편성되고 있으며 (중략) 그러나 우리나라의 디자인교육은 아직도 공업디자인, 시각디자인 등의 산업사회를 기반으로하는 배타적 영역으로 세분화되어 있어 급변하는 시대의 조류에 뒤처져있다. 따라서 매년 3만 명 이상의 디자인 학부 졸업생들의 사회기여도가 지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어 (중략)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은 지나치게 세분화된 디자인의 전문영역을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수준의 연구와 교육으로 통합하고 지속적으로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여 이를 산업사회에 제공하는 새로운 형태의 디자인 교육모델을 실천하고자 한다.

교육목표 1. 이성, 감성, 기술력이 균형잡힌 인재양성 2. 다양한 디자인 영역을 고도의 기술과 감성으로 융합하는 합목적적 능력배양 3. 차별화된 개성과 창의력을 개발하고 이를 가시화할 수 있는 표현력 연마 4. 현실에서 문제를 발견하고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는 실천적 전문가 양성 5. 첨단의 기술력에 고도의 감성을 담는 콘텐츠 개발능력 배양

연구목표 1. Know What: 인간과 사회의 환경 그리고 일상적인 삶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연구하고 그 가치를 창출하여 21세기 디자인의 방향 정립 2. Know Why: 산업체 또는 기업에서 왜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논리와 전략 제공 3. Know How: 이러한 목적과 이유를 실현하는 새로운 방법과 기술을 지속 개발

개설 학과 디지털미디어디자인학과 Dept. of Digital Media Design 퓨전디자인학과 Dept. of Fusion Design 스페이스건축학과 Dept. of Space & Architecture Design 생활문화디자인학과 Dept. of Life & Culture Design

사업단의 규모 및 전략 전문대학원 인력을 기반으로 디지털미디어 사업팀을 Star사업단으로, 퓨전디자인 사업팀을 Cash Cow로 하는 4개 사업팀 체제로 출범한다.


03 국제교류


  • 윤리적 실천


확산과 글로벌화
조형대학이 대학 차원에서 국제교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부터이다. 그러나 1980년대 초부터 외국인 교수를 영입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1982년 금속공예학과(당시 공예미술학과)에서 초빙하여 1년 동안 강의한 미국인 잭 실바Jack da Silva 교수는 국민대학교 최초의 외국인 교수이기도 하다. 이후 같은 학과에서 1983년부터 1988년까지 5년 동안 영국인 스티븐 보트Stephen Bort 교수가 재직하면서 금속공예와 장신구를 가르쳤다. 두 외국인 교수의 초빙 사례는 당시 조형대학의 젊고 진취적인 분위기를 반영한다. 외국 대학과의 국제교류는 1995년 핀란드의 명문대학인 헬싱키예술디자인대학University of Art and Design Helsinki과의 대학 간 상호교류협정서를 체결한 것을 필두로, 이후 해외의 유수한 대학들과의 협약을 확대하면서 이루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학점교류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하는 학생교환과 교수 상호방문, 공동기획행사 등 실질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 특히 학생교환제도는 재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 교육적 효과를 만들었다. 외국 대학의 현장에서 선진적인 교육과 문화적 체험을 함으로써, 장차 국제적인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1996년 캐나다의 노바스코시아미술디자인대학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과의 학생교환 프로그램으로 금속공예 전공에서 양교의 백호와 이안 요브도석Ian Yovdoshuk이 상호 방문하여 한 학기 동안 수학하였다. 1997년에는 영국 셰필드할램대학Sheffield Hallam University과의 협정으로 조형대학 최초로 교수 교환이 이루어져, 금속공예학과의 전용일 교수와 셰필드할램대학교의 헤이즐 화이트Hazel White 교수가 맞교환의 형식으로 상대 학교에서 1년 동안 강의했다. 최초의 교환학생이었던 노바스코시아미술디자인대학의 이안 요브도석은 이후 국민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는 최초의 외국인 학생이 되기도 했다. 국제교류에서 앞장섰던 금속공예학과는 이후 학생교환을 활발하게 시행해갔다. 앞에서 언급한 두 대학을 포함하여, 일본 히코미즈노장신구대학Hiko Mizuno College of Jewelry(2001), 호주 모나쉬대학교Monash University(2001), 독일 포르츠하임대학교Pforzheim University(2007), 영국 에든버러대학교Edinburgh University(2009), 태국 실파콘대학Silpakorn University(2009), 미국 캔사스대학교Kansas University(2010), 위스콘신대학교The University of Wisconsin(2011)와 매학기 혹은 1년 단위로 학생교환을 해오면서, 이 학과를 방문한 외국인학생 70여 명을 포함하여 총 180명의 학생이 교환학생의 기회를 가졌다. 1997년에는 셰필드할램대학과의 교수합동전시회를 서울과 셰필드에서 개최했고, 2001년에는 히코미즈노대학과의 교환교류전을, 2007년과 2008년에는 노바스코시아대학과의 양교교류 10주년을 기념하는 교수작품전을 양교에서 개최했다. 금속공예학과가 주도한 1990년대 중반부터의 해외교류는 조형대학의 다른 학과에게도 연결되어 확대되었다. 1997년부터 노바스코시아미술디자인대학과 학생교환을 시작했던 도자공예학과는 1999년 호주의 도예가 페트러스 스프롱크Petrus Spronk를 방문교수로 맞이하여 1년 동안 체류하며 강의하도록 하였다. 2000년부터는 일본 사가대학Saga University, 가나자와미술공예대학KanazawaUnivesity of Art and Craft, 미국 캔사스대학, 아일랜드 리메릭미술디자인대학Limerik School of Art and Design, 영국 카디프Cardiff Metropolitan University 등 해외 대학교들과 교류하며 도예교류전과 워크숍을 지속적으로 개최해 오고 있다. 의상디자인학과에서는 2001년 핀란드의 헬싱키예술디자인대학과와 학생교환을 실시했고, 이듬해에는 노바스코시아미술디자인대학과도 학생교환을 실시했다. 2001년에는 호주 왕립멜본공과대학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의 메리디스 로우Meredith Rowe 교수가 방문교수로서 체류하면서 실크스크린과 염색 등을 강의하였다. 2014년부터 교환교류의 범위가 확대되어 영국 선더랜드대학University of Sunderland(2014), 터키의 이스탄불공과대학Istanbul Technical University(2015), 독일 포르츠하임대학교 등에서 수학하거나 상대학교 학생들이 의상디자인학과에서 수업을 받았다. 최근에는 미국 켄트주립대학Kent State University, 영국 UALUniversity of the Arts London의 런던 패션대학London College of Fashion이 교환학생 프로그램의 대상 학교로 추가되어 패션교육의 메카인 뉴욕과 런던에서 일정 학기를 수학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2001년 실내디자인학과는 국내 대학으로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의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Salone Del Mobile Milano에 초대되었으며, 2004년에는 중국에서 열린 베이징건축비엔날레에 참여했다. 같은 해 제1회 도쿄디자이너스위크Tokyo Designer’s Week에 국내 최초로 참가하였고, 이후 2006년과 2007년에도 참가하면서 대상 최종후보Grand Prix Final에 선정되는 성과를 만들었다. 또한 2004년부터 중국 칭화대학Tsinghua University,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Musashino Art University과 3개 대학 간의 공동 수업과 교수진의 교차 평가, 전시회 등 입체적인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2005년에는 후원업체인 일본 릭실Lixil사의 초대로 나고야 에서 워크샵을 진행하였고, 선발된 학생들은 인턴 기회를 가졌다. 2007년에도 칭화대학, 무사시노대학과 공동 수업을 진행하여 그 결과물을 북경의 대표 예술지구인 798 다산쯔와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서 전시했으며, 2008년의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도 참가했다. 2011년부터 공업디자인학과는 프랑스 스트라트대학Strate Collège과 학생교환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진행해 오고 있다. 현재까지 매학기 3-4명의 학생이 스트라트대학에서 한 학기동안 체류하며 공부하고 있으며, 같은 수의 프랑스학생들이 조형대학 공업디자인학과에서 수학하고 있다. 또한 2015년부터 프랑스의 다쏘시스템Dassault Systemes사와 일본 후쿠오카의 곡덴Gok-Den사에 재학생들이 인턴으로 참가하여 외국기업의 업무를 경험하는 해외인턴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시각디자인학과에서는 2014년부터 미국의 칼아츠CalArts,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크장식미술학교Ecole Superpieure des Arts Decoratifs de Strasbourg를 비롯한 해 외 유수 대학들과의 교류를 확대하며 수업, 교수교류, 전시행사 등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2014년부터 프랑스 라인대학Haute école des Arts du Rhin과는 매학기 양교 학생들이 한 학기씩 상호 방문하는 학생교환을 진행하고 있다. 조형대학에서 그동안 초빙한 외국인 교수는 앞에서 언급한 잭 실바, 스티븐 보트 교수 이후 시각디자인학과와 공업디자인학과에서 있었다. 국제교류의 확대와 주요 핵심수업들의 영어수업을 위해, 시각디자인학과에서는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프랑스의 장 폴Jean Georges Poulot 교수를,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크리스토퍼 로Christopher J. Ro 교수를 임용하여 강의하게 하였다. 공업디자인학과는 2012년부터 2015년까지 벨기에의 임마누엘 울프스Emmanuel Wolfs 교수를, 2014년에는 미국의 아담 청Adam Chung 교수를 초빙하여 현재까지 강의하고 있다. 조형대학에 있었던 국제적인 초청강연회 중에는 2004년 실내디자인학과 교수들의 주도로 설립된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OCDC 주관으로 이루어진 사례들이 많다. 동양문화디자인연구소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다수의 국제컨퍼런스International Conference를 통해 조형 분야의 국제적인 인사들을 초청하였는데, 칭화대학의 쩡슈양Zheng, Shu yang, 수단Su, Dan, 뤼징련Lu, Jing Ren, 샹강Shang Gang, 리우티에쥔Liu Tiejun 교수, 일본의 건축가 구로카와 마사유키 Kurokawa Masayuki, 무사시노예술대학의 테라하라Terahara Yoshihiko 교수,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 영국 왕립예술학교의 존 타카라John Takara 교수, 영국 골드스미스대학의 존 우드John Wood 교수, 미국 IIT의 게이 사토Kei Sato 교수, 미국 현대미술관MoMA 큐레이터인 파올라 안토넬리Paola Antonelli 등이 강연회를 하거나 세미나에 참가했다.

국제교류를 위한 MOU 체결 대학 현황
국가 대학명 체결일
U.S.A.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1995.11.01
U.S.A. Carnegie Mellon University 1999
U.S.A. University of Kansas 2008.05.20
U.S.A. 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 2009.02
U.S.A. College for Creative Studies 2009.02.27
U.S.A. North Carolina State University 2009.07.20
U.S.A. University of Wisconsin Oshkosh 2010.02.23
U.S.A. Northeastern Illinois University 2014.01.13
U.S.A.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2014.03.11
CHINA Dalian Nationalities University 2008
CHINA College of Design, Guangzhou Academy of Fine Arts 2008.06
CHINA Sun Yat-sen University 2008.08.15
CHINA Academy of Arts & Design, Tsinghua University 2009.06.23
CHINA Yanbian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2009.08.14
CHINA LuXun Academy of Fine Arts 2010.04.17
CHINA China Central Academy of Fine Arts 2014
JAPAN Saga University 1999.03.29
JAPAN Waseda University 2000.05.27
JAPAN Hiko-Mizuno College of Jewelry 2000.06.29
JAPAN Tokai University 2007.08.01
JAPAN Kyushu University 2008.03.18
JAPAN Nagoya City University 2009.02.11
U.K. Sheffield Hallem University 1997
U.K. 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 2004.12.03
U.K. Royal College of Art 2007.05.19
U.K. Edinburgh College of Art 2008.12.15
U.K. 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 2010.08.23
INDIA 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Bombay 2000
INDIA Deen Dayal Upadhyay Gorakhpur University 2007.03.16
INDIA National Institute of Design 2007.05.14
AUSTRALIA Royal Melbourne Institute of Technology 1997.06.01
AUSTRALIA Monash University 2001.10.15
FRANCE Strate College Designers 2008.05.27
FRANCE Haute Ecole Des Arts Du Rhin 2013.07.31
ITALY Domus Academy 2007.04.20
ITALY Politecnico di Milano 2008.07.16
SWEDEN Broby Grafiska Utbildning 2008.11.25
SWEDEN Mid Sweden University 2009.02.03
THAILAND Silpakorn University 2007.03.20
THAILAND Rangsit Univeristy 2009.01
FINLAND University of Art & Design Helsinki 1995.09.30
CANADA Nova-Scotia College of Art & Design 1996.07.02
GERMANY Pforzheim University 2007.06.15
TURKEY Ozyegin University 2013.06.07
VIETNAM University of Science, Hochiminh City 2009.05.20

노바스코시아 미술디자인대학
조형대학과의 교류 20년을 기념하며

노바스코시아미술디자인대학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ng에서 국제교류를 시작한 것은 1969년으로, 학생들의 시야를 넓히려는 의도로 마련된 월드 엔카운터 프로그램 World Encounter Program이었다. 미술과 디자인에서 다양한 문화권으로 여행하고 경험하는 것이야 말로 교육적으로 중요하다는 믿음에서였다. 현재 우리 대학은 세계 19개국의 70개 이상의 학교와 교환협정를 맺고 있다. 1996년에 시작한 국민대학교 조형대학과의 학술적, 문화적 교류 역시 더 높은 질적 교육을 위한 국제화 노력의 일환으로 진행해 온 것으로 2016년이 되면 20년의 역사를 갖게 된다. 미술과 디자인은 개인의 삶과 사회에 시각예술이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부여하는가를 배우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그들 자신과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해외에서 체류하는 교환학생에게,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학과생활과 삶의 경험은 지구촌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그 자신을 발견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다음 글은 조형대학에서 체류했던 우리 대학의 학생이 어떻게 자신을 발견하고 개인적인 성장을 이루었는지를 보여준다. “낯선 환경에서 공부할 기회를 가진 것은 나로 하여금 전에 없던 용기와 독립심을 길러주었다. 이것은 이후 나 스스로 자신이 없었던 새로운 환경과 산업에 내가 쉽게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조형대학에서 경험한 시간은 현재 내가 산업디자이너로서 캐나다 토론토 움브라에서 산업디자이너로서 일하고 있는 현재의 위치를 얻는 필수적인 일이 되었다.”(2014년 졸업생 제이드 덤로스)노바스코시아미술디자인대학을 교환방문한 학생들은 새로운 도전뿐 아니라, 흥미롭고, 풍요로운 경험을 하며 때론 삶의 변화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교류의 혜택은 교환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우리 대학의 재학생들 역시 한국에서 온 학생들로 인해 이종문화적인 경험과 시각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교환학생이 포함된 교실에서는 때때로 언어적인 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다른 문화적 시각이 교차함으로써 토론의 효과가 높아지는데, 이것이야말로 교환프로그램의 매우 긍정적인 공헌이다. 조형대학과 우리 대학은 해를 거듭하는 동안, 20명 이상의 학생이 양교에서 교환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상대 학교로부터 문화적인 특이점과 스튜디오 실습, 그리고 교육과 연구의 방법론을 익혔다. 두 대학 간의 뜻 깊은 교류는 10주년이 되는 2007년과 이듬해인 2008년, ‘LINKS’라는 제목으로 양교 금속공예학과의 교수작품전을 개최하면서 더욱 확대되었다. 이제 교류 20주년을 기념하며 국민대와 함께하는 글로벌교육이 계속 되기를 기대한다

손 계 연
노바스코시아미술디자인대학 공예학부 장신구 금속공예학과 교수


NSCAD UNIVERSITY
CELEBRATING THE 20TH ANNIVERSARY OF OUR EXCHANGE PROGRAM

The exchange study program at NSCAD University was introduced in 1969 as the World Encounter Program in order to help broaden the outlook of NSCAD students. Based on the belief that travel and experiences involving diverse cultures are educationally valuable in an art and design context. Currently NSCAD University has exchange agreements with more than 70 participating institutions in 19 countries. As part of an effort to contribute to the globalization of higher education, NSCAD University and Kookmin University agreed to develop academic and cultural programs in 1996. Year 2016 will mark 20th Anniversary for the academic exchange program between NSCAD University, Canada and Kookmin University, Korea. I believe the fine arts and design is the study of how visual arts give meaning to the life of individuals and society. It is therefore essential for students to understand themselves and the world around them. Immersion into unfamiliar academic and life experiences during an exchange study abroad has helped students effectively develop self-awareness while gaining knowledge of the globalized community. The following quote shows results from an exchange experience at Kookmin University leading this particular student to self–discovery and personal growth. “Having the opportunity to learn and grow in a new and foreign environmentincreased my confidence and gave me an independence I had not had prior to my exchange. This experience also taught me to easily adapt to new situations and industries where I feel unqualified. I truly believe my time at Kookmin was integral in attaining my current position as a Product Designer at Umbra, Toronto, Canada.” (Jade Dumrath, BFA, NSCAD University, 2014) The life as an exchange student at NSCAD University is not only challenging, but, interesting, exciting, enriching, and sometimes life-changing. In addition, the benefit of the exchange program is not limited to the student who has participated. It also provides NSCAD University students with an opportunity to engage in intercultural experiences and insights through interactions with students from Kookmin University. The exchange students enhance the classroom discussions by offering different cultural perspectives despite occasional language barriers. I believe this is a very positive contribution from our exchange program.

