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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공예학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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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금속공예 전공을 졸업하고, 미국 보석학 연구소와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금속공예 M.F.A.를 취득하였다. 다수의 초대 개인전과 국내외 단체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3D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금속조형과 제품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작업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공예박물관 등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민대학교 금속공예 전공을 졸업하고, 미국 보석학 연구소와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금속공예 M.F.A.를 취득하였다. 다수의 초대 개인전과 국내외 단체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3D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금속조형과 제품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작업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공예박물관 등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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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5일 (토) 19:37 판

학과 소개



예술과 디자인 경계에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다.



백은재, 발, 브로치, 적동·백동·티타늄·포슬린, 2006

금속공예학과는 1971년 생활미술학과를 모태로 금속공예 교육을 시작하였으며, 1984년 공예미술학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82년 대학원 석사과정에 금속공예전공이 신설되고 1994년 디자인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주얼리디자인전공이, 1999년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 금속·주얼리디자인전공이 각각 신설되었다. 2002년 공예미술학과에서 금속공예학과와 도자공예학과가 분리 독립되어 더욱 전문적이며 집중적인 전공 교육이 가능하게 되었다. 폭넓은 조형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학부과정과 함께 전문적인 공예작가 및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3개 대학원, 오프캠퍼스인 주얼리디자인센타가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는 종합적인 교육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금속공예학과의 교육은 한국 현대공예계의 1세대 지도자인 김승희 교수가 1974년부터 강의를 해오다 1976년 전임교수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1) 1981년 조각가인 금누리 교수가 부임해 조형 교육을 담당함으로써 교육의 폭이 한층 넓어졌으며, 이후 미국의 잭 다 실바Jack da Silva, 그 뒤를 이은 영국의 스티븐 보트Stephen Bort 등 두 외국인 교수가 초빙되어 6년 동안 재직함으로써, 학과는 국제적이며 선진적인 공예교육을 할 수 있었다.

1990년에는 전용일 교수가 부임하여 전공교육을 심화하는 한편, 2000년 공예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조형대학 학장에 임명되어 대학 행정을 주도했다. 2000년에는 정용진 교수가 부임해 디지털 기반의 환경에 적응하는 산업적 측면의 공예교육을 강화했고, 2003년에 부임한 이동춘 교수는 금속공예의 핵심 분야인 장신구 교육을 전문화함으로써, 이후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예술장신구 분야의 많은 작가들을 배출하게 되었다. 2007년에 부임한 강연미 교수는 예술장신구 교육과 함께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과 디자인대학원에서 주얼리디자인교육을 전문화하였다. 2012년 현지연교수와 2018년 이승열교수가 부임하면서 공예, 디자인, 산업을 잇는 융합적 교육과 산학연구 용역 등을 수행하여 왔다.

지난 50년 동안 공예적 가치와 정통성에 충실해온 금속공예학과는 인접 디자인분야, 산업등과의 교류를 통해 학문적 외연과 활용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조형대학 금속공예학과는 지난 50년 동안 공예적 가치와 정통성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인접 디자인분야, 산업 등과의 교류를 통해 학문적 외연과 활용범위를 넓혀 왔다. 전임교수들 외에도, 한국 금속공예계의 주요 작가인 유리지, 우진순, 조남우, 이정규, 김기라, 김성수, 정연식, 박정관 등이 주요 강사, 겸임교수, 강의전담교수로 학과의 교육에 크게 공헌했다. 또한 국내외에서 인지도 높고 활발히 활동하며 예술성을 인정 받은 작가와 공예 디자인 분야의 산업적 현장 실무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강사로 영입하여 교육의 패러다임을 읽고, 동시대의 트렌드와 공예계의 리딩 역할을 할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학과 연혁

연도 내용 비고
1971 국민대학교 생활미술학과에서 공예교육 시작
1976 김승희 교수 임용, 2012년까지 재직
진영선 교수 임용, 1989년까지 재직
1978 일반대학원에 공예미술학과 석사과정 신설
1979 정진우 기사 임용, 2011년까지 재직
동문전시단체 현대금속공예회 창립전(현 조형금속공예회)
1981 금누리 교수 임용
1982 생활미술학과 금속공예전공 신설
미국의 잭 실바(Jack Silva) 교수 초빙, 83년까지 재직
1983 영국의 스티븐 보트(Stephen Bort) 교수 초빙, 88년까지 재직
1984 생활미술학과가 공예미술학과로 명칭을 변경
1990 전용일 교수 임용
1994 디자인대학원 석사과정 장신구디자인(현 주얼리디자인) 전공 신설
1998 디자인대학원 부설 주얼리디자인센터JDC를 강남교육원에 설립, 이후 제로원디자인센터로 옮겨 현재까지 운영
1999 김승희 교수 디자인대학원 제3대 원장으로 취임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석사과정 금속·주얼리디자인 전공 신설
일반대학원 석사과정 공예미술학과가 폐지되고 금속공예학과 신설
2000 전용일 교수 조형대학 제10대 학장 취임, 디자인대학원장 겸임
2000 정용진 교수 임용
2002 공예미술학과에서 금속공예학과 분리 독립
2003 이동춘 교수 임용
2007 강연미 교수 임용
2012 현지연 교수 임용
이기세 기사 임용
2013 박정관 교수(비정년트랙 강의전담교원) 임용
2014 정용진 교수 공예문화산업연구소 초대 소장 취임
2018 강연미 교수 조형대학 제19대 학장 취임, 디자인대학원장 겸임
2018 이승열 교수(비정년트랙 강의전담교원) 임용
2020 정용진 교수 조형대학 제20대 학장 취임
2020 강연미 교수 공예문화산업연구소 소장 취임
2021 현지연 교수 공예문화산업연구소 소장 취임
2023 이승열 교수 임용

