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5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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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7일 (일) 15:19 기준 최신판
사람50년
교수진의 역사
학생활동
조형대학 학생회
2015학년도 조형대학 학생회 집행부
조형대학 학생회(이하 ‘학생회’로 표기)는 1985년 처음 출범한 이후로 2015년까지 31대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2015년 현재
학생회에는 기획국, 홍보국, 사무국, 복지국 등의 기구가 구성되어 있다. 지난 30년 동안 조형대학 학생회는 조형대학 학생들의 교육 및 복지 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학생회에서 진행하는 정기적인 행사로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조형페스티벌, 플리마켓 등이 있었으며, 상시적으로 게시판 관리와 우산대여 그리고 구급약 등을 제공해 왔다. 또한 SNS, 페이스북, 카카오톡, 옐로아이디 등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학생들 간의 소통을 돕고 있다.
조형페스티발은 학생회의 대표적인 행사로 조형체전, 디자인 퍼포먼스, 조형인의 밤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조형체전은 운동경기를 통해 조형대의 화합을 위해 시행되고 있으며, 디자인 퍼포먼스는 오랜 역사를 지닌 행사로 조형대학생들의 전통적인 축제로 자리 잡았으나 순기능 못지않은 부작용이 나타나 근래에는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플리마켓은 학생들이 다양한 아이디어의 작품을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는 행사로 호응도가 높아 향후 디자인 퍼포먼스를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학생회가 직접 기획하고 공급하는 조형대 점퍼는 조형인으로서의 공동체의식을 높이는 역할을 해 왔다. 그 밖에도 학생회는 조형대학생들의 편의와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왔다.
우즈다트의 전시회
학생회의 이름은 ‘낭만’
조형대학 동아리 —‘Form’에서 ‘일기장’까지
조형대학의 각 학과에는 다양한 동아리가 있어서 학생들은 동아리활동을 통해 전공 혹은 취미와 관련된 활동을 활발히 해 왔다.동아리 활동의 결과물들은 정기적인 전시 및 공연을 통해 발표해 왔다.
공업디자인학과에는 다양한 운송수단의 디자인을 연구하는 폼,컨셉아트와 VR에 대해 연구하는 포스, 제품디자인에 대해 연구
하는 제퍼스, 컴퓨터그래픽 연구동아리인 스페이스, 그리고 사진에 대해 연구하는 우즈타트 등의 동아리 활동이 있었다. 시각디자인학과에는 타이포그래피와 편집을 연구하는 더 글리프와 이름,영상에 대한 워크샵과 작품을 제작하는 리플렉스, 그래픽 요소로서의 사진을 디자인에 적용하기 위한 다양한 가능성을 연구하는 공상, 광고공모전을 준비하는 사이, 출판만화, 일러스트, 캐릭터, 카툰을 창작하고 감상하는 펜탈롱, 웹디자인 공모전을 준비하는 멀티플라이, 3D 영상을 연구하는 폴리곤, 일러스트레이션의 표현과 적용가능성을 탐구하는 언플러그드 등이 운영되었다.
금속공예학과에는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제작된 작품을 전시하는 손질과 일상다반사, 사진촬영기법을 연구하는 위, 금속공예 분야의 정보교류 홈페이지를 담당하고 관리하는 모임인 편집부, 금속공예에 관련된 작업 지식 및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만든 모임인 젠, 애니메이션 정보 및 지식을 나누고 창작하는 모임인 플래쉬 등이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도자공예학과에는 도자에 대한 역사와 도자 성형방법을 연구하는 흙사랑, 실험을 통해 유약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탐구하는 우리유약연구회 등이 있었다.