Over the years, more than 20 students and faculty from both universities have been participating in the exchange program experiencing and learning from one another’s cultural idiosyncrasies, studio practices, teaching and research methods. Our two institutions organized and hosted the joint faculty exhibition by two metalwork and jewelry departments entitled “LINKS” to recognize the 10th Anniversary. I look forward to continuing the global education experiences with the Kookmin University, Korea and to celebrate 20 years of our mutual student exchange program.

Kye-Yeon Son
Professor of Jewellery Design and Metalsmithing, Craft Division NSCAD University, Halifax, Nova Scotia, Canada


중국 칭화대학교
생태 문명을 향한 디자인 교육의 길
- 칭화대학교와 국민대학교 디자인 교육분야의 협력의 기록

중국과 한국의 오랜 역사와 전통은 그 기원과 발전에 있어 동방 문화의 공통된 속성으로 자리하며, 동방 문화를 대표하여 인류문명의 미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은 양국의 교류와 협력에 있어 폭넓은 기초가 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디자인 교육은 현대 시민의 소양과 디자인적 창의 능력을 결합하는 동시에 창조형 인격 자체를 교육하는 것이며, 21세기 문화 건설에 있어 대체 불가한 학문 분야로서의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생태 문명 건설을 위한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과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세계적 관점에서 디자인 교육은 반드시 이 점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디자인은 생활의 영역衣·食·住·行·用에 있어 기능을 전제로 하면서도 물질 생산 수단으로써의 미적 창조 과정을 거칩니다. 이런 창조성은 시대를 초월합니다. 농경 시대의 디자인은 수공예를 특징으로 하며, 수공예 스스로 자급자족하는 농경 문명과 매우 긴밀한 관계에 놓여있었습니다. 공업 시대는 사회적 생산 방식과 생활 방식에 따른 문화 관념이 강렬한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그에 따라 현대 디자인은 최대한 현대 공업이 제공한 물질적 기초를 이용하여 신소재와 신기술을 합리적으로 적용하고자 하였으며, 연구-개발-생산이 일체화된 일부 기업들은 새로운 제품 시스템을 창출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공업 문명의 촉진이 가져온 인공 환경의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 환경 훼손이라는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인류 발전의 기본 이념으로부터 비롯된 지속 가능한 발전 사상은 여러 업종의 발전에 이론적 기초로 자리하는 가운데 공업 문명의 실물형 경제는 인류의 지혜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자원과 에너지를 운용하고자 생태 환경의 지식형 경제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전통 문화의 개념에 속하는 동방 문화는 세계 문명의 발상지입니다. 지리적으로 현재 아시아와 동북아프리카 일부를 포함하기도 합니다. 이집트, 바빌론, 인도, 중국 등 세계 4대 고대 문명의 탄생지이며, 그 중 중국은 유교 사상 중심의 전통 문화의 발전을 통해 동아시아 문화권의 중심에 있기도 합니다. 동방의 예술은 물질적 표상과 완전한 분리를 통해 사물의 본질을 깊이 있게 바라보고, 의경 추구라는 방식을 통해 마치 진짜와 같게 하려 합니다. ‘신사神似, 본질’를 따르고 ‘형사形似’를 따르려 하지 않아, 닮음과 비닮음 사이에서 미美와 진眞을 포착하려 합니다. 동방 문화가 배양한 건축, 원림園林, 성시 계획 등을 배경으로 하는 환경 디자인은 두터운 문화적 함의를 체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권, 황권, 그리고 종교적 의지가 조성한 문화가 자연과 결합하여 환경 디자인을 창조해냈고, 녹색 대지로 회귀하고자 하는 열망을 통해 동방 문화의 정수인 인간과 자연의 화합 사상을 형성하게 된 것입니다. 디자인은 공업 문명이 고도로 발전된 20세기를 만들어냈습니다. 독립적인 지식 재산권을 가진 각종 디자인 제품은 디자인 성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산업 혁명이 서방 세계에서 발단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동방 각국의 현대 디자인 운영에 있어 미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환경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어떤 디자인 분야이던 방향의 발전 모두 상응하는 공간이 필요하고, 자원은 사회정치, 경제, 기술 조건 등에 적절하게 배치되어야 합니다. 정보 시대와 글로벌 경제화 시대에 직면하면서 세계는 점차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고, 인공 환경은 무한적 확장되면서 자연 환경은 매일 변하고 있습니다. 또한 디자인을 제품의 관점으로 보던 것에서 환경의 관점으로 보는 경향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이는 생태 환경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집약적으로 협력 발전해 나아가기 위한 디자인 교육 발전의 정확한 방향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생태 문명 건설에 대한 요구에 직면하여 디자인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교육자들은 오히려 전통 문화에서 출구를 찾으려 합니다. 전통적인 동방 문화는 인간과 자연의 화합 사상으로 체현되어 있는 데 반해 서방 문화는 인간 중심적 경향을 과도하게 보입니다. 이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루는 데 현저한 차이가 있습니다. 서방 사람들은 사회의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 시선을 동방의 문화로 돌리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신의 우수한 문화 유산을 소홀히 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에 걸맞는 중국 송대宋代 시인 소식蘇軾의 “루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까닭은 단지 이 몸이 이 산 속에 있기 때문이네不識廬山真面目,只緣身在此山中”라는 유명한 구절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생태 문명으로 향하는 동방 디자인의 교육의 앞날은 밝으리라 기대됩니다. 중국 칭화대학교와 한국 국민대학교의 디자인 분야는 위에서 밝힌 상호 학술 개념을 기초로 하여 2002년부터 다방면에서 학술 교류를 시작하였고, 동방문화를 기조로 한 디자인 교육을 실현해 내고 있습니다. 2004년 국민대학교가 주관한 중·한 양국 학생 교류전을 비롯하여, 2006-2008년 중·일·한 삼국이 동시에 ‘ODCD’ 교류 활동을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 2009년 칭화대학교 미술학원과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은 우호 협력 및 학술 교류 협정서MOU를 체결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2009-2010년에는 칭화대학교 미술학원의 교수진들과 학생들이 당시 서울디자인 한마당 (2010, 감독 최경란 교수)과 관련 전시 전반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2010년 11월 15-19일에는 ‘From Logic to Magic’이라는 제목으로 국민대 조형대학의 첫 해외조형전이 칭화대학교 미술학원의 미술관에서 개최되어 6개 전공 150여 개의 작품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중국의 칭화대학교와 한국의 국민대학교는 학술 교류 연구에 있어서도 심층적인 단계에 있습니다. 2003년 3월에 입학하여 2009년 2월 <15-19세기 한·중 가구 디자인 특성 비교 연구>라는 제목으로 국민대학교에서 디자인학 박사 학위를 받고 칭화대학교 미술학원에 재직중인 리우티에쥔 교수와 2008년 9월에 입학하여 2013년 1월에 <16-19세기 중·한 문인 원림 조원관 비교 연구>로 칭화대학교에서 예술학 박사를 받고 국민대학에 재직중인 이민 교수는 양국, 양교의 연구생으로 상대 학교에서 첫 박사학위를 받는 역사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두 연구 모두 동방 전통 문화의 생태주의적 가치관을 반영한 것으로 양교의 학술 교류 방향과 학문의 발전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칭화대학교 디자인 분야는 60년이 넘는 역사를, 국민대학의 디자인 분야는 40년을 맞이하는 기념적인 시기입니다. 비록 생태환경 디자인 교육의 갈 길이 아직 멀고도 험하지만, 양국 양교의 동방문화 전승을 통한 기반이 갖가지 장애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밝은 미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봅니다.

쩡 슈 양
전 칭화대학교 미술학원 원장


中国清华大学
走向生态文明的设计教育之路

记清华大学与国民大学在设计教育领域的合作 中国与韩国的历史传统源流,使其具有东方文化的共同属性,而东方文化代表了人类文明未来发展的方向,正是这样的文化背景,使得两国的交流与合作具有广泛的基础。 设计教育是集现代公民素质与设计创新能力教育于一身的、完整的创造型人格教育,具有21世纪文化建构不可替代的学科重要性。面向生态文明建设的可持续发展之路,是全球化视野下设计教育的必由之路。 设计是在生活领域(衣、食、住、行、用)中,以功能为前提,通过物质生产手段的一种美的创造,这种创造应该是超越时代的。农业文明时代的设计具有手工业特征,手工艺本身与自给自足的农耕文明有着千丝万缕不可割舍的关系。工业文明导致整个社会的生产方式、生活方式以至文化观念的深刻变化,与之相适应的现代设计,最大限度地利用了现代工业提供的物质基础,合理应用新材料与新技术,在研制、开发、生产一体化的现代企业中创造出全新的产品系统。但是,通过工业文明所推进的人工环境的发展,是以对自然环境的损耗作为代价的。从人类进步的基本理念出发,可持续发展思想成为制定各行业发展的理论基础。变工业文明的实物型经济为生态文明的知识型经济,运用人类的智慧最大限度地合理运用资源和能源。设计由此将逐渐演化为环境的设计。东方文化属于传统文化的概念,起源于世界文明的发祥地,即现今地理位置的亚洲与东北非洲部分。古埃及、古巴比伦、古印度、中国等世界四大文明古国均诞生在这里;以中国儒家思想为主导的传统文化成为东亚文化圈的中心。东方艺术完全脱离物质的表象而深入事物的本质,追求意境而非逼真,追求“神似”而非“形似”,在似与不似之间捕捉美与真。在东方文化的孕育下以建筑、园林、城市规划为背景的环境设计,体现了极其深厚的文化内涵。在这里神权皇权以及宗教的意志所造就的文化结合于自然,创造了许多完美的环境设计。人与自然和谐的思想,回归于绿色大地的向往成为东方文化的精髓。设计产生于工业文明高度发展的20世纪。具有独立知识产权的各类设计产品,成为设计成果的象征。工业革命发端于西方世界的事实,决定了东方各国的现代设计运动深受其影响。从环境生态学的认识角度出发:任何一门设计专业方向的发展都需要相应的时空,需要相对丰厚的资源配置和适宜的社会政治、经济、技术条件。面对信息时代和经济全球化,世界呈现越来越小的趋势:人工环境无限制扩张,导致自然环境日益恶化,迫使设计从产品观向环境观的转型。以环境生态意识为先导,走集约型协调综合发展的道路,才是设计与设计教育发展的正确方向。面对建设生态文明的召唤,肩负设计教育重担的教育者反而需要从传统文化中寻求出路。因为传统的东方文化体现了人与自然和谐的思想,这与西方文化过分强调人的中心作用,从而导致人与自然分离的作法大相径庭。西方人是在面对种种社会危机的情况下,转而注视东方文化 的。而身处其境的我们则往往忽视了自己的优秀文化遗产。正应了中国宋代诗人苏轼的名句:“不识庐山真面目,只缘身在此山中。”走向生态文明的东方设计教育前途无量大有可为。中国清华大学和韩国国民大学的设计学科,正是基于以上相同的学术观念,从2002年开始,通过多方位多角度的学术交流,展开围绕东方文化为基础的设计教育实践。2004年,在国民大学举办中韩两国学生作品交流展;2006~2008年,在中韩日三国同时进行了“ODCD项目”的交流活动;2009年,清华大学美术学院和国民大学造型学院签署友好合作及学术交流协定书(MOU);2009~2010年清华大学美术学院师生参加首尔设计节及相关展览的全部活动;2010年11月15~19日,在北京清华大学的学院美术馆,举办了以“From Logic To Magic”为主题的第一届国民大学造型学院海外三年展,展出6个专业150余件设计作品。中国清华大学和韩国国民大学设计学科的交流,扩展到学术研究的最高层次: 毕业和任教于清华大学美术学院的刘铁军老师,毕业和任教于国民大学造型学院的李玟老师,开创了两国两校研究生分别在对方学校获得首位设计学博士学位的历史。刘铁军,2003年3月赴国民大学,师从崔炯兰教授,进行博士学位的课程学习与课题研究,2009年2月所写论文<15-19世纪韩中家具设计特性比较研究>通过答辩,获得韩国设计学博士学位,该论文从生活方式与文化观念的视角,通过对家具形态、样式、空间布局等方面的分析,揭示了这一时期韩中住居家具的异同,以及造成相同性与差异性的社会性、文化性原因;李玟,2008年9月赴清华大学,师从郑曙旸教授,进行博士学位的课程学习与课题研究,2013年1月所写论文<16-19世纪中韩文人园林造园观比较研究>通过答辩,获得中国艺术学博士学位,该论文在分析中韩造园观念总体共同点和差异点的基础上,提出了东亚文化背景下的自然观、时空观和审美观,得出比较研究总体结果的研究价值和应用价值,以及尊重风土人情与风俗习惯的文化发展方向。可以看出两篇论文反映了东方传统文化生态主义的价值观,与两校学术交流的价值取向与学科发展方向的路线定位完全吻合。清华大学的设计学已走过近60年的学科建设里程,国民大学的设计学学科建设也跨过了40年的界碑,虽然走向生态文明的设计教育之路曲折而漫长,相信两国两校有着东方文化传承的基础,必能冲破层层阻碍创造光明的未来。
郑 曙 旸
清华大学美术学院


윤리적 실천

디자인이 그 발전에 있어 지속가능성을 간과해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찍이 조형대학은 디자인 윤리에 대한 다양한 교육과 체험을 실천함으로써 디자인이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핵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난 40년 동안 디자이너를 육성하고 사회에 배출한 조형대학의 교육 속에는, 디자이너의 사회적 의식과 책무를 일깨우는 실천적 교육이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 디자이너가 자신의 일과 관련된 윤리적 기준을 갖추지 못한 채, 영리만을 추구하는 기업 구조의 틀 속에 갇히 게 되는 경우, 디자이너의 활동은 무의미하거나 우리의 삶과 환경을 오히려 개악하는 결과 를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조형대학은 일찍부터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학생들에게 인식시키 고 교육을 통해 이를 대비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도록 노력했으며, 이는 대학 출범 당시부터 추구했던 ‘인간, 자연, 미래를 위한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한 교육의 일환이 기도 했다. 이 노력은 크게 환경문제를 다루는 ‘그린디자인Green Design’과 우리 사회의 다 양한 약자들을 위한 ‘소수를 위한 디자인’, 특정 계층이 아닌 보편적 사용자를 위한 ‘유니버 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들은 학부와 대학원의 교과목들, 조형 전 등의 기획 행사, 재학생의 동아리활동이나 졸업생들의 창업 속에 반영되면서 조형교육 의 한 축을 형성해왔다.