학과 교수진 소개

정용진 교수

국민대학교 금속공예 전공을 졸업하고, 미국 보석학 연구소와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금속공예 M.F.A.를 취득하였다. 다수의 초대 개인전과 국내외 단체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며, 3D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금속조형과 제품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작업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공예박물관 등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동춘 교수

국민대학교 금속공예 전공 졸업 후 독일 포르츠하임 조형대학에서 디플롬을 취득하였다. 현대장신구의 조형적·개념적 확장을 실험하며 국내외에서 12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진행하였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뮌헨 Pinakothek Der Moderne 등 유수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강연미 교수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M.F.A를 취득하였다. 국내외 다수의 전시와 페어에 참여하며, 제1회 Art Jewelry Forum(AJF) 아티스트 어워드를 수상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필라델피아 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으며, 현대예술장신구의 내러티브 적용과 사진매체·칠보 융합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현지연 교수

서울대학교 공예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영국 센트럴잉글랜드대학교에서 장신구 및 은세공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동양적 사고를 바탕으로 판금과 칠보를 활용한 기물과 장신구 작품을 하며, 다양한 공공기관과 문화상품개발 및 디자인 협업을 하고 있다.


이승열 교수

국민대학교 금속공예전공을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제3회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대상, 미국 리오그란데 사울벨디자인 어워드 2등상을 두차례 수상하였다. 판금과 용접기법을 활용한 기물 작품연구를 하고 있으며, 주얼리, 리빙, CMF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산업체와 공공기관과 협업 프로젝트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김승희 명예교수



금누리 명예교수



전용일 명예교수




학과 교과활동



2학년 금속공예
링크=파일:금속공예학과_교육과정.png|829x829픽셀


공예는 인간의 삶과 관련되는 다양한 사물을 디자인하고 직접 제작하는 분야이다. 작가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예술적 매체가 되기도 하며, 문화적인 상품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디자인의 한 분야가 되기도 한다. 공예는 오늘날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에 둘러싸인 생활환경 속에 인간의 개성과 심미감을 부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재료인 금속을 다루는 금속공예는 귀금속과 보석부터 현대 과학의 신소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를 창작의 매개체로 다루며, 이를 통해 예술품, 생활공예품, 장신구, 각종 제품디자인의 원형 등을 제작한다. 조형대학 금속공예학과에서는 디자인 능력, 재료에 대한 지식, 제작 기술의 전문성을 갖추고 우수한 공예품을 생산하는 공예 작가와 디자이너를 양성해왔다. 금속공예학과의 교육은 크게 5개 영역으로 나뉜다. ‘기초조형’, ‘금속공예’, ‘장신구’, ‘산업제품’, ‘공예/미술이론’ 등으로, 전 학년에 걸쳐 기초와 숙련, 적응과 응용 그리고 창작 등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기초조형’ 영역은 1, 2학년을 대상으로 하며, 드로잉과 페인팅 등의 평면조형과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입체조형과 관련된 기본적인 조형요소와 원리를 익히고, 창작성과 표현능력을 기른다. 이를 통해 아이디어의 발상과 전개의 독창성을 배우고, 도면작성 등을 통해 공예품과 디자인의 제시방법과 전달능력을 익히게 된다. ‘금속공예’ 영역은 1학년 기초금속공예를 시작으로 ‘금속공예’, ‘재료와 기법’, ‘공예조형’ 등의 수업으로 구성되며, 귀금속을 포함한 금속재료의 전반적인 성질을 배우고 이를 다루는 다양한 가공기술과 표현기법을 연구하여, 실용성과 심미성 등을 추구하는 다양한 공예품을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비금속 재료의 도입과 응용, 새로운 품목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여 창의적인 공예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한다. ‘장신구’ 영역에서는 2학년부터 시작되는 장신구 제작을 통해 장신구 제작에 필요한 기초 기법들을 익히며, 아이디어 전개와 디자인방법론을 더하여 장신구를 직접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 표현과 심미성을 강조하는 예술장신구, 귀금속과 보석을 사용하는 파인 주얼리, 동시대의 취향을 반영하는 패션 주얼리 등 다양한 종류의 장신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할 수 있도록 한다. ‘산업금속’ 영역은 디지털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3D 및 CAD/CAM 프로그램의 운용방법을 익히고 이를 작품제작에 적용함으로써 디지털상의 조형감각과 실물구현능력을 키운다. 대량생산을 위한 방법론과 산업현장에서의 응용가능성을 배우고, 기업과 연계된 산학프로젝트 등을 통해 실무경험을 쌓게 한다. ‘공예와 미술이론’ 영역에서는 동시대 공예 활동을 연구하고 공예의 사회적, 문화적 특성을 이해한다. 또한 동서양 미술사를 통한 공예의 역사적 역할과 위상을 파악하고, 공예를 바탕으로 한 문화 예술 전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공예의 사회적 확산과 적용가능성을 모색한다.

