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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 도자공예학과</strong><br> | |||
세 번의 인연 | |||
학창시절에서 의미 없는 만남들은 없었고 평범한 인연도 없었다. 마치 미래의 어떤 시간들을 위해 이미 과거부터 준비되었던 것처럼 모든 만남은 각각의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 |||
대전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대학을 다니던 나는, 어느 날 국민대학교 공예미술학과를 졸업하신 선배님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새로운 운명을 꿈꾸게 되었다. 나는 미련 없이 다니던 학교를 떠나 재수의 길을 택했다. 입학 후 흙이라는 생소한 재료와의 만남의 충격으로 나는 또 어려움에 빠졌으나, 88학번 선배들과의 만남은 전공에 대한 혼란을 극복하고 분명 한 목적의식을 갖고 전공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아직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졸업을 전후해 친구들이 하나 둘 학교를 떠날 때, 지도교수이셨던 노경조 선생님과의 만남은 도자공예가로서 나의 학문적 성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불혹의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느린 걸음이지만 꿈을 향해 꾸준히 걷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직선이 아닌 곡선의 형상으로 목표에 도달했던 것 같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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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formational Hybrid 935713-02 Porcelain과 혼합점토, 상감, Computer decal transfer, multi 소성, Rhinoceros 3D와 keyShot5, 24×25×85.5c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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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박 중 원 </strong>생활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93학번<br> | |||
현 도예가<br> | |||
영국 웨일즈 대학 대학원 졸업, 2009<br> | |||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자공예학과 졸업, 2003<br> | |||
국민대학교 생활미술학과 도예공예전공 졸업, 2000<br> | |||
세계도자비엔날레 특별상 등 다수 수상<br> | |||
죽을 때까지 재미난 길 | |||
생활미술학과 2학년, 금속공예와 도자공예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나는 도자를 선택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덜 들 것 같았고 선배의 강압(?)이 있었다. 정 많은 선배 때문이었다. 실기실은 둥근 비닐하우스 모양의 양철집으로 기억하는데 선배 여학생들이 초벌 그릇을 들고 줄을 서면 기사님이 유약을 발라주셨다. 큰 경유가마에 불을 때는 날은 잔칫날이었다. 돼지머리 놓고 고사를 지낸 다음 막걸리와 함께 먹고 흥에 취해 노닥거리다가 ‘가마실’을 찜질방 삼아 숙면했다. | |||
복학을 하면서 도자기로 중소기업을 이루겠다는 꿈을 꾸었다. 대학원을 마친 1989년, 신림동 부모님 집의 지하방을 개조하고 좁은 마당에 가마를 놓아 드디어 나만의 공방을 설립 | |||
했으나, 만들어 팔 곳을 몰라 바퀴달린 여행용 가방을 끌고 동네 시장에서부터 인사동, 남대문시장,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등을 찾아 다녔다. 1996년에는 화성군에 넓은 작업실에서 | |||
6명이 함께 일하며 만든 많은 양의 도자기를 택배 운송에 의한 전국적인 납품을 시작했다. | |||
이 같은 노력들이 쌓여 지금은 경치 좋고 공기 좋은 이천의 산수유마을에 자리 잡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중소기업의 꿈은 접었으나, 죽을 때까지 재미있을 것 같은 작업을 계속하며 행복한 작가로 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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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모 작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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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정 인 모</strong> 생활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79학번<br> | |||
국민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 1990-현재<br> | |||
공방 모완도예 운영, 1989-현재<br> | |||
개인전 3회, 단체전 100여 회, 1987-현재<br> | |||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자공예학과 졸업, 1988<br> | |||
국민대학교 생활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졸업, 1986<br> | |||
365일 설렘으로 | |||
물레 위에서 마술처럼 변해가는 그릇들, 가마에서 보석처럼 변해 나오는 각양각색의 작품들을 보며 학부 시절부터 도자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일 년 365일 중 학교에 나가지 않 | |||
은 날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지금의 분청작업도 3학년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분청사기특별전을 통해 전통 분청작품들은 새롭게 보게 되고 그때부터 옛 도자기와 문화에 대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마침 분청작업을 하는 송정인 선배님이 첫 강의를 나오실 때였고, 노경조 교수님이 또한 길잡이가 되어 주셨다. 박물관, 사찰, 개인수장가,고미술상가, 가마터에서 접한 모든 것이 새로웠고 경이로웠다. | |||
가마터에서 사금파리를 찾듯 눈을 반짝이며 벌판을 뒤지던 그 마음. 옛 절집을 함께 걸으며 느꼈던 호연지기, 그런 마음들을 모아 1997년 꿈에 그리던 작업장을 양평 중미산 산자락에 열었다. 분청사기의 여러 장식기법 중 하나인 박지분청 제작의 즐거움에 빠져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큰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었고 또 후배들을 지도하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학교를 오르는 그 행복한 설렘. 가마 문을 열 때와 같은 그 기분을 나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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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문 사각푼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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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허 상 욱</strong> 공예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88학번<br> | |||
현 도예가<br> | |||
개인전 7회,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7회 출품<br> | |||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등 여러 미술관에 작품소장<br> | |||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예학과 졸업, 1998<br> | |||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예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졸업, 1995<br> | |||
2025년 9월 7일 (일) 16:04 기준 최신판
도자공예학과
세 번의 인연
학창시절에서 의미 없는 만남들은 없었고 평범한 인연도 없었다. 마치 미래의 어떤 시간들을 위해 이미 과거부터 준비되었던 것처럼 모든 만남은 각각의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대전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대학을 다니던 나는, 어느 날 국민대학교 공예미술학과를 졸업하신 선배님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새로운 운명을 꿈꾸게 되었다. 나는 미련 없이 다니던 학교를 떠나 재수의 길을 택했다. 입학 후 흙이라는 생소한 재료와의 만남의 충격으로 나는 또 어려움에 빠졌으나, 88학번 선배들과의 만남은 전공에 대한 혼란을 극복하고 분명 한 목적의식을 갖고 전공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아직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졸업을 전후해 친구들이 하나 둘 학교를 떠날 때, 지도교수이셨던 노경조 선생님과의 만남은 도자공예가로서 나의 학문적 성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불혹의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느린 걸음이지만 꿈을 향해 꾸준히 걷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직선이 아닌 곡선의 형상으로 목표에 도달했던 것 같다.