의상디자인학과에는 독창적인 패션디자인과 작품제작을 연구하는 틈새공략전시집단, 패션프로젝트 동아리 아이언바운드, 패션사진에 대해 연구하는 아사, 패션마케팅과 브랜드 론칭을 연구하는 소프트엠, 컴퓨터패션 동아리인 팀, 패션일러스트레이션 창작 모임인 루나시 등이 있었다. 실내디자인학과에는 사진동아리인 옵스큐라, 음악동아리인 야, 영상예술에 대해 연구하는 빠카스, 실내디자인과 건축 관련 분야에 대한 공부를 주로 하는 인디포름 등의 동아리가 있었으며, 영상디자인학과에는 사진과 영상을 연구하는 1프레임 기억 장치(일기장) 동아리가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 그리고 조형대학 음악동아리인 코드는 여름, 겨울 정기 공연과 조형체전 뒤풀이 공연, 국민대학교 축제인 대동제에 찬조공연을 해오고 있으며 모든 학과 학생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왔다
코드의 정기 공연사진동아리 옵스큐라
동문의 글
그 시대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척박하고 미지의 영역이었던 창의 산업에 누구보다 먼저 용기 있게 도전한 디자인 현장의 전문가 중 많은 수가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졸업생들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 가 경 영상디자인학과 10학번
해비턴트 입사, 2015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영상디자인학과 졸업, 2015
㈔시즈 사회적기업 스타트업을 위한 보라밤 활동, 2011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 인턴, 2011
공업디자인학과
디자이너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
제가 학창시절에 예비 디자이너로서 가슴깊게 느끼고 깨달은 많은 것들 중 현역 디자이너로서 지금까지 영향을 받고 실천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시간의 중요성입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시간관리의 중요성입니다. 둘째는 그린디자인의 가치입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그 당시 조형대학내에서 자유롭게 수강이 가능했던 그린디자인 수업은 지금의 저의 아주 강력한 디자인방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디자이너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당시 수업을 하시는 많은 은사님들은 본인이 경험했던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업을 진행하셨습니다. 저는 그런 수업을 통해 하나의 지식을 얻게 되는 그 어떤 수업보다도 더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일하는 지금,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훌륭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은사님이 실천으로 전해주신 지식보다 값진 지혜들은 저 자신의 디자인 이야기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고 그것이 디자이너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 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매일같이 깨닫고 있습니다.
독일 IF Package Award 금상 수상작, 엘라스틴 샴푸 패키지, 2012
성 정 기 공업디자인학과 97학번
현 Daylight 아시아 디자인 디렉터
한국디자인진흥원 포스트 차세대 디자인 리더, 2011, 2012
한국디자인진흥원 차세대 디자인리더, 2009
IDEO보스턴 입사 컨셉디자이너, 2005
21세기 우수인재상 디자인부분 대통령상 수상, 2003
IF, IDEA, REDDOT 등 국제디자인 공모전에서 20여 회 수상
항상 열린 마음과 자세로
조형대학은 오늘의 제 꿈과 비전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공업디자인학과뿐만 아니라 모든 학과의 친구들과 밤을 지새우며, 창의적 열정과 에너지를 불태웠던 그 시절이 기억 속에 너무도 선명합니다. 나중에 훨씬 정교한 현대식 데스크로 업그레이드 되긴 했지만, 1-2학년 시절의 낡았지만 개성이 넘쳤던 제 디자인데스크는 아직까지 그 모서리의 생김새까지 기억에 뚜렷합니다. 무엇보다, 디자인을 공부하기에 최고의 대학이라는 자부심과 항상 새로운 가치에 대한 호기심과 쉬지 않는 도전을 일깨워주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한 정신과 교육 때문이었을까요? 졸업 후, 제품디자이너Industrial Designer로서의 길을 걸으며 새로운 경험과 창조적 역할에 대하여 배우게 되었고, 서비스혁신과 사용자 경험 영역으로 제 커리어 Career와 기여Contribution를 더욱 확장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이는 인문학적 소양은 물론, 소프트웨어 기술, 크리에이티브 팀 매니지먼트까지, 필요로 하는 역량과 스킬 Skill-set의 영역은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훨씬 재미있고 가슴이 뛰는 일입니다.