국내전시

졸업전시

2024년도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 졸업전시의 제목은 [다:다름]입니다.

[다:다름]은 어떤 수준에 도달함을 의미하는 ‘다다름’과,

모든 것이 같지 않음을 의미하는 ‘다 다름’을

함께 연상할 수 있는 제목으로, 우리가 금속공예학과에서 배우고 익히는 4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30인의 졸업생들이

‘각자의 개성을 지닌 공예가/디자이너’로 성장하여

사회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대량생산되는 공산품의 제작 과정과는 차별화된

공예 작업을 통해, 저희는 삶의 공간을 개성 있게 만들고

사용자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는 사물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으며, 제작자의 개성과 창의성, 알맞은 기능성과

심미성, 재료의 특성과 제작 과정 등을 조율하여

사물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과정을 익혔습니다.

이러한 배움을 통해 만들어진 예비 졸업생 30명의 결과물에는

각자의 창의성과 감성, 제작 능력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짝짝作’은 삶을 아름답게 하는 사물을 만들기 위해 그동안 배우고 고민했던 시간들에 박수를 보내는 의미입니다.

저희의 결실이 담긴 졸업전시를 축하하고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며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2023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금속공예학과 졸업전시회 [짝짝作] 도록’中

10월 11일 오픈식은 전시 소개 후 전시를 빛낸 졸업생 한명 한명의 간단한 소개와 김승희 교수님의 축사가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KCDF갤러리 2층에서 10월 11일부터 10월 16일동안 매일 7시까지 진행합니다.

이번 졸업전시 작품들은 금속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작품의 종류와 개수가 많고 다양하며 볼거리가 많은 전시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전시를 놓치지 않고 꼭 관람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셨던 4학년 선배님들께 그동안 정말 고생하셨고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과제전

2025년 6월 23일부터 6월 26일까지 4일간 국민대학교 조형관 조형갤러리에서 금속공예학과 3학년 학생들의 과제전이 열렸다. 본 전시는 금속공예학과 3학년 실기 수업의 결과물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 ‘공예조형’은 개인의 기억과 서사를 바탕으로 한 키친웨어, 테이블웨어, 데스크테리어 작품을, ‘주얼리 브랜딩’은 공예성과 상업성을 결합한 디자인 결과물을 선보입니다. 기능성과 감성, 시장성과 창의성을 아우르는 시도를 통해 동시대 금속공예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국제전시

2025

The 39th Marzee International Graduate Show

갤러리 마쩨(Galerie Marzee)는 1979년 개관한 국제적으로 그 지명도가 높은 명실상부 세계 최대의 현대장신구 전문 갤러리이다. 매년 8월부터 10월까지 열리는 마쩨 국제졸업전시회는 갤러리의 중요 일정으로서 새로운 세대의 작품들을 널리 알리고 대중들과의 소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86년 네덜란드 주요 대학으로 구성된 소규모의 전시로 시작되어 1995년 이후 국제적인 규모로 확대하여 현재 전 세계 유명 미술대학, 젊은 작가의 선정된 작품들을 매년 전시하고 있으며, 우수작품들을 선정하여 Marzee Graduate Prize를 수여하고 있다. 국제졸업작품전을 통해 전 세계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창작 동기를 부여하고, 현대장신구에 대한 도전적인 아이디어와 흥미로운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음을 자부하고 있다.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는 2007년부터 매년 졸업생 약 5명 내외가 초대되어 출품해왔다. 2025년에는 최원영, 한정민을 포함한 학부, 대학원 졸업생 9명이 초대되었다. 2021 Marzee Graduate Prize 수상자 최혜영(학부’04/대학원’17), 2022 유아미(학부’11/대학원’17), 2023 임제운(대학원’20), 2024 이형찬(대학원’20)에 이어 올해도 세계 각 대학의 수상자 5명과 함께 한정민, 최원영 2명이 Marzee Graduate Prize를 수상했다.