01 그린디자인

1995년 조형대학은 제8회 조형전의 타이틀을 ‘GREEN 21’으로 정하고 환경문제를 각 학과의 교육 내용과 학생들의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했다. 행사를 주도했던 윤호섭 학장은 이전부터 디자인 활동과 함께 환경운동에 참여해 왔으며, 조형대학에 그린디자인 교육을 이식하고 실현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 에너지 고갈, 생태계 파괴 등 인간의 삶의 환경을 위협하는 환경문제는 1980년대부터 우리 사회에서도 본격적인 관심사로 부상하면서 사회의 모든 분야와의 연관성을 새롭게 점검해야 하는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린이슈는 사물을 생산하고 이에 관한 정보를 유통하는 디자인 활동과도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제8회 조형전 ‘GREEN 21’은 건축, 공업, 시각, 공예, 의상의 5개 학과 800여 명의 학생들의 다양한 작품들로 구성되었으며, 다양한 환경 관련 이슈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문제의식을 고취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전시회와 함께 학술회의장에서는 조형대학이 주최하고 KBS와 조선일보가 협찬한 학술대회 ‘국제환경디자인세미나’가 개최되었다. ‘그린디자인의 미래세계’라는 주제하에, 프랑스 미네대학L’Ecole des Mines의 자크 미셸Jacques Michel, 일본산업디자인지 편집장 마스다 후미카즈, 헬싱키대학UIAH의 마티 라우티올라Matti Rautiola, 그리고 조형대학의 이순종 교수가 환경, 생태, 디자인에 대한 강연회와 토론회를 가졌다. 1997년에는 조형대학이 계열교양 필수과목으로 ‘그린디자인’을 개설하였다. 조형대학 신입생 전원이 필수적으로 수강함으로써, 오늘날 우리 사회와 지구촌에서 디자이너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 이 과목의 명칭은 후에 ‘환경과 디자인’으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조형대학 학부과정에서의 교육적 경험은 이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학원에 환경관련 디자인전공을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2003년 디자인대학원에 그린디자인전공이 설치되었으며 이 과정은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그동안 이 전공의 석사과정을 통해 배출한 졸업생은 사회, 생태, 윤리적 환경의식을 갖추고 다양한 환경문제와 관련된 디자인 활동을 하고 았다. 예를 들어, 2011년에 졸업한 이준서는 그린디자인 제품을 생산하는 ‘에코준컴퍼니’를, 이경재는 친환경 의류와 유아용품을 생산하는 기업 ‘대지를 위한 바느질’을 설립하는 등, 디자인을 통해 환경문제에 접근하고 해결할 수 있는 기업활동을 하고 있다. 윤호섭 교수와 그린디자인의 전공자들은 10여 년간의 수업과 연구 외에도 지구온난화, 멸종위기 동물, 생태의식, 친환경 기술 등의 다양한 환경 주제를 다루는 전시회와 기획행사를 통해 작품발표와 캠페인을 진행해 오고 있다. 2008년부터 매년 개최한 ‘녹색여름’전을 비롯해 ‘저탄소 녹색성장 박람회’, ‘대한민국 친환경대전’, ‘초록생각’전, ‘Stop Global Warming’전, ‘그린디자인자연염색’전, ‘노랑연두초록’전과 같은 각종 전시회와 세미나에 개최하거나 참여했다. 2012년에는 지난 10년 동안의 활동을 엮 은 ‘그린디자인 2003-2012’전을 조형대학 내 조형갤러리에서 개최했다. 그린디자인교육은 시각디자인학과와 디자인대학원의 그린디자인전공에서 주도해 왔으나, 제품, 환경, 실내디자인, 공예 등의 여러 전공과도 지속적인 관련성을 가지면서 졸업생들의 활동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의 한 예로는, 2015년에 금속공예학과를 졸업한 이건희, 최현택, 조민정이 창업한 회사 ‘서클활동’이 자원의 순환Circle과 공예적인 방식의 생산을 결합한 활동을 통해 주변의 호응을 얻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진행한 조형대학의 그린디자인교육과 캠페인은 2003년부터 시작되었던 국민대학교 차원의 녹색캠퍼스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 운동은 대학 내에서의 환경의식 고취와 자연친화적인 캠퍼스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국민대학교 신문사와 6명의 교수로 구성된 녹색캠퍼스운영위원회의 주도로 진행되었다. 조형대학의 윤호섭, 전용일 교수가 참여한 이 위원회는 ‘녹색캠퍼스 함께하기’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하여 이론과 현장체험을 병행하는 공동강의를 2003년부터 약 10년 동안 진행했으며, 캠퍼스 내의 여러 가지 환경 관련 문제와 개선책을 대학본부에 제안하거나 실행했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아름다운 가게’를 교내캠퍼스에 유치했으며, 대학 본부에 대한 오랜 설득 과정을 통해 2005년부터는 국민대학교 캠퍼스 전체를 ‘차없는 캠퍼스’로 지정하여 캠퍼스 환경에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기도 했다.


02 소수를 위한 디자인

그린디자인과 함께 조형대학에서는 디자이너의 사회적 의식과 의무감을 고취하기 위한 노력으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계층의 이웃과 소수자를 위한 디자인을 교육의 내용으로 삼아왔다. 같은 시대와 공간을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의 다양한 구성원들과 오늘날 여러 가지 이유로 주류 사회에서부터 소외된 약소 계층에 대한 배려는 디자이너가 갖추어야 가장 기본적인 인본주의적 소양이며 디자인 행위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 주제 역시 정규 교과목과 조형전 등의 행사를 통해 다양하게 시도되고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되어 왔다. 2001년 조형대학에서는 제10회 조형전의 주제를 ‘소수를 위한 디자인’으로 정해 행사를 개최했다. 전시회 도록의 서문에서 당시 전용일 학장은 행사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소수를 위한 디자인은 우리 사회가 최근 신봉해 온 거대주의, 집단주의, 세계화 등과 같은 거대 담론을 반성해보며 이들의 그늘에 가려진 여러 이름의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을 제고한다. 또한 이를 통해 우리 시대의 디자인취향의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표현하고자 한다.” 전시취지에 따라 조형대학의 전 학과는 주제를 해석하는 다양한 작품을 전시회를 통해 발표했다. 다수에 지배되는 건축론을 넘어선 소수를 위한 도시와 건축을 통해 휴머니즘을 추구했던 건축학과, 신체장애자, 노인, 소아 등을 위한 제품들을 디자인했던 공업디자인학과, 소수를 상징하는 시각이미지의 다양한 전개를 보여주었던 시각디자인학과, 대량 생산과 소비 체제가 지배하는 산업사회 속에서 공예와 전통문화가 갖는 치유가능성을 제시했던 금속공예학과와 도자공예학과, 평소 패션디자인의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는 소수계층을 위한 패션디자인을 시도했던 의상디자인학과, 소외계층을 위한 생명력 있는 거주공간을 제시하고자 했던 실내디자인학과 등, 조형대학의 각 전공분야에서는 주제를 해석하는 다양한 시도들을 통해 전시행사를 구성했다. 한편, ‘소수를 위한 문화정책’이라는 주제로 서울대학교 미학과 의 김문환 교수의 초청강연과 패션쇼, 장신구쇼, 영상쇼 등의 다양한 부대행사가 함께 했다. 특별히 의상디자인학과가 기획한 패션쇼는 조형전 주제의 구체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이 발표회를 위해 4학년 학생들은 시각장애인과 실버세대라는 두 소수계층을 선택해 이들을 위한 의상을 개발하고 제안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작품의 경우, 실제 시각장애인의 의복에 대한 요구를 반영하여 연구한 결과, 세련미와 다기능성을 반영하는 한편 점자의 응용을 통한 시각적 특징을 가미된 의복 세트를 발표했다. 이 의상디자인의 연구결과는 무대에서 직접 모델로 출현한 5인의 시각장애인에 의해 착용, 발표되었다


03 유니버설디자인

소수를 위한 디자인과 함께 조형대학이 시행한 윤리적 측면의 교육 속에는 유니버설디자인이 포함된다. 유니버설디자인은 가능한 한 많은 사용자의 요구를 고려해야 한다는 ‘보편성Universality’의 개념에 기초하는 세계적인 디자인 경향이다. ‘장벽 없는, 포괄적인, 접근하기 쉬운’ 디자인을 뜻하는 이 용어는 미국의 장애인 건축가 로날드 메이스Ronald Mace 박사가 최초로 정의하였으며, 1950년대와 60년대를 통해 미국, 일본, 그리고 스웨덴 등의 국가에서 체계화된 이론이다. 유니버설디자인은 소수를 위한 디자인개념에서 더 나아가, 단순히 소외당하는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디자인개념이다. 오늘날 빠르게 늘어나는 인구, 고령화되어가는 사회, 급변하는 경제 상황과 사회적 환경 등의 많은 문제점은 장벽 없는Barrier Free 사회복지의 정신과 이를 위한 장벽 없는 디자인을 요구 하고 있는 것이다. 디자이너의 사회적 책무와 윤리를 교육의 일환으로 여겨 온 조형대학에서는 유니버설디자인을 구현하는 여러 가지 노력을 교육과정와 행사 등을 통해 제시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조형대학 시각디자인학과에 시도한 전시회 ‘유니버설디자인’ 행사를 들 수 있다. 2003년 시각디자인학과에서는 졸업전시회의 주제를 ‘유니버설디자인’으로 삼고 졸업생들의 전 작품을 통해 한국 사회에 유니버설디자인을 알리고자 했다. 8개조로 나뉜 팀작업에 의해 각 졸업전 참여자들은 전시를 위한 몇 달 동안 사전연구와 발표를 통하여 유니버설 디자인을 나름대로 정의하면서 다양한 작품을 제시하였다. 문화권 간의 문자언어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시각언어의 개발과 감정의 시각화 작업, 사용자 친화적인 책의 개발, 동화책을 활용한 유니버설 개념의 교육교재 개발, 예기치 못한 사고 시 인종을 초월해 누구나 활용 할 수 있는 시각언어중심의 메디칼 매뉴얼, 청각장애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음악적 체험을 위한 소리의 시각화, 통합교육을 위한 교과서디자인, 세대와 인종을 묶는 매개체로서의 놀이문화의 개발이 그 결과물이다. 이들은 기존의 디자인과는 과정과 지향점을 달리하며 창의적인 발상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이 전시회는 2003년 10월 조형대학에서, 11월에는 서울 장충동에 소재한 웰컴사옥에서 개최되었으며, 내용을 수록한 책자도 발간되었다.

시대정신, 디자인 윤리

*미래의 영역

디자인이 디자인이란 분류체계에 매여 있으면 디자인의 미래는 스스로 위축되고 한정지어 지며 다른 영역의 확장에 의해 잠식될 것이다. 오히려 디자인은 보다 모호한 형태로 확장하고 발전해 나가고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 디자인이란 영역을 끊임없이 디자인해나가는 것 또한 디자인 교육·연구기관의 중요한 몫일 것이다.

그리고 내일

어느새부터인가 직업 훈련이 고등 교육 기관의 주된 역할로 부각되고 취업 지표가 대학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됨으로써 교육 또한 기업들의 업무와 같은 구조적, 내용적 효율성을 요구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업이 원하는 ‘즉시 사용가능한 인재’라는 상에 맞추어 기업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에 맞추어 학생들을 교육해야 하는 수동적인 역할로 변질되어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학 본연의 역할이 시대를 읽어내고 앞으로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은 지난 40년간 바람직한 대학의 모습을 지키고자 애써왔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의 행보는 ‘혁신적Innovative’이며 ‘합리적Practical’이었다. 즉 비전은 혁신적으로 제시하되 합리적인 방법들로 그 혁신적 비전을 현실화해온 역사였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기존의 영역 틀 안에서의 고민이 아닌 새로운 영역 자체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하지 않고 판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판을 창조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1975년 조형학부로 출발한 조형대학은 90년대 이미 그린 디자인, 디지털미디어 디자인, 웹사이트 디자인, 유비쿼터스 디자인, 패션 디자인, 게임 디자인, 인터랙션 디자인 등의 개념을 제시하며 업계의 움직임을 주도하였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은 다음 시대의 화두를 위한 끊임없는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고민은 지금의 시대, 즉 디자인을 위한 컴퓨터 소프트웨어나 스마트폰 등의 촬영 매체가 보편화되고 UCC 등의 플랫폼, 매체 및 디지털 인쇄, 3D 프린터 등의 출력 기기가 대중화되어 가는 등 다양한 디자인관련 기술이 보편화 되어가는 시대에 디자이너가 어떻게 전문성을 유지하고 사회적 역할을 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으며, 이에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은 디자이너의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여 그린디자인과 커뮤니티 디자인을 중요한 커리큘럼으로 다루었고, 디자인이 조형을 넘어 디자인적 사고, 디자인적 문제 해결 방법론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영역까지 침투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서비스 디자인 개념을 본격적으로 교육하였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40년 역사를 위해 지금의 조형대학은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이에 필자는 본인의 세부 전공분야인 융합 영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분야를 중심으로 현재 직면한 과제들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첫째로 독립적 콘텐츠로서의 디자인, 작가로서의 디자이너 역할에 대한 고민이다. 디자이너의 작업들이 두산, 에르메스 등의 예술상 후보에 오르고 순수 예술 작가의 작업이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는 등 예술과 디자인은 서로의 영역을 확장하며 점차 그 고전적 분류 체계에 의한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다. 디자인이 장식·기능·형태를 넘어 이야기를 담게 되면서 디자이너가 담아내는 이야기의 맥락이 디자인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게 되 고 이러한 방법론의 공유는 예술과 디자인이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만나게 하였다. 콜라보레이션이라는 형태를 통해 이야기를 담아내는(빌려오는) 소극적인 방식을 넘어 디자이너가 작가로서 이야기를 생산하고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방법론의 선택이 자연스러워지고 있으며 디자이너의 역할이 제품생산 프로세스의 일부나 장식 미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 콘텐츠 생산자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들 또한 단발적인 아이디어 중심의 작업이 아니라 가치관이 반영된 자신만의 맥락을 만들어나가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중시되어야 하며 이를 위한 내용적 바탕이 될 인문학적 소양 또한 강조되어야 한다. 이는 디자인의 비평적 역할을 강조한 비평적 디자인 영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하여 이미 모든 디자인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디자인을 통해 그 디자이너가 세상을 읽는 시선,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론을 선보이고 관객들은 그의 세계관에 대한 동의를 소비라는 형식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이 경우 디자인의 가치는 물질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이에 디자이너로서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그에 필요한 소통을 해나가는 것이 디자이너의 역할이자 책임이라 하겠다. 둘째로 개념 디자인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함에 따라 대학이 이에 적합한 연구기관으로서 의 기능과 역할을 회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상디자인학과는 2011년 학과의 영문명을 엔터테인먼트디자인으로 변경하며 개념 중심·가치 중심의 디자인이라는 비전을 담았다. 디자이너의 역할이 영상, 공간, 의상 등의 매체 구분에 의한 기술적 전문성을 넘어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개념을 정의하고 그에 적합한 콘텐츠를 창조하는 역할임을 제시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을 정의, 창조하는 역할로서의 디자인은 미래 삶의 중요 가치를 읽어내는 융합적 리서치가 필수적으로 선행 연구되어야 하고 이러한 연구는 학제 간 교류를 통해 보다 긴 호흡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대학 기관이 오히려 이러한 기능을 거대 기업들에게 빼앗기고 수동적인 인력 수급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바로잡아야 하는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즉, 연구기관으로서의 대학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융합을 통한 미래 가치 창출의 중심적인 역할을 되찾아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대학은 이미 오랜 역사를 통해 독립성을 확보하고 이러한 연구를 통한 교육에 최적화된 환경을 구축해왔기에 기업의 근본적인 속성과 구조로 인해 소화할 수 없는 긴 호흡의 독립적 연구와 실험들을 교육 및 연구기관이 담당해야 할 것이다. 운전이 자동화된 자동차에서 창출된 새로운 공간과 시간 안에서 어떠한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필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자동차 안의 작은 모니터의 UX를 만드는 개념과는 차원이 다른 복합적인 방향으로 접근하여야 할 것이고 이에 새롭게 제시되어야 할 이동성 Mobility의 개념 정의에 대한 융합적 논의가 필요함은 당연할 것이다. 또한 건축물 내외부의 미디어 파사드나 미디어 월, 거리의 미디어 폴 등을 통해 건축 및 공간디자인이 매체로서의 역할, 즉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부여되고 있는 시점에서 도시 공학자, 행정가, 건축가 등과의 융합적 연구가 없이는 콘텐츠와 미디어 간의 유기적 관계를 만들기가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연구 리서치를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개념 창출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학 기술들이 그 개발과정에서 디자인의 여러 영역들과 밀접한 교류 를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해외 유수 대학의 학과운영을 살펴보면 성공적인 여러 사례1)들을 찾아볼 수 있다. 디자인이 디자인이란 분류체계에 매여 있으면 디자인의 미래는 스스로 위축되고 한정지어 지며 다른 영역의 확장에 의해 잠식될 것이다. 오히려 디자인은 보다 모호한 형태로 확장하고 발전해 나가고 설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해야 한다. 디자인이란 영역을 끊임없이 디자인해나가는 것 또한 디자인 교육·연구기관의 중요한 몫일 것이다.