사용자의 요구가 한층 다양해지고 구체화되면서 우리의 산업도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과거 '전문인'을 정의하던 전문영역 간의 경계도 점점더 희미해지고 상상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기회들이 열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항상 열려있는 마음과 자세로 열정과 실험을 멈추지 않으려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즐겁습니다.
김 성 한 공업디자인학과 88학번
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UX혁신팀 UX디자인4그룹장, 2012-현재
IMBA, Imperial College London, London, 2012
삼성전자 유럽디자인연구소(런던) 연구소장, 2007-2012
Master of Design Methods, Illinois Institute of Technology, Chicago, 2005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업디자인학과 졸업, 1995
창작 자체를 즐기면서
대학 시절 요트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정하고 한국의 조선소를 찾아다니거나 유명하신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들은 말은 ‘안 된다.’ 라는 말이었다. 또는 조선 공학을 공부해야 유람선을 만드는 꿈에 근접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박스형 자동차를 생산해 내던 자동차 산업이 경쟁이 치열해지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수요를 발생시켰듯이, 현재의 특색 없는 요트의 외형도 곧 큰 변화가 일어날 거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었고,영국 유학 시절의 인턴에서 시작된 파머 존슨과의 인연은 1년간의 학비 지원과 졸업 전시회 스폰서 쉽 그리고 졸업 후 정직원 채용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요트 디자이너가 되도록 기틀을 마련해준 국민대학교가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은 Autodesk사에서 제공하는 Alias라는 프로그램의 3D 모델링 수업이다. 13년 전 학부 시절 UIT디자인솔루션센터에서 경험한 3D 스캐닝, 3D 프린팅, 디지털 드로잉 등의 시설은 외국에 나와서 많은 디자이너들을 만나 얘기해 보아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런 중요한 기술을 대학교 시절에 배웠다는 점은 내가 외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고 성공적으로 졸업을 하고 원하던 회사에 취업을 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디자인이란 정답이 없고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 시키는 완벽한 디자인은 존재할 수 없는 주관식 문제와 같다고 말해주고 싶다. 완벽한 디자인이란 정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창작이라는 그 자체를 즐기고 그것을 통해 남을 즐겁게 해주려는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어느 순간 많은 사람들이 당신들의 디자인에 행복해하고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박 철 훈 공업디자인학과 02학번
현 파머 존슨 요트(Palmer Johnson Yachts) 시니어 디자이너, 42·72m 외장 디자인 책임, 2011-현재
영국 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대학원 운송디자인학과, 2010-2012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업디자인학과 졸업, 2008
시각디자인학과
숨어있던 심장 하나가
1997년은 예기치 않은 IMF가 터진 해이자 내가 국민대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한 해이다. 그 여파로 경제는 꽁꽁 얼어붙었으나 내 심장은 철없이 콩닥거렸던 그때,한쪽에서는 스믈스믈 이 시대 슈퍼스타 ‘인터넷’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학년 중간과제로‘교수님에게 이메일 보내기’라는 요상한 과제가 떨어졌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메일 보내는 법을 몰라 헤맸을 정도로 인터넷이 생소한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가을, 시디과 교수님들은 참으로 기발하고 무모한 발상을 하게 되는데, 그건 막 등장한 최신기술, 플래시를 활용해 웹상에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사이버 전시회를 연다는 계획이었다. 1초에 5KB도 받지 못해 작품 용량 100KB를 넘으면 하염없이 로딩바를 쳐다봐야 했던 그 시절, 정말 몇 년 앞선 발상이었다.