이로써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의 국제적인 위상과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학과 비교과 활동

주얼리스트리트



장신구거리

수상

국제교류



Marzee Graduate Show 2014 참가, 갤러리 마르쩨, 네덜란드

금속공예학과는 일찍부터 해외 대학과의 교류를 활발히 진행했다. 1988년 영국 쉐필드할렘대학교Sheffield Hallam University와의 교환학생 교류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캐나다 노바스코샤미술디자인대학Nova Scotia College of Art and Design(1992), 핀란드 헬싱키미술디자인대학교University of Art & Design Helsinki(2000), 일본 히코미즈노대학Hiko Mizuno College of Jewelry(2001), 호주 모나쉬대학교Monash University(2001), 독일 포르츠하임대학교Pforzheim University(2007), 영국 에든버러대학교Edinburgh University(2009), 태국 실파콘대학교 Silpakorn University(2009), 미국 캔사스대학교 Kansas University(2010)와 위스콘신대학교The University of Wisconsin(2011) 등 10여 개의 북미와 유럽 등 주요 미술대학들과 활발한 교환학생제도를 시행해, 그 동안 약 70여 명의 방문학생을 포함 180여 명의 학생교류가 있었다. 2013년에 있었던 금속공예분야의 세계적인 잡지인 미국 ‘메탈스미스Metalsmith’지의 편집장 수잔 램작Suzanne Ramljak의 초청 특강과 같은 국내외 작가, 디자이너, 이론가의 특강이 그동안 꾸준하게 개최되었으며, 2007년의 노바스 코시아미술디자인대학과의 국제교류 10주년기념 교수작품전을 비롯하여 태국, 중국, 일본, 미국 등과의 교류전시와 워크숍 등을 진행해왔다. 금속공예학과의 교육은 정규 수업뿐 아니라 다양한 행사들을 통해 이루어져왔다. 매년 가장 중요하게 개최되는 졸업전시회는 1999년부터 미술계의 중심인 인사동에서 개최하면서 국내의 많은 전공학생들과 전공자들의 관심을 모아 왔다. 전시 개막일에는 최우수작품을 선정하여 학과에서 제작한 메달과 함께 시상해 왔는데, 첫 수상자 윤덕노(’96)가 현재 캔사스주립대학교Kansas State University 교수로 재직하는 등, 매회의 수상자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활동하고 있다. 2000년부터 매년 3월 교외에서 개최되는 ‘금속공예포럼’은 재학생들이 기획하는 학술행사로, 매해 선택된 공예계의 이슈를 주제로 한 세미나, 초청 특강, 친목행사 등으로 진행해왔다. 2000년부터 시작된 ‘장신구거리Jewelry Street’는 학교 축제기간 동안 전공생들이 스스로 만든 작품을 판매하는, 학생들과 소비자들이 직접 만나는 공예 시장을 경험하는 체험의 장이다. 또한 1993년부터 학생들의 자발적인 기획과 참여로 시작된 ‘장신구쇼Jewelry Show’는 실험적인 장신구를 발표하는 무대로, 장신구 제작은 물론 무대, 의상, 모델, 안무, 음악, 영상 등이 학생들의 종합적인 기획으로 이루어짐으로써, 다양한 예술적 체험을 제공하는 장으로 삼아왔다. 방대한 행사 규모로 인해, 2004년부터는 조형전 행사의 일환으로 3년마다 개최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세 번째 기획되고 있는 동문활동인 ‘맞짱’은 기존 동문회의 형식에서 탈피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문 선후배들의 자유로운 만남이 이루어지는 비즈니스파티 형식의 행사로, 각계각층에서 활동하는 동문들 간의 정보교환과 함께, 그 해 졸업예정자들이 선배들을 만나고 사회의 일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만남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금속공예학과의 교육의 결과는 졸업생들의 활동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결실을 맺어왔다. 특별히 개인 공방을 기반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전업작가로 활동해온 많은 수의 공예가들이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의 금속공예학과와 도자공예학과 출신이라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금속공예학과 동문들의 전시단체인 ‘조형금속공예회’는 1979년 출판문화회관에서 ‘현대금속공예회’라는 명칭으로 창립전을 가져, 이후 주요 대학들의 전시단체 창단에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까지 이 단체는 금속공예계의 현업에 종사하는 전업작가들을 가장 많이 보유한 단체로서 교육과 현장을 이어주고 있으며, 최근 들어 이들의 활동 범위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로도 확산되고 있다.동문들의 활동 중에는 창업을 통해 공예적 가치와 디자인적 방법론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사례들도 많다. 전문디자인브랜드로서 문구용품 디자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밀리미터밀리그램MMMG’은 배수열(’92) 등 4명의 졸업동기생이 1999년 창업한 디자인브랜드 회사이다. 뒤를 이어 디자인 문구와 소품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김남현(’95)등 3명의 ‘아이코닉ICONIC’ 등이 대표적이다. 위형우(’01), 박준범(’02), 한성재(’06)로 이루어진 ‘BAO’는 가구 프로젝트그룹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오고 있다. 특히 한성재의 가구와 결합한 스피커는 2013년 프랑스 파리 Maison & Object에 출품 큰 찬사를 받으며, 국제적인 유명 페어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미국 얼햄대학Earlham College 교수로 재직 중인 이승열(’96)은 2003년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독창적인 안경시리즈로 대상을 수상했으며, 후배인 황순찬(’98)은 티타늄을 소재로 한 수제 안경으로 2009년, 2013년 2회에 걸쳐 세계 3대 디자인공모전인 ‘레드닷Red Dot’ 수상자로 선정되어 공예적인 디자인의 창의성을 국제적으로 알렸다. 금속공예학과의 우수한 작품들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 행사에도 적극 참가하고 있는데, 2006년 독일에서 열리는 신진공예작가들의 국제 전시인 ‘탈렌테Talente’에 학부생들과 대학원생 5명이 선정되었으며, 이후 매년 작품들이 선정되어 소개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국제적인 화랑인 갤러리 마르쩨Galerie Marzee가 주관하는 국제졸업작품전에도 매년 초대되어 세계 유명 장신구대학 졸업생들과 함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10년 벨기에 갤러리 카롤리네 반 획Gallery Caroline Van Hoek의 초대로 학부 및 대학원생들의 작품을 유럽에 소개하여 높은 관심을 받기도 하였다. 김희주(’03)는 이탈리아 국제장신구공모전 ‘Preziosa young 2011’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독일 바이에른주 미술공예협회인 ‘BKVBayerischer Kunstgewerbe-Verein e.V.’ 주최 젊은 공예작가들을 위한 국제공모전에서도 매년 입상의 성과를 이루고 있다. 국제은기공모전으로 세계 최고의 명성을 갖고 있는 독일의 ‘국제실버트리엔날레 Silbertriennale International’에서 2011년 김동현(’97), 2014년 한상덕(’99)이 연이어 2등상의 영광을 안았다. 2013년 박정혜(‘98)는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금상을, 2014년 신혜림(’90)은 유리지공예관에서 주관하고 고려아연주식회사에서 후원하는 ‘올해의 금속공예가상’을 수상하였다. 장신구작가 권슬기(’02)는 미국의 ‘AJFAmerican Jewelry Forum’가 세계의 장신구작가들을 대상으로 1명의 작가를 선정하는 ‘2014 AJF Award’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밖에도 매년 많은 동문들이 국가 기관의 공모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어 미국 Sofa, 영국 Collect 등의 공예계 유명 페어 및 해외 전시회에 참여해 왔다.