박제성
영상디자인학과 교수


  • 외부칼럼 | 내가 본 조형대학과 한국 디자인 교육
—행복했던 디자인 교육, 행복을 줄 디자인 교육

한 대학의 전공 교육은 그 대학의 정체성을 만들 뿐 아니라 다른 대학들의 전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말하자면, 어느 대학의 디자인 교육이 그 분야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게 되면 적어도 국내 대학의 디자인 교육 전반에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이하, 조형대)의 디자인 교육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할 사례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보면, 1980년대 후반에는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할 매체가 없었기 때문에 조형대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풍문으로’ 들어야 했다. 조형대학에 디자인과 건축이 함께 있다는 것,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는 것, 조형전에 전 학년이 참여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 당시에는 조형대의 대외적인 활동이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노출되면서 짧은 기간에 이목을 끌었고 결과적으로는 조형대 디자인 교육이 서울대와 홍대의 경쟁구도에 균열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의 디자인 교육 전체로 본다면 새로운 구도, 다양한 모델이 형성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것은 오랫동안 굳어져 온 관행을 벗어나기 힘든 두 학교들에 비해 신생 대학인 조형대가 당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산업미술’이라든가 ‘산업도안’이라는 학과 명칭을 사용하던 시절에 조형대가 ‘시각디자인’, ‘공업디자인’이라는 대학 학과 명칭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단과대학의 명칭 자체도 미술대학이 아닌 조형대학이었다. 언젠가 한 매체에 실린 정시화 교수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조형대는 1970년대 말에 구조조정을 통해서 응용미술관련 학과로만 구성한 한국 최초의 디자인 대학인 조형대학을 만들었으며, 원래는 ‘디자인 대학’이라고 명명하려 했지만 당시 일반적인 사회통념이 디자인을 외래어로 인식하고 있어 부득이 ‘조형대학’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근래에는 정부의 정책과 대학 경쟁력 때문에 다양한 단과대학 구성이 이뤄지고 있고 학과 명칭도 제각각이었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주목할 만한 시도였다. 신생 대학이라고 해서 어느 대학이나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자적인 디자인 대학을 선언하려는 교수들의 의지가 확고해야만 가능하다. 조형대학 설립 초기에 3년간 연속해서 전국 순회 조형전을 추진했다는 것이 이 사실을 입증한다. 조형전을 비롯해서 교육의 비전을 제시하려고 한 노력은 90년대에 전국적으로 디자인학과가 각 대학에 신설되던 시기와 맞물려 파급 효과가 한 층 컸다. 디자인 분야에서 후발 대학들은 자신들의 포지셔닝이 필요했고 어떻게든 인지도를 높여야 했었는데 이때 조형대가 롤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즉, 상대적으로 전통이 짧은 대학이라 하더라도 영향력 있는 대학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이렇게 ‘우리도 조형대처럼’ 해보자는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났지만 현실적으로는 제 2의 조형대가 등장하기는 어려웠다. 디자인학과가 급증했고 다들 비슷비슷한 전략을 취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전시 형태로 학교 활동을 보여주거나 디자인공모전에 출품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는 그나마 이런 활동도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아무튼 이런 현상은 결과적으로 조형대의 인지도를 더욱 높여주는 역할을 했고 이미 안정적인 교육 과정을 갖춘 조형대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입시 제도와 컴퓨터 교육에서 나타났다. 디자인학과의 입시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미술대학의 입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디자인 입시 실기에서 어느 대학이든 소묘와 구성으로 평가했었는데 이것은 서양화과가 소묘와 정물화로 평가하는 틀을 따른 것이었다. 조형대는 과감하게 구성 시험을 폐지했다. 이후에 실기 전형에 몇 차례 변화가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관행을 벗어난 선발 방식으로 시도했다는 점이다. 또 80년대말에 컴퓨터실을 구성하여 교과목에 반영했던 것도 이에 못지 않은 과감한 시도였다. 그 당시에 그만한 장비를 갖춘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예산 부담이 큰 일이었다. 게다가 전산학과도 아닌 디자인학과에 그만한 투자를 한다는 것은 몹시 이례적이었다. 컴퓨터실은 학생들이 학교에 오래 머물러 작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요즘처럼 개인이 노트북을 들고다니는 상황이 아니었고 집에 데스크탑을 소유한 학생을 찾아보기 힘든 때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도 밤늦도록 학생들이 컴퓨터실을 드나들면서 작업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장비를 어렵게 갖추었다고 해도 디자이너들이 볼 만한 매뉴얼도, 가르칠 강사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학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관심있는 학생이 어느 정도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게 되면 후배들에게 알려주는 일이 빈번했고 그런 상호관계가 지속되면서 자연스레 학교 생활이 활기찬 모습을 띄었다. 국민대 대학원을 다녔던 개인적인 경험 외에도 조형대의 디자인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두어 번 있었다.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기 시작해서 처음 맡은 전시가 디자인교육전(2001)이었는데 그때 국내 여러 대학의 교과과정을 살펴보았다. 당시에 전시의 영문 부제를 ‘Designing Designers’로 정한 것은 디자인 전문가를 교육하는 것뿐 아니라 디자인 교육과정 자체를 계획하는 것까지 다루려고 했기 때문이다. 조형대 자료도 물 론 포함되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기술교육대, 서울건축학교 등 독자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기관을 다루었었다. 또 한번은 네이버캐스트의 ‘디자이너 열전’에 올린 원고를 위해 정시화 교수를 인터뷰했던 때였다. 이 전에 전시를 기획하던 때보다는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객관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였다. 정시화 교수도 정년퇴임 이후에 지난 일을 돌아보면서 차분하게 생각을 풀어주었다. 그러면서 발견한 것은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교육과정의 완결성, 또는 학교의 지원 체계, 대외적인 활동보다 더 중요한 동력이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예컨대, 디자인교육전에서는 80, 90년대 교과과정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다른 학교들과 비교 분석해 보고 졸업전에서 어떤 결과물들이 나왔는지 살펴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교육을 담당했던 이들의 의식과 태도가 어떠했나 하는 것이었다. 조형대의 경우를 압축해서 보자면 젊다는 것이었다. 교수진이 생물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젊었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이 가능했던 것 같다. 젊다는 것은 여러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었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의기투합할 수 있었음을 뜻한다. 이것이 조형대 교육의 특징이자 강점이라고 하겠지만 좋은 측면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 학교나 교육의 특징과 강점이 있으면서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디자이너로서, 또 큐레이터로서 여러 전문가들과 만난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조형대의 저돌적이라 할 만큼 열성적이고 성실하며 조직적인 움직임이 적어도 90년대 말까지는 이견이 없을 만큼 적확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일사분란한 그 움직임이 여전히 유효한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말하자면, 우수한 학생 집단이 매년 졸업하는 것보다 어쩌면 다양한 성향을 갖고 다양한 진로로 나아갈 개인들이 배출되는 것이 더 나은 시대가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다.

다분히 개인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조형대 디자인 교육은 디자이너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일정한 역량을 갖추기 위한 교육 또는 사회 진출을 위한 적정수준의 능력을 갖춘 것에는 성공했다고 본다. 또 지속적인 노력으로 전문 디자이너에 대한 사회적 수요와 기대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결과를 낳았다. 그렇지만 사회적 수요란 뭔가. 우수한 학생의 역량을 따질 잣대는 또 무엇인가. 그것을 당대의 교육자가 판단하거나 정의할 수 있을까.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교육과정이 탄탄할수록 비전이 명확해서 어쩌면 학생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것은 90년대 말에 한국 국민이 경험한 전지구적 변화, 특히 국내 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포함한 변화를 말한다. 물론 조형대는 전공을 다각화해서 어느 대학들보다도 빨리 대응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우려가 있다. 사실은 쉽게 풀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고 조형대에만 해당되는 우려도 아니다. 핵심은 디자인 교육에 있어서 정책적 대응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우선, 지난 몇 년간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디자인 붐이 갑작스레 일었다가 가라앉으면서 디자인 전문가들이 혼선을 겪었고 최근에는 대학 전체에 새로운 용어를 동원한 교육 정책이 변화무쌍하게 추진되어 교육 현장은 늘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제는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이니셜로 지칭되는 수많은 사업, 무슨무슨 특성화 사업 등을 생각하면 오래전 BK21을 이야기할 때가 참 낭만적이었다. 더 연장해서 말하면, 앞서 살펴본 조형대의 활동, 즉 교육의 비전을 세우고 열성적인 노력으로 추진해왔던 그 풍경이 낭만적이었다는 것이다. 복잡한 오늘의 상황을 고려할 때, 낭만적인 시대를 기억할 수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몇 십 년 뒤에 다시 이런 글을 통해서 필자의 생각이 기우였다고 할 만큼 멋진 교육 모델이 기록된다면 더욱 행복할 것이다.

김상규
인터랙티브 미디어 수업,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학과별 교육 및 성과

*공업디자인학과

산업디자인 현장의 발전을 견인해오다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는 1973년도에 신설된 장식미술학과의 전공 영역의 하나로 출발하였다. 장식미술학과는 1975년 조형학부로 편재되었으며, 1979년에는 산업미술학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당시 국내의 여러 디자인 계열 학과가 ‘장식미술’이나 ‘응용미술’ 등의 명칭을 사용한 것과 비교해 보면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및 공업디자인학과는 초기부터 학과의 정체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산업미술학과는 1983년 3월 공업디자인학과와 시각디자인학과로 분리되어 2015년 현재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다. 학부교육 외에도 1988년 대학원과정을 신설하여 디자인 연구를 선도해 왔으며, 1998년에는 실내디자인학과가, 2014년에는 자동차디자인학과가 공업디자인학과를 모태로 분화·신설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99년에는 BK21사업의 특화분야에 지원하여 선정됨으로써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이 출범하는 데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현재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에서는 약 180명의 학부생, 70여 명의 관련 석사 과정 대학원생과 10여 명의 교수진이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는 한국디자인계를 선도하면서, 1970-90년대 우리나라 전자산업과 자동차산업의 태동과 성장, 2000년대의 IT산업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 우수한 인적 자원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왔다. 그동안 졸업생들의 실무 능력과 회사에 대한 성실성은 많은 기업실무자들로 하여금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 졸업생에 대한 신뢰감를 갖게 하였으며, 그 결과 현재에도 많은 동문 디자이너들이 우리나라 디자인산업의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기업에서 선호하는 인재, 디자이너로서의 전문성과 직장인으로서의 균형을 갖춘 인재는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 DNA의 산물이며, 이러한 문화의 형성에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교육에 전념해온 김철수 교수를 필두로 한 전임교수들의 역할과 공로가 크다. 또한 공업디자인학과는 해외 선진학문을 국내에 보급하는 학문적 선도자 역할을 수 행해 왔다. 해외 유학을 통해 선진학문을 전공하고 국내로 돌아온 젊은 학자들이 교육을 담당하면서,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는 물론 우리나라 산업디자인계 전반에 신선한 학술적 영향을 미쳤으며, 이 결과 전국적으로 다수의 디자인계열 대학에 교수와 연구자로 재직하는 여러 동문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2015년 현재 공업디자인학과의 전임교수로는 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디자인산업의 정책을 연구하는 정도성 교수, 정량적 연구방법과 기초 조형교육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있으며 디자인의 학문적 연구를 주도하는 김관배 교수, 3D모델링 및 3D프린팅 등의 뉴 테크놀로지에 전문성을 갖춘 장중식 교수, 사용자경험디자인과 디자인 리서치 방법론을 연구하는 연명흠 교수, 지속가능한 디자인을 연구하는 엠마뉴엘Emmanuel Wolfs 교수, 여러 글로벌 기업현장에서 축적된 실무 디자인의 경험을 갖춘 정명규Adam Chung 교수가 재직하고 있다. 이 중 엠마뉴엘 교수와 정명규 교수는 외국인 교수로서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국제적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원어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 외에도 현직에서 활동하는 우수한 디자인 전문가와 연구자들로 구성된 강사진이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정규 교육내용 및 환경 외에도 공업디자인학과는 국제교류, 산학협력, 디자인 프리젠테이션 데이와 같은 다양한 방식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CCSCollege for Creative Studies, 스웨덴 Mittuniversitetet,일본 Nagoya University, Waseda University, Kyushu University, Tokai University, 멕시코 Universidad de Monterrey, 프랑스 Strate College 등 여러 대학과 교류 프로그램를 시행해 왔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해마다 약 4명의 한국 학생이 유럽으로, 4-6명의 유럽 학생들이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로 유학을 와서 1학기 이상을 체류하며 학점을 이수하고, 문화 체험과 현지 기업 에서의 인턴쉽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러한 국제교류 프로그램은 교환학생 본인은 물론 외국 학생과 수업을 듣는 재학생 모두에 신선한 자극과 경험이 되고 있다. 2015년도에는 이러한 협력과 교류를 대학을 너머 해외 기업 인턴쉽 프로그램으로 확장하였다. 프랑스 다쏘시스템Dassault Systemes에 본 학과 학생 4명이, 일본 후꾸오까의 Goku Den사에 4명의 학생이 인턴으로 파견되어 현지에서 해외 대기업의 실무를 경험하고 국제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공업디자인학과는 학과가 설립된 이래, 국내외 여러 기업들과도 지속적인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국제적인 기업인 NEC, Dassault Systemes, Adobe, Altair, Autodesk, UNITY, Opticore, Siemens, RTT, Goku Den, Microsoft 등과 LG전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위아, 기아자동차, GM, 쌍용자동차, NC Soft, Sidiz, 영실업, 웅진코웨이, 듀오백, 태하 메카트로닉스, 닐슨, 보르네오, 리바트 등의 국내기업들과 함께 산학협력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으며, 서울시 시장경영센터, 재단법인 서울디자인센터, 산업통상자원부, 한국디자인진흥원 등 여러 기관들로부터 정부 R&D사업을 수주해 왔다. 최근에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주관하는 ‘3D프린팅 비즈니스 창출을 위한 D2B 클라우딩 시스템기반 구축’ 과제를 수행하는 한편, 기업 주도의 대학교육 프로그램인 LG디자인클라스를 시각디자인학과와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공업디자인학과는 학생들이 마지막 학기에 디자인프레젠테이션 데이Design Presentation Day를 경험하도록 해왔다. 디자인프레젠테이션 데이는 공업디자인학과 자체 행사로 4학년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자신의 졸업 결과물을 관련 기업의 디자인 담당 임직원, 정부 관련부처 담당자, 교수, 재학생, 학부모 들 앞에서 직접 발표하는 프레젠테이션 쇼로, 학생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대중에게 전하고 설득하는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신장하고, 취업만이 아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척하고 창업·창직에 도전하기 위해 시행되어 왔으며, 스타 디자이너를 육성하고자 하는 의도도 담겨있다. 공업디자인학과 내에는 2015년 현재 우즈다트Ouzdat, 제퍼스Jappers, 포스Force, 폼Form의 4개의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 우즈다트 동아리는 사진촬영을 취미로 하는 학생들의 소모임으로 선후배와 취미를 공유하고 연 2회의 정기 전시를 통해서 디자인의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해 온 모임이다. 제퍼스는 학과수업뿐만 아니라 공모전이나 팀 프로젝트, 전시회 등을 통해 제품디자인 성과물을 발표해 온 모임이다. 포스는 컨셉 아트 및 게임디자인 분야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로 구성된 동아리로서 컴퓨터 게임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함께 연구했으며, 2D뿐만 아니라 3D 기획 등 다양한 활동을 작품전시를 통해서 진행해 왔다. 폼은 운송제품 관련 디자인을 연구하는 학생들의 동아리로 조형에 대한 연구를 해왔으며 그 주제는 차량을 기본으로 요트, 비행기 등 운송기기 전반에 대한 것이었다. 공업디자인학과 학생들은 1988년부터 현재까지 국내외 여러 공모전에서 260여 건에 이르는 우수한 수상실적을 거두어왔다. 1997년 현대자동차 디자인 공모전에서 김태욱, 신경균 학생이 대상을 받은 이래, 성정기, 류형곤 학생이 2003년 IF 국제디자인 공모전 컨셉 부문 본상에 진출하였고, 2007년도에는 박석우 학생이 Red Dot AwardRDA 본상에 진출하였다. 2008년도 RDA에는 공업디자인학과 소속의 3팀이 모두 본상에 진출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2009년도 IF Concept Design AwardsIFCDA에는 박석원 학생이 500 Euro Prize를 수상하였으며, RDA에서도 유인식 학생 등이 본상에 진출하였다. 2010년도에는 RDA Concept 부문에서 정한비 학생 등이 Best of Best를 수상하였고, 2012년에는 노마리아, 노진혁 학생이 RDA Winner로, 김은아, 이주현 학생이 IFCDA Winner로,2013년도에는 김도윤 학생 등이 RDA Winner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와 같이 해마다 국제 유수의 공모전에서 국민대학교 공업디자인학과 학생들의 작품이 선정되어 학과의 자랑이 되어왔다. 최근에는 추성민 학생의 디자인 작품이 LINC사업의 창의적 지식재산(디자인) 사업화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서 그 우수성을 입증했다.