그때 플래시라는 툴에 점점 반해가고 있던 나는, 그 찰떡같은 소식을 듣고 덜컥 졸전 준비위원회의 문을 두드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날부터 조형대 4층 한 구석방에서 몇 대의 컴퓨터와 함께 선배들과 동거동락하며 그 말도 안 되는 계획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한 땀 한 땀 마우스를 클릭했다. 나는 선배들이 준 할당량을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시간을 쏟아 부었지만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오타쿠들이 만든 작업들을 보며 아직 멀었구나 하고 좌절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몇 달 후, 그렇게 속절없이 부딪힌 후에 우린 결국 CYDEXwww.cydex.org라는사이버 졸업 전시회를 전 세계에 오픈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난 시공간을 초월하는 소통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내 이름을 건 전시회를 오픈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그 후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작업들을 해나갔고 1년 후인 3학년 여름방학, 드디어 나의 첫 번째 전시회 설은아닷컴www.seoleuna.com을 오픈하게 되었다. 내가 가진 느낌과 생각들을 플래시 모션그래픽과 인터랙션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누는 사이트였다. 사이트를 오픈하고 가슴이 뛰어 잠이 오지 않았던 첫날밤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삶은 이미 예정되었던 길에 들어선 것처럼 흥미로운 일들이 연속적으로 끌려오기 시작했고 내 속에 이미 숨어 있던 심장 하나가 비로소 뛰기 시작했다.
설 은 아 시각디자인학과 97학번
현 포스트비쥬얼 대표
런던광고제 동상 수상, 2014
뉴욕광고제 금·은·동상 동시 수상 및 심사위원 초청, 2006
깐느 국제광고제 사이버부분 황금사자상, 2004
선댄스 영화제 초청작 선정, 2000
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 그랑프리 선정, 1999
그 외 커뮤니케이션 아트, 클리오 광고제, 웨비어 워드 등 총 60여 회 해외광고제 수상
1000대 1의 경쟁을 뚫고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 2014 송년의 밤
1학년을 마치고 바로 군입대를 한 후 제대하여 복학했던 시기는 92년도였고, 이 시기에 당시 중앙도서관 건물을 증·개축하여 모두가 그리던 조형관에 보금자리를 틀었던 시기였는데, 하필 공사가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기실을 이사하게 되어 한쪽에서는 공사가, 한쪽에서는 수업이 이뤄지는 전쟁터에서 학구열을 불태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개인적으로는 더 고생스러웠던기억은 이때에 학생회장을 맡게 되어 사범대학에서부터 조형관까지 이사를 했던 일이다. 무거운 실기실 책상을 학생 전원이 방학 중에 등교하여 등에 지고 날랐던절대 잊지 못할 고마운 추억을 남기게 되었다.
시각디자인학과를 다니며 가장 큰 기억은 역시 유능한 스승님들의 가르침이었다. 디자이너로서가 아닌 사회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강조해주시며 창업의 꿈을 갖게 해주었던 강의 가 내 인생을 디자이너에서 디자인 기업가로 성장 발전시키게 된 계기가 되었다. 4학년 취업을 준비하던 당시에 “왜 디자이너는 박봉과 철야 등의 힘든 업무 환경을 이겨내 가면서 창작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디자이너가 우리 사회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존 제도권의 일원으로 머물기보다는 디자이너의 창조력을 바탕으 로 사업을 펼치고 기업을 설립하여 경영해야 할 것이라는 인생의 미래를 설계하게 되었다.
인생의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우선 가장 최고의 기업에 들어가서 그들의 장점이 무엇인지 배우고, 경험하고자 결심한 나는 삼성그룹의 공채 시험에 응시하여 1000:1이라는 당 시 경이적인 경쟁률을 뚫고 삼성중공업 산업디자인 센터에 입사하게 되었다. 3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관리의 삼성’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당시 삼성의 조직관리 능력과 인재투자에 깊은 감동과 실질적인 교육 투자의 수혜자가 되어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다. 입사 당시 회사의 인사 임원께서 신입사원 모두에게 꿈을 물어 보셨을 때 나는 당당히 3년 후 퇴사하여 멋진 사업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라고 말했다가, 분위기가 험악해졌던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퇴사 후 1998년도에 현재의 미디어포스를 설립하게 되었고 3명의 창업자로 시작했던 회사가 2015년 현재 19년의 역사와 100여 명의 직원을 보유한 디지털마케팅 분야의 당당한 리더가 되었다.