금속공예학과의 교육

이지혜, 교묘함, 브로치, 레진·플라스틱클레이·정은, 2006



학과 티셔츠를 입은 2학년 학생들






금속공예학과 실기실 중 판금실



독일 포르츠하임대학 금속공예학과 교환학생


나와 금속공예 그리고 국민대학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반‘콘센트’ 가건물에서의 금속공예 실기수업 모습

언제나 나는 KMU소식지를 둘러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국민 New & Hot에 ‘최우수 A등급 국민대’가 떴다. 야~ 하는 함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러면서도 국민대 구성원들이 정말 고생 많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은 나를 금속공예가로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 준 터전이자 견인차였다. 기법, 공구, 교육프로그램, 국제교류, 공예화랑, 일반인교육 JDC까지 금속공예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금속공예전문가가 되었다고 본다.

내가 금속공예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미국으로 유학가서부터이다. 내가 다니던 서울대학 응용미술학과 시절에는 모든 디자인 분야를 종합적으로 배우던 때여서 특별히 금속공예 전문 수업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대부분 수업시간에 아이디어를 전개한 도면을 들고 청계천 아저씨들에게 부탁하여 주문제작하는 형식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숙제를 받으면 가장 고민스러웠다. 어디 가서 어떻게 아이디어를 찾을 줄 몰라 책방을 뒤지며 그림을 찾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명동의 한 헌 책방에서 미국 잡지 ‘크래프트 호라이즌Craft Horizen’을 보았다. 이 잡지에 실린 몇 컷의 금속 작품들을 보고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되었다. 그 작품들이 알마 아이커만Alma Eikerman과 헬렌 셔크Helen Shirk의 금속 작품인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 놀랐다. 결국 마음속에 간직한 꿈을 향하여 자신의 전공 분야가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조차 모른 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지하고 무모한 행동이었다.