공업디자인학과의 교육

공업디자인학과의 교육 목표는 유능한 공업디자이너와 디자인 연구자를 양성하는 것이다. 공업디자인은 인간 삶에 필요한 제품과 서비스를 창안해내고 그 외관과 사용과정을 설계하여, 기업과 사용자 모두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산업사회의 전문분야라 할 수 있다. 우수한 공업디자인 결과물은 사용자 개인에게는 심리적 만족감과 매력적인 사용경험을 제공하며, 기업에게는 영리창출과 기업이미지 제고를, 국가사회적 차원으로는 국가경쟁력과 문화 수준을 향상시킨다. 공업디자인의 적용 대상은 TV, 세탁기와 같은 가전제품, 스마트폰을 비롯한 정보통신기기, 자동차 등의 운송기기, 사무용품, 주방기기, 로봇 산업, 항공우주산업, 디지털 미디어, VR 및 게임, 공공시설물과 환경 구조물, 서비스 시스템 등 모든 산업에 걸쳐있다. 디자인이 기능성을 따라가던 시대에 공업디자이너는 개발자들이 개발해 놓은 제품의 외관을 완성시키는 역할에 머물렀으나 현 시대의 디자이너는 사용자들의 새로운 수요를 찾고 제품 혁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즉 공업디자이너는 외관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획을 주도하며 개발에 참여하고 생산과 판매 후 관리까지의 전 과정에 관여한다.

이에 맞춰 공업디자인학과의 교육과정은 변화하는 디자인 흐름에 맞는 다양한 분야의 실무 디자인 교육은 물론, 미래 사회에서 요구되는 디자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선진적인 교육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1학년 과정에서는 기초 조형능력을 기르는 동시에 공업디자인을 위한 2D 표현과 3D 디지털 표현방식을 익히며, 산업디자인의 역사를 이해하고, 세부 전공분야에 대해 탐색한다. 2학년 과정에서는 산업디자인의 프로세스와 방법론을 학습하고 생산공정에 대해 이해하며, 재료와 구조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심화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기초 수준의 제품디자인과 지속가능 디자인 프로젝트를 경험한다. 또한 심화된 3D 컴퓨 터 모델링 테크닉을 학습하고, 인간공학과 색채기획 등 다양한 전공 지식을 습득한다. 이러한 기초과정을 토대로 3학년 이후로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심화해 나간다. 3학년 과정에서는 생활기기, 산업기기, 정보기기, 스포츠·레저용품, 공공환경 및 시설물, VR 제품, 인터페이스 및 인터랙션, 디자인 컨텐츠, 제품개발 및 기획 둥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스튜디오 교과를 통해 학습하며, 4학년 과정에서는 3학년 과정을 토대로, 제품시스템디자인, VR제품디자인, 공공환경디자인, 디자인 기획 및 비즈니스 등 자신의 전문 분야를 특화시켜 나가게 된다. 특히 4학년 과정에서는 전문성을 갖춘 스튜디오 수업에 더불어 체계적인 사고와 숙련된 프로세스를 통해 결과물을 구체화하고 가시화하여 졸업전시회로 발표하며, 디자인권을 출원하고 비즈니스화하는 전 과정을 경험한다. 이러한 4년간의 밀도있는 교육을 통해 공업디자인학과는 실무 능력과 종합적 문제해결 능력, 미래지향적 적응력을 갖춘 우수한 공업디자이너를 양성하고 있다.



학과연표
연도 내용 비고
1973 장식미술학과 신설
1974 부수언 교수 임용, 1977년까지 재직
1975 조형학부 신설
1976 김철수 교수 임용, 2012년까지 재직
1977 산업미술학과로 명칭 변경
1980 김경배 교수 임용, 1984년까지 재직
1983 산업미술학과가 공업디자인학과와 시각디자인학과로 분리
1984 이순종 교수 임용, 1999년까지 재직
1986 김현중 교수 임용, 1994년까지 재직
1988 공업디자인계열 석사과정 신설
1991 김민수 교수 임용, 1994년까지 재직
1995 정도성 교수 임용
1996 이찬 교수 임용, 1998년 실내디자인학과로 전보
1997 ㈜동양매직 산학과제전, NEC 산학전시회, 삼성자동차 산학전시과제전
1999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퓨전디자인 전공 신설
박영목 교수 임용, 2004년까지 재직
2001 김관배 교수 임용
2002 비 IT학과 교과과정 개편 지원사업 선정(정보통신부)
2003 NC 모형제작실 설립
2004 Wavefront(ATC), Alias 소프트웨어 40 Copy 기증 및 MOU 체결
박종서 교수 임용, 2013년까지 재직
2006 ‘UIT(Ubiquitous IT) 디자이너의 융합적 능력향상을 위한 교육시스템 구축’ 사업 선정
인석일 교수 임용, 2010년까지 재직
2008 KIDP 디자인 계약운영제사업 선정
2009 장중식 교수 임용
2012 다쏘시스템코리아 카티아 V6(CATIA V6) 40세트 기증 및 협약식
엠마뉴엘 교수 임용
2013 알테어 Inspire/Evolve 디자인 S/W 기증 협약식, GM 산학협동협약체결
연명흠 교수 임용
2014 LG전자 산학협력 MOU체결, LG Design Class 개설
정명규 교수 임용

동문 글 | 단 하나의 디자인이라도

잠시 1981년 여름 2학년 시절로 돌아가 본다. 그날도 어김없이 졸린 눈으로 전공수업이 시작되길 기다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 과제는 무리라고 생각했었지만 지난 일주일 내내 거의 매일 밤을 졸음과 싸워 가며 오늘 새벽까지 이번 과제를 마무리한 내가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때는 낮 동안 수업이 빈 시간은 주로 동아리 방으로 달려가 선후배들과 지내다가 밤이 돼서야 집으로 기어 들어가는 게 일상이었던 시절이라, 매일 밤 새벽시간까지 50장 이상의 각기 다른 디자인 스케치를 해야 하는 이번 과제가 내겐 무척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해는 내가 동아리 활동에 빠져 있었고 수업시간 이외에는 항상 같은 과 동료들이 모여 공부하고 있을 11층 전공 교실을 피해 곧장 학생회관 4층으로 내달렸었다. 그래도 그때 무슨 생각에서인지 수업과 과제만큼은 빼먹지 않고 충실히 하려고 무척이나 애썼던 것은 이제 와 돌이켜 보면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다.

아무튼 이 살인적인 과제를 해 온 학생은 그날 내가 유일했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의 불성실한 과제에 화가 날대로 나신 교수님은 내 과제를 꼼꼼히 확인하시고는 “쓸모 있는 디자인이 하나도 없다”고 핀잔만 주시고는 수업을 끝내 버리셨다. 유일하게 50장을 모두 해 버린 나에 대한 칭찬 한마디도 물론 없으셨다. 일주일간 꼬박 밤새워 가며 마친 과제는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한 다른 동료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아침부터 실망감과 허탈함 그리고 밀려오는 체력의 한계가 그만 1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내 정신 줄을 놓게 만든 것이다.그날 나는 바리바리 짐을 챙겨 곧바로 혼자 강릉으로 갔다. 오랜만에 확 트인 바닷가도 보고 해변도 돌아보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 자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다. 밤을 새워 가며 50장 이상의 숫자에만 집착했던 나 자신에 대한 한없는 부끄러움과 마치 어린 아이와도 같았던 짧은 생각에 대한 후회가 그해 여름 내내 나를 괴롭혔고 지금도 이따금 가슴 한 켠으로 되새김질 하고 있다. 가끔씩 사무실에서 일정에 쫓기면서도 시간에 맞추기 위해 동시에 여러 개의 프로젝트들을 밤을 새워 가며, 미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컴퓨터에만 앉아 서둘러 디자인 하고 있는 우리 구성원들을 볼 때마다 그때의 일이 생각난다. 마음도 개운치 않고 안타까운 생각이 난다. 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개개인으로 봐서도 이렇게 수많은 디자인을 해치운다고 한들 하나만이라도 좋은 디자인을 해낼 수 있을까? 리더의 한 사람으로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다.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물론 나처럼 속물이 다 되어 버린 기업디자이너에게 훌륭하고 좋은 디자인의 정의를 내려 보라고 한들 기껏해야 소비자, 판매량, 스타일 정도의 단 어가 튀어 나오겠지만 말이다. 모름지기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세상에 남을 만한 좋은 디자인을 꿈꾼다. 셀 수 없이 많은 디자인을 해내기보다 하나만이라도 남들이 인정하는 세상에 남길 만한 멋지고 훌륭한 디자인을 해 본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그런 디자인을 남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항상 부럽다. 50개의 디자인보다 단 하나의 디자인이라도 좋은 디자인으로 만들기 위해 다시 한 번 여유로운 마음으로 사용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서 깊이 있게 사고하고 개념을 갖춰 상상하고 싶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럽게 조형의 날은 서게 될 것이고 그때서야 비로소 컴퓨터에 앞에 앉아 정리된 생각으로 디자인을 난도질 하고 싶다.