Transformational Hybrid 935713-02 Porcelain과 혼합점토, 상감, Computer decal transfer, multi 소성, Rhinoceros 3D와 keyShot5, 24×25×85.5cm
박 중 원 생활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93학번
현 도예가
영국 웨일즈 대학 대학원 졸업, 2009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자공예학과 졸업, 2003
국민대학교 생활미술학과 도예공예전공 졸업, 2000
세계도자비엔날레 특별상 등 다수 수상
죽을 때까지 재미난 길
생활미술학과 2학년, 금속공예와 도자공예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나는 도자를 선택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덜 들 것 같았고 선배의 강압(?)이 있었다. 정 많은 선배 때문이었다. 실기실은 둥근 비닐하우스 모양의 양철집으로 기억하는데 선배 여학생들이 초벌 그릇을 들고 줄을 서면 기사님이 유약을 발라주셨다. 큰 경유가마에 불을 때는 날은 잔칫날이었다. 돼지머리 놓고 고사를 지낸 다음 막걸리와 함께 먹고 흥에 취해 노닥거리다가 ‘가마실’을 찜질방 삼아 숙면했다.
복학을 하면서 도자기로 중소기업을 이루겠다는 꿈을 꾸었다. 대학원을 마친 1989년, 신림동 부모님 집의 지하방을 개조하고 좁은 마당에 가마를 놓아 드디어 나만의 공방을 설립 했으나, 만들어 팔 곳을 몰라 바퀴달린 여행용 가방을 끌고 동네 시장에서부터 인사동, 남대문시장,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등을 찾아 다녔다. 1996년에는 화성군에 넓은 작업실에서 6명이 함께 일하며 만든 많은 양의 도자기를 택배 운송에 의한 전국적인 납품을 시작했다.
이 같은 노력들이 쌓여 지금은 경치 좋고 공기 좋은 이천의 산수유마을에 자리 잡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중소기업의 꿈은 접었으나, 죽을 때까지 재미있을 것 같은 작업을 계속하며 행복한 작가로 살고 있다.
정인모 작품
정 인 모 생활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79학번
국민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 1990-현재
공방 모완도예 운영, 1989-현재
개인전 3회, 단체전 100여 회, 1987-현재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자공예학과 졸업, 1988
국민대학교 생활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졸업, 1986
365일 설렘으로
물레 위에서 마술처럼 변해가는 그릇들, 가마에서 보석처럼 변해 나오는 각양각색의 작품들을 보며 학부 시절부터 도자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일 년 365일 중 학교에 나가지 않 은 날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지금의 분청작업도 3학년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분청사기특별전을 통해 전통 분청작품들은 새롭게 보게 되고 그때부터 옛 도자기와 문화에 대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마침 분청작업을 하는 송정인 선배님이 첫 강의를 나오실 때였고, 노경조 교수님이 또한 길잡이가 되어 주셨다. 박물관, 사찰, 개인수장가,고미술상가, 가마터에서 접한 모든 것이 새로웠고 경이로웠다.
가마터에서 사금파리를 찾듯 눈을 반짝이며 벌판을 뒤지던 그 마음. 옛 절집을 함께 걸으며 느꼈던 호연지기, 그런 마음들을 모아 1997년 꿈에 그리던 작업장을 양평 중미산 산자락에 열었다. 분청사기의 여러 장식기법 중 하나인 박지분청 제작의 즐거움에 빠져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큰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었고 또 후배들을 지도하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학교를 오르는 그 행복한 설렘. 가마 문을 열 때와 같은 그 기분을 나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허 상 욱 공예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88학번
현 도예가
개인전 7회,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7회 출품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등 여러 미술관에 작품소장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예학과 졸업, 1998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예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졸업, 199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