내가 4년간의 유학생활을 마무리하고 돌아올 때쯤(1974년) 지금은 작고한 유리지 선배님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국민대학 부수언 교수님을 찾아뵈라는 내용이었다. 유 선배님은 나보다 1년 위였는데 서울대에서 금속공예 전공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국민대학교에서 강사를 하고 있었다. 유 선배님은 유학을 결심하고 당신의 강의 자리를 후배인 나에게 권하셨던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내가 미국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같은 날 유 선배님은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그 후 유 선배님은 유학에서 돌아와 모교 교수가 되어 나와 금속공예의 길을 함께 걸으며 동력자로서 서로 존중하는 좋은 친구관계였다.

부수언 교수님이 금속공예실이라고 안내한 곳은 국민대학 본관 동쪽 언덕 위의 ‘콘센트’ 가건물이었다. 건물은 골진 금속철판을 반원으로 말아서 만든 임시 건물인데 약 30평 정도 되고 가운데를 반으로 나누어서 목공예실, 금속공예실로 명패가 붙어 있었다. 나중에 이 자리에 학생회관이 지어졌고, 지금은 법학관으로 명칭된 곳인데 남쪽 엘리베이터 자리쯤에 금속공예실이 있었다. 금속공예실 안에 장비를 넣어두는 유리로 막은 칸막이 속에는 나무망치와 줄 등이 있고, 공기압력을 넣어 석유를 연소시키는 토치가 하나 있었다. 청계천에서 대부분 이 토치로 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지 전혀 가늠이 안 되었지만 수업은 진행되었다. 솔직히 지금도 나는 당시 내가 무엇을 가르쳤는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콘센트’ 가건물은 나를 금속공예가의 길로 가도록 만든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금속작업실이 되었다. 그해 겨울, 1975년 1월 나는 첫 번째 전시회를 준비하는 작업실로 이 ‘콘센트’ 가건물에 매일 출근했다. 전시회는 주로 미국 수업과정에 만든 판금그릇과 수저, 작은 오브제 등이었는데 작품들을 손질하고 마무리작업 하는 데 혼신했다. 한겨울 정릉 골짜기 바람은 시리고 차갑고 무서웠다. 그래도 10여 평 남짓한 ‘콘센트’ 가건물 안 투박한 무쇠 난로 속에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어서 나의 몸과 마음은 온전히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당시 학교 관계자들에게는 금속작업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기이하게 보였을 것이다. 가냘픈 도시형 여자가 매일 대장간 작업 같은 험한 일을 하고 있었으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엿보기까지 했다. 특히 수위아저씨는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을 자주 들여다보면서 어떤 때는 미리 장작불을 지펴놓았다. 고마웠던 그 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장작 불꽃이 용접용 불꽃이 되고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가 만들어지는 신호탄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이듬해 1976년 나는 운이 좋게 국민대학 전임교수로 발령받았다. 당시 서임수 학장님(지금으로 치면 총장님)과의 면접도 없었고, 서류심사도 없이 자필로 문방구에서 사온 간단한 이력서로 전임 발령을 받았다. 요즘 전임이 되기 위한 갖가지 심사과정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쉽게 전임이 되었는가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이다. 전임이 된 이후 가장 시급한 일이 실기실을 확보하고 기계와 공구를 갖추는 일이었다. 금속공예 작업을 위한 기초설비가 전혀 없는 환경에서 기존 다른 대학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상황은 더욱 아니었다. 당시 대학에서는 대부분 도면 작업을 중심으로 청계천에서 제작하던 관행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미국에서 배워온 기법 그리고 그에 따른 시설이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설과 공구를 갖춰야 했다. 시장조사를 하고 금액을 맞추어 보니 약 400여 만 원이 필요했다. 당시 작은 집 한 채 가격이었으니 너무나 엄청난 금액이었다. 그 예산안을 올리면서 학과장이셨던 도예가 황종례 교수님이 도장을 찍어 주실 것인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때 무사히 통과된 것이 너무나 감사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새로운 전공 개설을 하면서 예산확보가 있었던 것 같다.