*시각디자인학과

시대를 읽고 문화를 창조하다

1975년 조형학부의 시작과 함께 장식미술학과에서 시각디자인의 교육을 시작했다. 1976년 장식미술학과가 산업미술학과로 명칭을 바꿨으며, 1977년 산업미술학과는 공업디자인학과와 시각디자인학과로 나누어짐으로써, 학과 단위의 전문화된 시각디자인 교육이 시작되었다. 주로 장식미술, 도안미술 일색이던 당시 학과 명칭에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디자인 교육 사상 국내 최초이며, 이는 한국 최초의 외래어 학과 명칭이기도 하다. 시각디자인학과의 40년 역사는 출범 초기의 인쇄매체와 광고를 주로 다루는, 이른바 그래픽 디자인 중심의 교육으로부터 매체기술의 혁신적 발전에 힘입은 영상매체나 멀티미디어 영역으로까지 확산된 교육으로의 이행이었다. 이는 보다 세분화, 전문화되고 첨단 매체 친화적인 교육을 위한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수행했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초기 인쇄 매체 위주의 교과목인 색채학, 사진학 등의 과목을 전문적인 디자인 중심의 색채디자인, 사진디자인으로 교과과정을 개편하는 한편, 비디오그래피, 씨네마토그래피 등 시대에 한발 앞선 교과과정을 도입함으로써 시각디자인 교육의 지평을 확장하였다. 또한 실기교육과 함께 디자인 이론과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력, 언어 구사능력 등을 포함한 인문학적 교육을 병행하여 기술과 함께 문화적 소양을 강화시켰다. 시각디자인학과는 출범 초기부터 안정언, 정시화, 김인철, 윤호섭 교수와 같은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유능하고 열정적인 교수들을 영입함으로써, 국제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교과과정을 개편함과 동시에 학생들의 조형적 기량과 디자인 감각을 효과적으로 신장시킬 수 있는 실질적이고도 참신한 형식의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 디자인계의 선구적인 이론가였던 정시화 교수는 교육 전반의 바탕이 되는 디자인이론을 체계화시킴으로써 시각디자인학과뿐만 아니라 조형대학 전반의 교육 방향과 정체성을 구축했다. 학과의 교육은 이후 유영우, 백명진, 전승규, 김민, 이준희, 김양수 교수 등의 중진들에 의해 더욱 구체적으로 정립되었다. 그리고 세분화된 각 영역에 최고의 교수들이 합류함으로써, 통합적이면서도 선진적인 시각디자인교육을 이어왔다. 시각디자인학과는 1999년에 당시 김인철 학장의 주도로 출범한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의 체계를 구성함에 있어서도 크게 공헌했으며, 대학원 내 시각디자인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전공을 개설함으로써 그 규모를 더욱 확장했고 신설된 박사 과정을 통해 고급 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한편, 시각디자인 분야의 팽창은 2010년 조형대학에서 신설된 영상디자인학과의 출범으로 이어졌으며, 전승규, 하준수, 오승환 등 시각디자인 분야의 교수들이 신설학과로 이적해 영상디자인학과의 교육 체계와 내용을 정립시켰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는 지난 40년 동안 교육 내용, 교수 방법, 평가 제도에 있어 높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왔다. 학과에서는 매년 1학기의 교내 졸업작품전, 2학기의 교외 기획전시를 운영하는데, 교외 전시는 다른 대학의 일반적인 졸업전시회와는 달리 뚜렷한 주제를 갖는 기 획전의 형식으로 개최됨으로써, 학생들의 작품 속에서 주제의식과 이를 해석하는 창의력을 볼 수 있는 전시회로서 외부에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시각디자인학과의 졸업과정은 4차에 걸친 엄격한 심사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졸업을 위해서는 모든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까다로운 심사과정은 학생들에게 학습에 대한 명확한 동기는 물론 조형대학 시각디자인학과 졸업생으로서의 높은 자부심을 부여한다. 학생들의 진로지도와 비전창출을 위하여 매 학기 주제를 정하여 외부 디자이너들을 초빙하여 진행하고 있으며 선배들과 학생들의 유기적인 관계형성 및 진로지도를 위한 선후배 멘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13년도에는 졸업한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하여 《FYI: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당신에게 펼쳐질 일들》이란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또한 실험적인 수업의 결과물들이 학생들의 주도아래 《Dear Sgemister》, 《헬베티카》, 《온돌1, 2》, 《시각 현상탐구:한반도》, 《타이포그래피 챕터99》 등 다양한 형식으로 출판하고 있다. 나아가 3년에 한번씩 조형대학차원에서 열리는 조형전에서 커리큘럼을 입체적으로 전시하는 한편 시각디자인 분야의 컨퍼런스를 진행해오고 있다. 실험적인 교육은 물론 학생들의 실무적 경험을 중시하여 30여 개의 디자인분야 산학연계 기업들과 현장 실습교육을 진행해오고 있으며 디자인 리더십을 통한 창업관련의 교육에도 노력을 경주해왔다. 이러한 교육방침에 따라 졸업한 동문들은 ‘미디어포스’, ‘그린나라’, ‘포스트비주얼’, ‘디자인피버’ 등 국내 각 디자인 전문분야를 대표하는 기업들을 이루어냈다. 최근에는 국내소셜펀딩의 대표적인 기업 ‘텀블벅’, 소규모 디자인스튜디오 ‘선샤인 언더그라운드’ 등 새로운 시도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는 국제교류의 확대와 체계화를 위하여 주요핵심수업들을 영어수업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장 폴로Jean Georges Poulot(2004년 임용), 크리스 로Christopher J. Ro(2010년 임용) 교수 등 해외 우수인재를 교수로 초빙하여 국제화된 교육을 진행해왔으며 미국의 칼아트California Institute of Arts, US, 프랑스의 HEAR Haute ecole des arts du Rhin France, 태국의 실파콘Silpakorn University,Thailand 등 세계 유수의 디자인 대학과의 연계를 통하여 전시, 교환학생, 워크샵 등 여러 프로그램으로 세계 속의 시각디자인학과로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학문적 실험성과 현장중심 교육을 바탕으로 시각디자인학과 학생들은 다양한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ADC, TDC, 깐느광고제 등 국제적인 디자인 경연대회뿐만 아니라 국내외 유수 디자인 어워드에서 100여 건이 넘는 수상실적을 자랑하고 있다. 2007년에는 국내 최초로 어도비 우수디자인상Adobe Design Achievement Awards 프린트 디자인 부문에서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4학년이었던 안수진이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고, 다음해인 2008년, 서동주 학생이 같은 대회 7개 부문 중 3개 부문 에서 최우수상하기도 하였으며, 2011년에는 이송은 학생이 애니메이션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매해 최우수, 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지속적으로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40여 년의 역사와 함께 무수히 많은 졸업생들도 배출되어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시각디자인학과 출신의 디자이너들은 광고, CF 등에서 많은 두각을 나타내어 제일기획, 맥켄에릭슨, LG애드, 이노션, 대흥기획, TBWA 등 국내유수의 광고회사에서 그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지금은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송성각을 비롯하여, 역시 제일기획을 거쳐 지금은 서원대학교 교수인 김규철, 나라기획, 제일기획, TBWA 등을 거친 김호철 등은 시각디자인학과 출신의 광고인이다. CF 분야에는 스타 감독들이 유독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세종문화를 거쳐 지금은 Boom Production의 대표인 김한수를 비롯하여, 최근 유명 광고들 대부분을 감독한 이성호, 염규복, 그리고 최근에는 서태지 뮤직비디오 등을 연출한 한동욱 등이 있다. 시각디자인학과는 교과과정에서 인터랙티브미디어 분야를 초기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영향으로 허승일(미디어포스), 설은아(포스트비주얼), 노진영(디자인피버) 등 동문들이 창업을 통해서 뉴미디어 디자인 분야를 이끌어가고 있다. 교육분야에서도 다수의 졸업생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청주대 학교 김태철, 영남대학교 김해태, 호서대학교 박재모, 숙명여자대학교 유택상, 상명대학교 정재욱, 아주대학교 이주엽, 이경원 등이 교육자로서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언론재단에서 근무하는 최성훈 등 정부 부처에서 디자인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 이외에 배우이자 방송인 이세창, 만화가 양영순 등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시각디자인학과의 교육
시각디자인학과의 교육 목표는 전문 기술과 지식의 습득뿐만 아니라 문화 창조자 및 해석자로서 자질을 배양하는 것이다. 즉, 문화를 이해하는 통찰력과 이것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조형능력을 갖추고 정보생산과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에 참여하여 창의적 사고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제시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교과 과정은 그래픽 트랙, 브랜딩 트랙, 미디어 트랙으로 나누어지며 다양한 매체의 경험과 전문적 깊이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6년 기초교과과정의 기본적인 재정비에 이어 2012년 현재의 교과과정이 정립되었다. 이때 교과과정 연구의 목표는 기술 및 정보의 급진적인 발전양상에 따라 시각디자인 교육에서 필요한 기초조형능력을 규정하고 이를 세부분야와의 관련성에 따라 정리하였다. 이는 표현력 이전에 선행해야 할 정보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분석 그리고 각 과정과 기술을 융합할 수 있는 종합적인 사고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즉 전통적인 디자이너로서 갖추어야 할 조형능력을 새로운 교육방법을 통하여 강화하는 동시에 인문학적인 지식과 안목에 근거한 창조적 제안을 능동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사고 융합적 디자인과목을 개설하였다. 이에 따라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교과과정이 마련되었다.2012년 이후의 교과과정은 크게 1-2학년의 ‘기초’ 과정, 3학년의 ‘심화, 실험’ 과정, 4학년의 ‘종합, 창작’ 과정으로 구성된다. 1, 2학년의 기초과정에서는 ‘타이포그래피1, 2’와 ‘그래픽디자인1, 2’를 중심으로 시각 조형 형식과 논리를 맥락 중심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며 동시에 ‘디자인과 글쓰기1, 2’ 수업을 통하여 정보에 대한 이해와 논리적 접근능력에 집중한다. 또한 ‘미디어디자인’ 과 융합교과목인 ‘디지털드로잉’, ‘디지털모델링’ 등을 통하여 새로운 표현 매체와 기법을 교육한다. ‘전산1, 2’와 ‘디자 인워크샵1, 2’, ‘인터랙션디자인 1’을 통하여 프로그래밍 능력과 이를 통한 디자인 표현능력을 연계하여 정보화 시대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3학년은 이러한 기초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그래픽-브랜딩 계열, 이미지-일러스트레이션 계열, 뉴미디어-인터랙션 계열로 크게 나누어지며 각자의 세부적인 관심에 따라 보다 심도 있는 교육 및 실험적 주제접근이 이루어진다. 4학년은 학문적 관심과 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하나의 단일한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이의 개념, 내용, 형태가 융합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교육이 실질적인 진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디자인전략1, 2’, ‘캡스톤디자인스튜디오 1, 2’ 등의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기존의 시각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기초적인 조형능력을 보다 새로운 방법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단순한 실무능력 배양만이 아니라 이를 학문적인 체계 안에서 사고할 수 있는 종합적이고 능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동시에 새로운 시대정신에 대응해 조형능력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사고력, 매체제작능력, 리더십, 도전의식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후 문화와 산업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세부적인 조정을 거듭하여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할 것이다


학과연표
연도 내용 비고
1973 장식미술학과 신설
1974 정시화 교수 임용, 2007년까지 재직
1975 조형학부 신설
1976 김인철 교수 임용, 2013년까지 재직
1977 산업미술학과로 명칭 변경
1980 윤호섭 교수 임용, 2008년까지 재직
1983 산업미술학과가 공업디자인학과와 시각디자인학과로 분리
1985 유영우 교수 임용, 2012년까지 재직
1990 정시화 교수 조형대학 제5대 학장으로 취임
1992 백명진 교수 임용, 1994년까지 재직
1994 윤호섭 교수 조형대학 제7대 학장으로 취임
1995 전승규 교수 임용, 2010년 영상디자인학과로 전보
1998 김인철 교수 조형대학 제9대 학장으로 취임
2000 김양수 교수 임용
2001 이준희 교수 임용
2002 유영우 교수 조형대학 제11대 학장으로 취임
장혜원 비정년 전임교수 임용, 2005년까지 재직
2004 장뽈(Jean Georges Poulot) 교수 임용, 2007년까지 재직
2005 하준수 교수 임용, 2010년 영상디자인학과로 전보
정재욱 비정년 전임교수 임용, 2010년까지 재직
2006 성재혁 교수 임용
이재곤 비정년 전임교수 임용, 2010년까지 재직
2010 정지홍, 반영환, 조현신, 김민, 변추석 교수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으로부터 시각디자인학과로 전보
변추석 교수 조형대학 제15대 학장으로 취임
노지수(Christopher J. Ro) 교수 임용, 2014년까지 재직
정지홍 교수 퇴직
2011 정진열 교수 임용
2012 변추석 교수 조형대학 제16대 학장으로 연임
정연두 교수 임용
이지원 교수 임용
2013 최승준 교수 임용
박경근 교수 임용, 2014년까지 재직

외부칼럼 | 40년의 인연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조형대학과는 어떤 관계가 있으셨는지요? 

각별한 인연이죠. 저와 교수님들과의 인연이 그렇고요, 제가 운영해 온 디자인전문회사 ‘디자인파크’와 깊은 인연이 그러합니다. 하나 더한다면 80년 대 중반부터 8년 반 동안 조형대학에서 강의한 것 또한 소중한 인연이지요.

정말 여러 겹의 인연이네요.

교수님들과의 인연부터 말씀드리지요. 제가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인 5년제 국립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를 마치고, 현재 중앙대학교인 서라벌예술대학 3학년으로 편입했던 1970년에 정시화 교수님의 강의를 처음 들었습니다. 늘 시작 전에 강의실에 도착해 정확히 마감 시간까지, 때론 시간을 넘기며 열강하시는 모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졸업 후에 뵐 때도 “필드에서 열심히 뛰는 사람이 중요하다. 기운 내서 잘 버텨라”라고 늘 애정 어린 격려를 주셨습니다.

1970년이면 조형대학이 생기기도 전인데요. 

김인철 교수님과는 학창 시절부터 어찌어찌 알게 되어 40년 지기 친구가 되었습니다. 연배는 저보다 2년 위지만 스스럼없이 대해 주시지요. 제가 직장생활을 접고 ‘디자인파크’를 시작했을 때부터 10년 이상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셨지요. 디자인회사의 기본철학과 이념, 그리고 기획서 작성부터 전술 전략에 이르기까지 조언해주시며 기틀을 잡아 주셨죠. 당시 다른 디자인회사들의 큰 부러움을 샀죠. 어떻게 그런 환상적인 콤비를 이룰 수 있냐고. 교수님은 술자리에서도 한 수 위지요. 아무리 많이 해도 흐트러진 모습이 없었고, 술자리에서조차 항상 도움이 될 만한 스토리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근래에는 오랜 기간 ‘단’을 수련해서 ‘사범을 심사하는 사범’의 경지에 올랐고, ‘태극권’에도 심취하셨는데요, 제 생각에는 이게 모두 좋아하는 ‘주’님을 오래도록 모시고픈 작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대작하기 위해서 북한산 새벽 등반으로 심신을 연마한 지 올해로 29년째입니다.

건강을 위해서, 술을 위해, 정말 좋은 작전인 것 같습니다.  

윤호섭 교수님은 저에겐 큰 형님 같은 분이셨죠. 1976년 봄에 ‘대우그룹’ 디자인팀에 총책임자로, 나는 좋게 말하면 오른팔 역할의 보좌역으로 5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만능 스포츠맨에 배우 뺨치는 멋진 인상, 후리후리한 몸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몸에 밴 겸손은 누구라도 매력을 안 느낄 수 없었죠. 윤 교수님은 디자인부문 총책임자로서 확실하게 부서직원들을 믿어주었고, 외부로부터의 간섭이나 압력을 백퍼센트 차단해 주셨습니다. 그런 분과 직장생활을 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죠. 근래, ‘그린디자인’이라는 커다란 테마를 붙들고 매진하시는 모습을 보며 역시 그 분답다고 생각합니다.

세 분 모두 시각디자인과의 어른들로 이제는 정년퇴임을 하셨는데요, 현직에 계신 교수님들과도 교류가 있으셨죠? 

물론이죠. 우선, 테크노디자인대학원의 김민 교수님께는 많은 신세를 졌죠. 저희 회사와 산학협동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진행했고, 그때마다 대학원생들을 독려하며 애를 많이 쓰셨죠. 변추석 교수님은 중앙대 후배로 협회활동을 함께하며 가깝게 지냈죠. 변 교수가 대학으로 오기 전에는, 저의 회사가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LG그룹의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했으므로 더 친숙해졌지요. 이준희 교수는 1988년 제 강의를 들었는데 유학 후에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감개무량했습니다. 김양수 교수와는 부친이신 김영학 교수님으로부터 경기공전 시절 ‘제도학’ 을 배웠던 인연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김철수, 유영우, 전승규, 하준수, 성재혁, 정도성 교수 등 많은 분들과의 관계도 소중합니다.

많은 교수님들과의 사연이 끊임없네요.

세상사가 결국 사람 사이의 일입니다. 조형대학과 우리 회사와의 인연도 특별합니다. 많은 시각디자인학과 출신들이 입사하고 함께 일을 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1994년에 졸업한 ‘채영’씨는 현재 부사장이며 디자인총괄 디렉터로 21년째 근무 중인, 실질적으로 회사를 이끌어가는 주역입니다. 그의 부인 역시 ‘테크노디자인대학원’ 출신입니다.

8년이나 강의를 하셨던 80년대 중반의 말씀을 해 주시겠어요?  

중요한 얘기를 할 차례군요. 대우그룹에 근무했던 1978년부터 모교인 중앙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디자인파크’를 시작한 1984년부터 국민대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두 학교 모두 4학년 수업을 같은 내용으로 진행했습니다. 단번에 비교가 되었죠. 당시 우리나라 디자인 분야는 서울대와 홍익대, 소위 ‘관악파’와 ‘와우파’가 세력을 양분하고 있다고 얘기할 때였습니다. 다른 많은 대학들이 ‘디자인과’를 시작하는 단계였고, ‘서라벌예술대학’이 역사도 짧고 인원도 많지 않았는데 똘똘 뭉쳐 열심히들 하는 바람에 ‘다크호스’로 떠오른다는 얘기가 돌 때였지요.

디자인계의 ‘관악파’, ‘와우파’, 그리고 ‘다크호스’, 점점 재미있어지는데요. 

이때 중앙대학교에서는 디자인학부를 포함한 ‘예술대학’이 경기도 안성으로 가게 되면서 분위기가 다소 바뀌는 느낌이었고, 반면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이 무서운 속도와 힘으로 치고 올라온다는 말이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었습니다. 그러던 1984년에 제가 두 학교에서 동시에 수업을 진행했던 것입니다.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면서 저로서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국민대 조형대학이 부럽기도 했죠. ‘다크호스’가 바뀐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고 할까요. 시각디자인을 포함한 조형대학 전체가 디자인교육 방법과 실행 면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게 된거죠. 주변으로부터 정시화, 김인철, 윤호섭, 세 분의 힘이 시너지효과를 낸 것이라는 얘기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우리 대학에 대한 최근의 평판은 어떤지 들으신 적이 있나요? 

솔직히 최근 정황은 잘 모릅니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 옛날의 잣대로 지금을 잴 수도 없을 뿐더러 의미 또한 다르니까요. ‘조형대학’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지만, 국내의 수많은 대학의 디자인 전공자들이 모두 열심히 합니다. 2002년 기준으로 정규디자인전공 졸업생이 매년 3만 6천 명이 배출된다지요? 또 무서운 거인으로 등장하는 바로 옆나라 중국은 매년 수십만 명의 디자이너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판이 달라졌다고 봐야죠.

경쟁은 치열해지는 가운데 저희는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데요, 정리의 말씀을 겸해서 저희 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도 특별한 성장 과정을 거치며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습니다. 디자인분야도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놀랄 만큼 발전해 왔지요. 이젠 세계를 상대로 기준을 잡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낮은 수준에서 보통 수준으로, 보통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지만, 높은 수준에서 한 뼘 더 높은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지요. 우리의 디자인분야가 바로 이런 지점에 서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복잡해지고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덴티티디자인’을 40년 넘게 해오면서 제가 느끼는 것도 똑같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이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나의 경쟁자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나? 나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그것을 위해 어떤 일을 어떤 순서로 해야하나? 이상의 질문들에서 ‘나’를 ‘조형대학’으로 바꾸면 그 안에 모든 답이 있다고 봅니다.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희들과의 소중한 인연도 계속 이어주시길 빕니다.   

인연에 관해 마지막으로 하나 더할 것이 있는데요. 아들 녀석이 ‘조형대학 시각디자인’ 출신(’12년 졸)으로, 지금은 영상디자인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부형이기도 했죠.

김 현

㈜디자인파크 대표



동문 글 |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꾼다

아침마다 등교시간에 맞춰 숨을 헐떡이며 달리던 모교의 언덕길은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 때 등하교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늘 다짐했던 말이 있었다. ‘하면 된다, 하면 된다, 하면 된다’ 이 말을 중얼거리며 매일매일 학교 언덕을 오르내렸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거의 매일 수업이 끝난 후 인사동에서 광화문으로, 충무로로 걸어 다니며 화랑에 그림을 보러 다녔다. 학교에서 내준 과제를 밤새워 해 놓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 아쉬워하기도 하면서도 틈날 때마다 학교 밖으로 전시를 보러 다니던 내게 정시화 교수님께서 학교에 좀 붙어 있으라는 주의를 하실 정도였다. 2학년 때 충무로에서 본 동판(메조틴트)화가 김구림 선생의 전시를 보고, 판화를 배우고자 10여 년을 선생님께 매달렸다. 지금까지 나는 시각디자인과 함께 회화 작업도 병행해 오고 있다. 오늘날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가 있기까지 정시화 교수님이 틀을 세우시고, 윤호섭, 김인철 교수님이 살을 붙이셨고, 유영우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이 디자인대학으로서의 명성을 일으키셨다. 생각하기에 그 분들의 노력에 존경을 바친다. 사람들은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고들 말한다. 공감한다. 이제는 디자인이 많이 보편화되어 디자인에 대한 인식도 폭넓고 그에 대한 안목도 깊다. 최근 젊은 디자이너들의 다양성과 전문성이 시선을 끈다. 지금까지 시각예술의 주도 세력이던 회화 영역에서도 점점 디자이너들의 출현을 보게 되어 나름 반갑다. 그리고 작가주의 디자이너의 출현으로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변화하는 움직임을 볼 수 있어 반갑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도 지금까지 쌓아올린 명성을 지키면서 또 다른 발전을 할 것이라 기대해 본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꾼다. 나의 뿌리는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다.

김태철 장식미술학과 시각디자인전공, 75학번
현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시각디자인과 교수
전 한국예총 청주지부장
전 한국미술협회 충청북도 지회장, 청주시 지부장
전 한국북아트협회 회장
전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부회장


*금속공예학과

예술과 디자인 경계에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다

금속공예학과는 1971년 생활미술학과를 모태로 금속공예 교육을 시작하였으며, 1984년 공예미술학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82년 대학원 석사과정에 금속공예전공이 신설되고 1994년 디자인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주얼리디자인전공이, 1999년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 금속·주얼리디자인전공이 각각 신설되었다. 2002년 공예미술학과에서 금속공예학과와 도자공예학과가 분리 독립되어 더욱 전문적이며 집중적인 전공 교육이 가능하게 되었다. 폭넓은 조형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부과정과 함께 전문적인 공예작가 및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3개 대학원, 오프캠퍼스인 주얼리디자인센타가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는 종합적인 교육환경을 구축하고 있다.금속공예학과의 교육은 한국 현대공예계의 1세대 지도자인 김승희 교수가 1974년부터 강의를 해오다 1976년 전임교수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1) 1981년 조각가인 금누리 교수가 부임해 조형 교육을 담당함으로써 교육의 폭이 한층 넓어졌으며, 이후 미국의 잭 다 실바Jack da Silva, 그 뒤를 이은 영국의 스티븐 보트Stephen Bort 등 두 외국인 교수가 초빙되어 6년 동안 재직함으로써, 학과는 국제적이며 선진적인 공예교육을 할 수 있었다. 1990년에는 전용일 교수가 부임하여 전공교육을 심화하는 한편, 2000년 공예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조형대학 학장에 임명되어 대학 행정을 주도했다. 2000년에는 정용진 교수가 부임해 디지털 기반의 환경에 적응하는 산업적 측면의 공예교육을 강화했고, 2003년에 부임한 이동춘 교수는 금속공예의 핵심 분야인 장신구 교육을 전문 화함으로써, 이후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예술장신구 분야의 많은 작가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2007년에 부임한 강연미 교수는 예술장신구 교육과 함께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과 디자인대학원에서 주얼리디자인교육을 전문화하고, 2012년에 부임한 현지연교수와 함께 공예, 디자인, 산업을 잇는 융합적 교육과 연구 용역 등을 수행해 왔다. 조형대학 금속공예학과는 지난 40년 동안 공예적 가치와 정통성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인접 디자인분야, 산업 등과의 교류를 통해 학문적 외연과 활용범위를 넓혀 왔다. 전임교수들 외에도, 한국 금속공예계의 주요 작가인 유리지, 우진순, 조남우, 이정규, 김기라, 김성수, 정연식, 박정관 등이 주요 강사, 겸임교수, 강의전담교수로 학과의 교육에 크게 공헌했다. 금속공예학과는 일찍부터 해외 대학과의 교류를 활발히 진행했다. 1988년 영국 쉐필드할렘대학교Sheffield Hallam University와의 교환학생 교류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캐나다 노바스코샤미술디자인대학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1992), 핀란드 헬싱키미술디자인대학교University of Art & Design Helsinki(2000), 일본 히코미즈노대학Hiko Mizuno College of Jewelry(2001), 호주 모나쉬대학교Monash University(2001), 독일 포르츠하임대학교Pforzheim University(2007), 영국 에든버러대학교Edinburgh University(2009), 태국 실파콘대학교Silpakorn University(2009), 미국 캔사스대학교 Kansas University(2010)와 위스콘신대학교The University of Wisconsin(2011) 등 10여 개의 북미와 유럽 등 주요 미술대학들과 활발한 교환학생제도를 시행해, 그 동안 약 70여 명의 방문학생을 포함 180여 명의 학생교류가 있었다. 2013년에 있었던 금속공예분야의 세계적인 잡지인 미국 ‘메탈스미스Metalsmith’지의 편집장 수잔 램작Suzanne Ramljak의 초청 특강과 같은 국내외 작가, 디자이너, 이론가의 특강이 그동안 꾸준하게 개최되었으며, 2007년의 노바스 코시아미술디자인대학과의 국제교류 10주년기념 교수작품전을 비롯하여 태국, 중국, 일본, 미국 등과의 교류전시와 워크숍 등을 진행해왔다. 금속공예학과의 교육은 정규 수업뿐 아니라 다양한 행사들을 통해 이루어져왔다. 매년 가장 중요하게 개최되는 졸업전시회는 1999년부터 미술계의 중심인 인사동에서 개최하면서 국내의 많은 전공학생들과 전공자들의 관심을 모아 왔다. 전시 개막일에는 최우수작품을 선정하여 학과에서 제작한 메달과 함께 시상해 왔는데, 첫 수상자 윤덕노(’96)가 현재 캔사스주립대학교Kansas State University 교수로 재직하는 등, 매회의 수상자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활동하고 있다. 2000년부터 매년 3월 교외에서 개최되는 ‘금속공예포럼’은 재학생들이 기획하는 학술행사로, 매해 선택된 공예계의 이슈를 주제로 한 세미나, 초청 특강, 친목행사 등으로 진행해왔다. 2000년부터 시작된 ‘장신구거리Jewelry Street’는 학교 축제기간 동안 전공생들이 스스로 만든 작품을 판매하는, 학생들과 소비자들이 직접 만나는 공예 시장을 경험하는 체험의 장이다. 또한 1993년부터 학생들의 자발적인 기획과 참여로 시작된 ‘장신구쇼Jewelry Show’는 실험적인 장신구를 발표하는 무대로, 장신구 제작은 물론 무대, 의상, 모델, 안무, 음악, 영상 등이 학생들의 종합적인 기획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다양한 예술적 체험을 제공하는 장으로 삼아왔다. 방대한 행사 규모로 인해, 2004년부터는 조형전 행사의 일환으로 3년마다 개최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세 번째 기획되고 있는 동문활동인 ‘맞짱’은 기존 동문회의 형식에서 탈피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문 선후배들의 자유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비즈니스파티 형식의 행사로,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동문들 간의 정보교환과 함께, 그 해 졸업예정자들이 선배들을 만나고 사회의 일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만남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금속공예학과의 교육의 결과는 졸업생들의 활동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결실을 맺어왔다. 특별히 개인 공방을 기반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해온 많은 수의 공예가들이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의 금속공예학과와 도자공예학과 출신이라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금속공예학과 동문들의 전시단체인 ‘조형금속공예회’는 1979년 출판문화회관에서 ‘현대금속공예회’라는 명칭으로 창립전을 가져, 이후 주요 대학들의 전시단체 창단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까지 이 단체는 금속공예계의 현업에 종사하는 전업작가들을 가장 많이 보유한 단체로서 교육과 현장을 이어주고 있으며, 최근 들어 이들의 활동 범위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로도 확산되고 있다.동문들의 활동 중에는 창업을 통해 공예적 가치와 디자인적 방법론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사례들도 많다. 전문디자인브랜드로서 문구용품 디자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밀리미터밀리그램MMMG’은 배수열(’92) 등 4명의 졸업동기생이 1999년 창업한 디자인브랜드 회사이다. 뒤를 이어 디자인 문구와 소품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김남현(’95)등 3명의 ‘아이코닉ICONIC’ 등이 대표적이다. 위형우(’01), 박준범(’02), 한성재(’06)로 이루어진 ‘BAO’는 가구 프로젝트그룹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오고 있다. 특히 한성재의 가구와 결합한 스피커는 2013년 프랑 스 파리 Maison & Object에 출품 큰 찬사를 받으며, 국제적인 유명 페어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미국 얼햄대학Earlham College 교수로 재직 중인 이승열(’96)은 2003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독창적인 안경시리즈로 대상을 수상했으며, 후배인 황순찬(’98)은 티타늄을 소재로 한 수제 안경으로 2009년, 2013년 2회에 걸쳐 세계 3대 디자인공모전인 ‘레드닷Red Dot’ 수상자로 선정되어 공예적인 디자인의 창의성을 국제적으로 알렸다. 금속공예학과의 우수한 작품들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 행사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는데, 2006년 독일에서 열리는 신진공예작가들의 국제 전시인 ‘탈렌테Talente’에 학부생들과 대학원생 5명이 선정되었으며, 이후 매년 작품들이 선정되어 소개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국제적인 화랑인 갤러리 마르쩨Galerie Marzee가 주관하는 국제졸업작품전에도 매년 초대되어 세계 유명 장신구대학 졸업생들과 함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10년 벨기에 갤러리 카롤리네 반 획Gallery Caroline Van Hoek의 초대로 학부 및 대학원생들의 작품을 유럽에 소개하여 높은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김희주(’03)는 이탈리아 국제장신구공모전 ‘Preziosa young 2011’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독일 바이에른주 미술공예협회인 ‘BKVBayerischer Kunstgewerbe-Verein e.V.’ 주최 젊은 공예작가들을 위한 국제공모전에서도 매년 입상의 성과를 이루고 있다. 국제은기공모전으로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갖고 있는 독일의 ‘국제실버트리엔날레Silbertriennale International’에서 2011년 김동현(’97), 2014년 한상덕(’99)이 연이어 2등상의 영광을 안았다. 2013년 박정혜(‘98)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금상을, 2014년 신혜림(’90)은 유리지공예관에서 주관하고 고려아연주식회사에서 후원하는 ‘올해의 금속공예가상’을 수상하였다. 장신구작가 권슬기(’02)는 미국의 ‘AJFAmerican Jewelry Forum’가 세계의 장신구작가들을 대상으로 1명의 작가를 선정하는 ‘2014 AJF Award’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밖에도 매년 많은 동문들이 국가 기관의 공모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어 미국 Sofa, 영국 Collect 등의 공예계 유명 페어 및 해외 전시회에 참여해 왔다.

금속공예학과의 교육

공예는 인간의 삶과 관련되는 다양한 사물을 디자인하고 직접 제작하는 분야이다. 작가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예술적 매체가 되기도 하며, 문화적인 상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디자인의 한 분야가 되기도 한다. 공예는 오늘날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에 둘러싸인 생활환경 속에 인간의 개성과 심미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재료인 금속을 다루는 금속공예는 귀금속과 보석부터 현대 과학의 신소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를 창작의 매개체로 다루며, 이를 통해 예술품, 생활공예품, 장신구, 각종 제품디자인의 원형 등을 제작한다. 조형대학 금속공예학과에서는 디자인 능력, 재료에 대한 지식, 제작 기술의 전문성을 갖추고 우수한 공예품을 생산하는 공예 작가와 디자이너를 양성해왔다. 금속공예학과의 교육은 크게 5개 영역으로 나뉜다. ‘기초조형’, ‘금속공예’, ‘장신구’, ‘산업제품’, ‘공예/미술이론’ 등으로, 전 학년에 걸쳐 기초와 숙련, 적응과 응용 그리고 창작 등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기초조형’ 영역은 1, 2학년을 대상으로 하며, 드로잉과 페인팅 등의 평면조형과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입체조형과 관련된 기본적인 조형요소와 원리를 익히고, 창작성과 표현능력을 기른다. 이를 통해 아이디어의 발상과 전개의 독창성을 배우고, 도면작성 등을 통해 공예품과 디자인의 제시방법과 전달능력을 익히게 된다. ‘금속공예’ 영역은 1학년 기초금속공예를 시작으로 ‘금속공예’, ‘재료와 기 법’, ‘공예조형’ 등의 수업으로 구성되며, 귀금속을 포함한 금속재료의 전반적인 성질을 배우고 이를 다루는 다양한 가공기술과 표현기법을 연구하여, 실용성과 심미성 등을 추구하는 다양한 공예품을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비금속 재료의 도입과 응용, 새로운 품목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여 창의적인 공예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한다. ‘장신구’ 영역에서는 2학년부터 시작되는 장신구 제작을 통해 장신구 제작에 필요한 기초 기법들을 익히며, 아이디어 전개와 디자인방법론을 더하여 장신구를 직접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표현과 심미성을 강조하는 예술장신구, 귀금속과 보석을 사용하는 파인 주얼리, 동시대 의 취향을 반영하는 패션 주얼리 등 다양한 종류의 장신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할 수 있도록 한다. ‘산업금속’ 영역은 디지털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3D 및 CAD/CAM 프로그램의 운용방법을 익히고 이를 작품제작에 적용함으로써 디지털상의 조형감각과 실물구현능력을 키운다. 대량생산을 위한 방법론과 산업현장에서의 응용가능성을 배우고, 기업과 연계된 산학프로젝트 등을 통해 실무경험을 쌓게 한다. ‘공예와 미술이론’ 영역에서는 동시대 공예 활동을 연구하고 공예의 사회적, 문화적 특성을 이해한다. 또한 동서양 미술사를 통한 공예의 역사적 역할과 위상을 파악하고, 공예를 바탕으로 한 문화 예술 전반 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공예의 사회적 확산과 적용가능성을 모색한다.