금속공예 실기실은 본관과 뚝 떨어져 있고 ‘콘센트’ 가건물이여서 작업환경은 오히려 좋았다. 야외 작업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학생들과 함께 시간 구애 없이 늦게까지 작업할 수 있었다. 학생들은 젊음의 치기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국민대학 금속공예과는 좋은 작품을 하는 학과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작업에 열정을 바친 학생들은 스스로 ‘현대금속공예회’를 발족하여 1979년 3월 출판문화회관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때 금속공예 전문 단체가 만들어지고 전시회까지 연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이들이 학부 4학년 학생들(오명철, 민경은, 유동희, 권순남, 이미자, 이상구)이었기에 오로지 순수한 젊음으로 뭉쳐 있었고 금속공예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전시회를 개최한 후 홍익대학 졸업생들로부터 ‘현대금속공예’라는 명칭에 대한 시비가 걸려왔다. 국민대학 학생들이 현대를 대표하는 명칭을 쓰는 게 맞지 않다는 시비였다. 알고 보니 홍익대 출신들이 모여 ‘현대금속공예회’라는 그룹전 개최를 준비하던 중 국민대생들이 같은 명칭의 전시회를 열어 당황했던 것이다. 전시회 명칭 문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생들 스스로가 준비한 일이었기에 나는 깜짝 놀랐다. 나와 도자공예 김익영 교수가 학생들과 몇 차례 만나 명칭을 국민대 이미지가 있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권했지만 참가 학생들의 뜻을 굽힐 수는 없었다.

졸업생들은 1985년에 이르러 제 5회 ‘조형금속공예회’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2014년까지 27회에 걸친 국민대학교 동문 금속공예회를 개최하고 있다. 금속공예회 명칭 사건 이후 홍익대 출신들은 ‘홍익금속공예회’를 만들고 ‘현대금속공예회’라는 명칭은 아직까지 별로 쓰여지지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80년대는 민주화 열기로 학생운동이 극렬하여 대학 수업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했다. 수업 내용의 보충이 절실하다고 판단한 나는 미국에서 훈련받은 초빙강사 채용공고를 낼 것을 교무처에 요구했다. 1981년 미국의 유수한 금속공예 전공 대학기관에 초빙강사 채용공고를 하여, 미국인 잭 다 실바Jack Da Silva 교수와 영국인 스티븐 보트Stephen Bort 교수가 학교 교무처의 도움으로 국민대학에서 1987년까지 함께 학생들을 지도했다. 그리고 나의 해외 금속공예 작가들과 교류에 대한 관심은 1986년 ‘한미 금속공예 워크샵’을 개최함으로써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전개되었다. 관심 있는 공예가들이 이 워크샵에 참가신청 을 하여 성공적인 워크샵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당시에 이와 같은 국제적 워크샵은 이례적이고 신선한 행사였기에 워커힐 미술관과 월간디자인사가 적극적인 후원과 홍보를 맡아주었다는 것이다.

1990년 금속공예 전임 전용일 교수를 학교에서 뽑아주어 나는 크게 힘을 얻은 기분이었다. 1976년부터 15년 동안 금누리 교수가 함께 기초조형 분야를 탄탄히 해주었고, 외국인 강사 초빙 등으로 금속공예 수업 내용을 보충할 수는 있었으나 금속공예를 전공한 후진 전임교수가 없어 방향설정에 관한 것이나 행정지원의 책임 등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아 역부족을 느끼던 때도 있었다. 그해 여름 전용일 교수, 대학원생들, 강사들과 함께 일본 동경에 금속공예 분야를 방문하는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행은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주는 것이긴 하지만 이 여행에서 나는 한국 금속공예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깨우침을 받았다. 여행 중 우에노에 있는 일본 국립박물관을 관람하게 되었는데 전시장을 다 돌고 나오면서 무엇인지 허전하고 보고 싶은 것을 못 본 것 같은 기분이여서 안내원에게 물었다.

“여기 전시장 말고 또 다른 전시장 있나요?” 우리나라 중앙박물관에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금관이나 금 장신구가 거의 없는 동경 박물관이 너무 이상하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동경 박물관 관람은 나에게 한국 금속공예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주는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역사와 기술, 조형성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고, 그것을 교육과 연결시키기 위하여 ‘금속공예사’ 수업을 개설하고 강의하기 시작했다. 이 수업은 나를 공부시키기 위한 수업이었다고 본다. 한국 금속공예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분별하게 서양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1년 금속공예학과의 금누리, 정용진, 전용일 교수와 함께

이 강의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면서 나는 우리나라 금속공예가 매우 특별하고 깊은 뿌리를 갖고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대표적인 키워드로 금관, 금장신구, 불구, 범종, 금속활자, 금속수저, 유기그릇, 가락지 등을 찾아내고 학생들이 이러한 것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학생들의 관심이 이러한 전통적인 것에 미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여 아쉬운 점이 있었다. 다른 분야에 비해 금속공예를 연구하는 미술사학자들도 적으며 전문 서적도 별로 없고 전시기획자도 없어 열악한 환경이기에 학생들이 수업 한번 듣고 관심 갖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분야의 발전을 위하여 금속공예학과가 중심이 되어 지속적인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내가 지금까지 관심을 갖고 연구한 내용을 보면 ‘한국은 금속공예의 나라’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결론내려질 것이다. 지나간 역사이긴 하지만 한국금속공예의 특징과 가치를 올바르게 인식하게 함으로써 관심과 초점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금속공예 전공자들의 활동역량에 따라 앞으로 무궁한 발전이 있으리라 믿는다. 최근 국민대학교 금속공예 분야에서는 이러한 나의 기대에 부응하는 기쁜 소식들이 자주 전해온다. 중요한 국제 공모전에서 상을 휩쓸고 다니는 국민대 출신들의 모습에서 희망찬 미래가 보이는 것이다.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창작활동으로 세계로 나가고 있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40년 전 무쇠 난로 속에서 활활 타오르던 불꽃같이, 국민대 금속공예인들이 힘을 합쳐 열정을 다하면 ‘한국은 금속공예의 나라다’ 라는 나의 주장이 오늘의 이야기가 되고 또 내일의 이야기로 뻗어나갈 것이다.
김승희
금속공예학과 명예교수


동문 글 | 출발선



문춘선의 Necklace, ‘Save the Date’전, 베트남 Vevek 갤러리, 2014

얼마 전 2015년도 조형대학 수시입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하게 되었다. 자신과 학과의 이름이 적힌 카드를 하나씩 목에 걸고 진지하게 수업을 듣던 20여 명의 학생들. 이들과 세 시간을 함께 하며 나는 16년 전 어느 깜깜한 새벽, 지금은 복합문화공간이 된 서울역 개찰구를 빠져나오던 한 신입생을 기억했다. 아는 이 하나 없이 서울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두렵지만은 않았던 것은, 꿈에 그리던 대학에서 설레는 20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였다. 처음으로 온전히 가져보는 혼자만의 자유가 오히려 버거워 무엇 하나 자연스럽지 않았다. 가족들이 없는 식사시간, 같이 있으면 두려울 것이 없던 단짝 친구 없이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 너무 외롭다고 여겨질 즈음, 서서히 대학 생활이 나에게 다가왔다. 조형체전—모두가 마치 체육인이라도 된 듯 준비했던 조형체전의 마지막 날 밤을 새우던 기억—아카시아 향이 많이도 나던 그 봄날은, 새벽까지 조형대학 건물의 지하부터 5층까지 누비며, 그야말로 모두와 함께 입학 후 처음으로 긴장을 풀고 즐겼던 날이었다.조형대학과의 인연은 대학원 시절까지 이어지며 나의 30대 초반까지 지배했다. 청년기 대부분을 차지한 이 대학은 또 하나의 고향이다. 내가 자란 시골집이 그렇듯이 이곳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 그 많은 추억들은 현재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더없이 중요한 터전이다. 작가로서 나는 금속뿐만 아니라 종이나 나무 등 다양한 재료를 다루어 작업을 하면서, 재학시절 수년간 다듬은 기초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늘 실감한다. 장신구 제작과정의 특성상 대부분 의 작가들은 다분히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경향이 있지만, 반대로 그 활동 영역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까지도 확장된다. 근래에 국민대학교 출신의 동문들은 해외에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어 국제적인 공모전 등에서 그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국제 공모전의 참여가 예전보다 수월해진 까닭도 있겠지만, 동문들이 유독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 학교의 커리큘럼이나 수업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새 현대 장신구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의 유명학교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고유의 색깔을 지니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나의 학교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6년이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늘 내 이름의 옆자리를 차지한다. 어느덧 나에게도 띠 동갑의 나이차를 넘기는 후배들이 생겼다. 내가 그랬듯이, 후배들이 이제 나를 바라본다. 그들의 시선은 부담이 되고 책임감이 되어 다가오기도 하며, 긴장과 설렘을 부추기며 열정을 갖게 하거나 고통을 잊게 하기도 한다. 이것은 모두 나 스스로 다른 이들에게 뭔가를 전하는 작가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6년 전에 출발선에 섰던 작가의 길. 오늘도 나는 작업실에서 ‘내가 만든 것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

문춘선 금속공예학과, 98학번
Save The Date, Gallery Vivekkevin, 호치민, 베트남, 2014
Schmuck, 뮌헨, 독일/장식과 환영, 국립현대미술관, 한국, 2013
In Between, 이타미시립공예박물관, 이타미, 일본, 2012
Hanging Around: Mad Necklaces, Museum of Arts and Design, 뉴욕, 미국, 2011
국민대학교 대학원 졸업, 2009
국민대학교 금속공예학과 졸업, 2003





김동현, 주전자, 정은, 2010



배영인, 여치집 목걸이, 빨대, 2008



권슬기, 방어의 진화, 브로치, 실리콘·혼합재료, 2013



박종덕, 수제 자전거, 스테인리스 스틸·흑니켈 도금,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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