나와 금속공예 그리고 국민대학
언제나 나는 KMU소식지를 둘러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국민 New & Hot에 ‘최우수 A등급 국민대’가 떴다. 야~ 하는 함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도 국민대 구성원들이 정말 고생 많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은 나를 금속공예가로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터전이자 견인차였다. 기법, 공구, 교육프로그램, 국제교류, 공예화랑, 일반인교육 JDC까지 금속공예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금속공예전문가가 되었다고 본다. 내가 금속공예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미국으로 유학가서부터이다. 내가 다니던 서울대학 응용미술학과 시절에는 모든 디자인 분야를 종합적으로 배우던 때여서 특별히 금속공예 전문 수업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부분 수업시간에 아이디어를 전개한 도면을 들고 청계천 아저씨들에게 부탁하여 주문제작하는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숙제를 받으면 가장 고민스러웠다. 어디 가서 어떻게 아이디어를 찾을 줄 몰라 책방을 뒤지며 그림을 찾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명동의 한 헌 책방에서 미국 잡지 ‘크래프트 호라이즌Craft Horizen’을 보았다. 이 잡지에 실린 몇 컷의 금속 작품들을 보고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되었다. 그 작품들이 알마 아이커만Alma Eikerman과 헬렌 셔크Helen Shirk의 금속 작품인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 놀랐다. 결국 마음속에 간직한 꿈을 향하여 자신의 전공 분야가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조차 모른 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지하고 무모한 행동이었다. 내가 4년간의 유학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아올 때쯤(1974년) 지금은 작고한 유리지 선배님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국민대학 부수언 교수님을 찾아뵈라는 내용이었다. 유 선배님은 나보다 1년 위였는데 서울대에서 금속공예 전공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민대학교에서 강사를 하고 있었다. 유 선배님은 유학을 결심하고 당신의 강의 자리를 후배인 나에게 권하셨던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미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같은 날 유 선배님은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그 후 유 선배님은 유학에서 돌아와 모교 교수가 되어 나와 금속공예의 길을 함께 걸으며 동력자로서 서로 존중하는 좋은 친구관계였다. 부수언 교수님이 금속공예실이라고 안내한 곳은 국민대학 본관 동쪽 언덕 위의 ‘콘센트’ 가건물이었다. 건물은 골진 금속철판을 반원으로 말아서 만든 임시 건물인데 약 30평 정도 되고 가운데를 반으로 나누어서 목공예실, 금속공예실로 명패가 붙어 있었다. 나중에 이 자리에 학생회관이 지어졌고, 지금은 법학관으로 명칭된 곳인데 남쪽 엘리베이터 자리쯤에 금속공예실이 있었다. 금속공예실 안에 장비를 넣어두는 유리로 막은 칸막이 속에는 나무망치와 줄 등이 있고, 공기압력을 넣어 석유를 연소시키는 토치가 하나 있었다. 청계천에서 대부분 이 토치로 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지 전혀 가늠이 안 되었지만 수업은 진행되었다. 솔직히 지금도 나는 당시 내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콘센트’ 가건물은 나를 금속공예가의 길로 가도록 만든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금속작업실이 되었다. 그해 겨울, 1975년 1월 나는 첫 번째 전시회를 준비하는 작업실로 이 ‘콘센트’ 가건물에 매일 출근했다. 전시회는 주로 미국 수업과정에 만든 판금그릇과 수저, 작은 오브제 등이었는데 작품들을 손질하고 마무리작업 하는 데 혼신했다. 한겨울 정릉 골짜기 바람은 시리고 차갑고 무서웠다. 그래도 10여 평 남짓한 ‘콘센트’ 가건물 안 투박한 무쇠 난로 속에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서 나의 몸과 마음은 온전히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당시 학교 관계자들에게는 금속작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기이하게 보였을 것이다. 가냘픈 도시형 여자가 매일 대장간 작업 같은 험한 일을 하고 있었으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엿보기까지 했다. 특히 수위아저씨는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어떤 때는 미리 장작불을 지펴놓았다. 고마웠던 그 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장작 불꽃이 용접용 불꽃이 되고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가 만들어지는 신호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이듬해 1976년 나는 운이 좋게 국민대학 전임교수로 발령받았다. 당시 서임수 학장님(지금으로 치면 총장님)과의 면접도 없었고, 서류심사도 없이 자필로 문방구에서 사온 간단한 이력서로 전임 발령을 받았다. 요즘 전임이 되기 위한 갖가지 심사과정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쉽게 전임이 되었는가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이다. 전임이 된 이후 가장 시급한 일이 실기실을 확보하고 기계와 공구를 갖추는 일이었다. 금속공예 작업을 위한 기초설비가 전혀 없는 환경에서 기존 다른 대학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상황은 더욱 아니었다. 당시 대학에서는 대부분 도면 작업을 중심으로 청계천에서 제작하던 관행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미국에서 배워온 기법 그리고 그에 따른 시설이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설과 공구를 갖춰야 했다. 시장조사를 하고 금액을 맞추어 보니 약 400여 만 원이 필요했다. 당시 작은 집 한 채 가격이었으니 너무나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 예산안을 올리면서 학과장이셨던 도예가 황종례 교수님이 도장을 찍어 주실 것인 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때 무사히 통과된 것이 너무나 감사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새로운 전공 개설을 하면서 예산확보가 있었던 것 같다. 금속공예 실기실은 본관과 뚝 떨어져 있고 ‘콘센트’ 가건물이여서 작업환경은 오히려 좋았다. 야외 작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학생들과 함께 시간 구애 없이 늦게까지 작업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젊음의 치기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국민대학 금속공예과는 좋은 작품을 하는 학과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작업에 열정을 바친 학생들은 스스로 ‘현대금속공예회’를 발족하여 1979년 3월 출판문화회관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때 금속공예 전문 단체가 만들어지고 전시회까지 연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이들이 학부 4학년 학생들(오명철, 민경은, 유동희, 권순남, 이미자, 이상구)이었기에 오로지 순수한 젊음으로 뭉쳐 있었고 금속공예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전시회를 개최한 후 홍익대학 졸업생들로부터 ‘현대금속공예’라는 명칭에 대한 시비가 걸려왔다. 국민대학 학생들이 현대를 대표하는 명칭을 쓰는 게 맞지 않다는 시비였다. 알고 보니 홍익대 출신들이 모여 ‘현대금속공예회’라는 그룹전 개최를 준비하던 중 국민대생들이 같은 명칭의 전시회를 열어 당황했던 것이다. 전시회 명칭 문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생들 스스로가 준비한 일이었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와 도자공예 김익영 교수가 학생들과 몇 차례 만나 명칭을 국민대 이미지가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권했지만 참가 학생들의 뜻을 굽힐 수는 없었다. 졸업생들은 1985년에 이르러 제 5회 ‘조형금속공예회’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2014년까지 27회에 걸친 국민대학교 동문 금속공예회를 개최하고 있다. 금속공예회 명칭 사건 이후 홍익대 출신들은 ‘홍익금속공예회’를 만들고 ‘현대금속공예회’라는 명칭은 아직까지 별로 쓰여지지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80년대는 민주화 열기로 학생운동이 극렬하여 대학 수업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했다. 수업 내용의 보충이 절실하다고 판단한 나는 미국에서 훈련받은 초빙강사 채용공고를 낼 것을 교무처에 요구했다. 1981년 미국의 유수한 금속공예 전공 대학기관에 초빙강사 채용공고를 하여, 미국인 잭 다 실바Jack Da Silva 교수와 영국인 스티븐 보트Stephen Bort 교수가 학교 교무처의 도움으로 국민대학에서 1987년까지 함께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리고 나의 해외 금속공예 작가들과 교류에 대한 관심은 1986년 ‘한미 금속공예 워크샵’을 개최함으로써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 관심 있는 공예가들이 이 워크샵에 참가신청 을 하여 성공적인 워크샵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당시에 이와 같은 국제적 워크샵은 이례적이고 신선한 행사였기에 워커힐 미술관과 월간디자인사가 적극적인 후원과 홍보를 맡아주었다는 것이다. 1990년 금속공예 전임 전용일 교수를 학교에서 뽑아주어 나는 크게 힘을 얻은 기분이었다. 1976년부터 15년 동안 금누리 교수가 함께 기초조형 분야를 탄탄히 해주었고, 외국인 강사 초빙 등으로 금속공예 수업 내용을 보충할 수는 있었으나 금속공예를 전공한 후진 전임교수가 없어 방향설정에 관한 것이나 행정지원의 책임 등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아 역부족을 느끼던 때도 있었다. 그해 여름 전용일 교수, 대학원생들, 강사들과 함께 일본 동경에 금속공예 분야를 방문하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이긴 하지만 이 여행에서 나는 한국 금속공예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깨우침을 받았다. 여행 중 우에노에 있는 일본 국립박물관을 관람하게 되었는데 전시장을 다 돌고 나오면서 무엇인지 허전하고 보고 싶은 것을 못 본 것 같은 기분이여서 안내원에게 물었다. “여기 전시장 말고 또 다른 전시장 있나요?” 우리나라 중앙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금관이나 금 장신구가 거의 없는 동경 박물관이 너무 이상하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동경 박물관 관람은 나에게 한국 금속공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주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역사와 기술, 조형성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그것을 교육과 연결시키기 위하여 ‘금속공예사’ 수업을 개설하고 강의하기 시작했다. 이 수업은 나를 공부시키기 위한 수업이었다고 본다. 한국 금속공예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분별하게 서양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강의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나는 우리나라 금속공예가 매우 특별하고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대표적인 키워드로 금관, 금장신구, 불구, 범종, 금속활자, 금속수저, 유기그릇, 가락지 등을 찾아내고 학생들이 이러한 것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학생들의 관심이 이러한 전통적인 것에 미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여 아쉬운 점이 있었다. 다른 분야에 비해 금속공예를 연구하는 미술사학자들도 적으며 전문 서적도 별로 없고 전시기획자도 없어 열악한 환경이기에 학생들이 수업 한번 듣고 관심 갖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분야의 발전을 위하여 금속공예학과가 중심이 되어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지금까지 관심을 갖고 연구한 내용을 보면 ‘한국은 금속공예의 나라’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결론내려질 것이다. 지나간 역사이긴 하지만 한국금속공예의 특징과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게 함으로써 관심과 초점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속공예 전공자들의 활동역량에 따라 앞으로 무궁한 발전이 있으리라 믿는다. 최근 국민대학교 금속공예 분야에서는 이러한 나의 기대에 부응하는 기쁜 소식들이 자주 전해온다. 중요한 국제 공모전에서 상을 휩쓸고 다니는 국민대 출신들의 모습에서 희망찬 미래가 보이는 것이다.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창작활동으로 세계로 나가고 있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40년 전 무쇠 난로 속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꽃같이, 국민대 금속공예인들이 힘을 합쳐 열정을 다하면 ‘한국은 금속공예의 나라다’ 라는 나의 주장이 오늘의 이야기가 되고 또 내일 의 이야기로 뻗어나갈 것이다.
김승희
금속공예학과 명예교수


동문 글 | 출발선

얼마 전 2015년도 조형대학 수시입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자신과 학과의 이름이 적힌 카드를 하나씩 목에 걸고 진지하게 수업을 듣던 20여 명의 학생들. 이들과 세 시간을 함께 하며 나는 16년 전 어느 깜깜한 새벽, 지금은 복합문화공간이 된 서울역 개찰구를 빠져나오던 한 신입생을 기억했다. 아는 이 하나 없이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두렵지만은 않았던 것은, 꿈에 그리던 대학에서 설레는 20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였다. 처음으로 온전히 가져보는 혼자만의 자유가 오히려 버거워 무엇 하나 자연스럽지 않았다. 가족들이 없는 식사시간, 같이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던 단짝 친구 없이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너무 외롭다고 여겨질 즈음, 서서히 대학 생활이 나에게 다가왔다. 조형체전—모두가 마치 체육인이라도 된 듯 준비했던 조형체전의 마지막 날 밤을 새우던 기억—아카시아 향이 많이도 나던 그 봄날은, 새벽까지 조형대학 건물의 지하부터 5층까지 누비며, 그야말로 모두와 함께 입학 후 처음으로 긴장을 풀고 즐겼던 날이었다.조형대학과의 인연은 대학원 시절까지 이어지며 나의 30대 초반까지 지배했다. 청년기 대부분을 차지한 이 대학은 또 하나의 고향이다. 내가 자란 시골집이 그렇듯이 이곳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 그 많은 추억들은 현재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더없이 중요한 터전이다. 작가로서 나는 금속뿐만 아니라 종이나 나무 등 다양한 재료를 다루어 작업을 하면서, 재학시절 수년간 다듬은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늘 실감한다. 장신구 제작과정의 특성상 대부분 의 작가들은 다분히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경향이 있지만, 반대로 그 활동 영역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도 확장된다. 근래에 국민대학교 출신의 동문들은 해외에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어 국제적인 공모전 등에서 그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국제 공모전의 참여가 예전보다 수월해진 까닭도 있겠지만, 동문들이 유독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학교의 커리큘럼이나 수업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새 현대 장신구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의 유명학교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고유의 색깔을 지니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학교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6년이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늘 내 이름의 옆자리를 차지한다. 어느덧 나에게도 띠 동갑의 나이차를 넘기는 후배들이 생겼다. 내가 그랬듯이, 후배들이 이제 나를 바라본다. 그들의 시선은 부담이 되고 책임감이 되어 다가오기도 하며, 긴장과 설렘을 부추기며 열정을 갖게 하거나 고통을 잊게 하기도 한다. 이것은 모두 나 스스로 다른 이들에게 뭔가를 전하는 작가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6년 전에 출발선에 섰던 작가의 길. 오늘도 나는 작업실에서 ‘내가 만든 것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문춘선 금속공예학과, 98학번
Save The Date, Gallery Vivekkevin, 호치민, 베트남, 2014
Schmuck, 뮌헨, 독일/장식과 환영,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2013
In Between, 이타미시립공예박물관, 이타미, 일본, 2012
Hanging Around: Mad Necklaces, Museum of Arts and Design, 뉴욕, 미국, 2011
국민대학교 대학원 졸업, 2009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 졸업, 2003


*도자공예학과


한국도자문화의 전통과 현대를 이어가다

나의 도자 조형교육
공방도예가 양성을 위한 여정
동문 글 | 공방 작가로, 교육자로


*의상디자인학과


패션문화의 미래가치를 디자인하다
미래의 패션산업을 리드
동문 글 | CREATIVE와 MARKETING



*공간디자인학과


공간디자인 분야를 선도하다
공간디자인학과 신설 이야기
동문 글 | 다시 듣고 싶은 수업, 다시 다니고 싶은 학교



*영상디자인학과


엔터테인먼트문화를 디자인하다
일곱 번째 학과, 영상디자인학과를 열다
동문 글 | 지금 무척 즐겁습니다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미래 운송수단의 방향을 디자인하다
국민대학교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의 설립


*AI디자인학과


미래 디자인 방향을 디자인하다
AI디자인학과 분야를 선도하다
AI디자인학과 신설 이야기


*건축학과


국제적, 창의적 건축인을 양성하다
건축대학, 조형대학에서 분리, 독립하다


연구50년

대학원

일반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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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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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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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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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머나이징모빌리티디자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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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50년

교수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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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대학 동아리 —‘Form’에서 ‘일기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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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야기

인생을 바꾼 한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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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 같은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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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이라는 또 다른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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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남매의 사심 가득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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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와 자료

에필로그 |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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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dh.aks.ac.kr/~hyunseung/wiki/index.php/%EC%B6%9C%EC%B2%98_%ED%91%9C%EA%B8%B0%EB%B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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