허 승 일 시각디자인학과 89학번
현 ㈜미디어포스얼라이언스 대표이사
벤처기업대상 국무총리상, 2009
디지털광고 회사 ㈜이노버스 설립
㈜미디어포스 창업
삼성중공업 산업디자인센터 근무
금속공예학과
마음이 담긴 물건들 – MMMG와 D&D
우리 주변의 사물들을 직접 손으로 만드는 과정을 익히면서 일상 사물들이 우리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1999년 학교를 졸업하면서 뜻을 함께 나누던 동문들, 유미영(공동대표), 오현석(CBB대표), 정경희(버드스틱대표)와, ‘디자이너’ 보다는 ‘제작자’로서 밀리미터밀리그람이라는 브랜드를 시작하였다.
공예를 전공하고 물건을 만들어 판매하며, 물건과 관계하는 모든 것을 향해 관심이 확장되었고, 우리 일상의 작은 사물들을 통해 형태나 기능을 넘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윤리적 순환의 문제까지 바라보게 되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너무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값싸고 흔한 물건들은 상점에 가득 차 있지만, ‘맥락’이 없는 이 값싼 물건들은 생산자와 유통업자 더 나아가 소비자인 우리들 모두를 패자로 만들 수밖에 없다. 물건 속에서 생산자의 의도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의 방향도 바뀌어 갈 것이다.
밀리미터밀리그람을 16년 동안 운영하던 나에게도 변화가 왔다. 2013년에는 소비의 질과 속도를 정상으로 만들자는 ‘롱라이프디자인Long Life Design’의 컨셉을 확장시킨 일본의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앤디파트먼트 프로젝트D&Department Project’와 뜻을 같이해,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을 이태원의 MMMG 매장에 함께 열었다. 일본에서 온 롱라이프 제품들을 소개하는 한편, 한국 땅에서도 올바른 생산자들을 만나고 그들을 소개하는 매장으로 지금까지 운영 중이다.
물건을 직접 만드는 공예가가 되지 않더라도, 공예를 통해 일상의 물건들을 다르게 보고 변화를 가할 수 있는 다양한 일들이 있다. 그것은 분명히 우리 사회를위한 일이다. 물건을 대하는 바른 태도, 올바른 의식이 담긴 소비문화가 확산될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그 변화를 위해 공예가의 행동과 태도가 요구되고 있다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
배 수 열 공예미술학과 금속공예전공 92학번
현 ㈜밀리미터밀리그람 공동대표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지식경제부장관 표창, 2010
Korea Design Award 제품디자인부문 영 디자이너상 수상, 2002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금속공예전공 입학, 2000
밀리미터밀리그람 브랜드 런칭, 1999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예미술학과 졸업, 1999
작가로 살기
이 시대에 전업 작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자유를 주는 일인가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이러한 특권(?)을 영위하기 위해선 많은 시간과 정열, 인내의 투자가 필요하다. 혹시 작가로의 길을 망설이며 고민에 빠져있는 동문들이 있다면 말하고 싶다. 조금만 더 노력하고 기다려보자고. 어쩌면 나도 기다리는 사람 중에 하나일지 모르지만 말이다.
대학원 시절에 겪었던 작업에 대한 고민과 열망을 기억한다. 그것은 얼마나 원대하고 추상적이었던가.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이 공예에 국한되어야 하는 것인지, 순수미술, 예술의 경계에서 디자인까지 아우르고 싶은 욕심을 가져도 되는 것인지... 결론이 없는 토론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내가 공예작가, 가구 디자이너, 심지어 대장장이로까지 불리는 것을 보면, 아득했던 그때의 고민과 토론이 단순한 안주거리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국민대학교 출신의 금속공예가로 자랑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의 노력도 있었지만 교수님들, 먼저 활동한 선배들, 각 분야에서 폭넓게 활약하고 있는 후배들의 땀과 노력의 결과이다.
10년 혹은 20년 후 지금 이 순간이 어떻게 기억될까? 19세기 초의 시인이며 신학자였던 콜러리지 Samuel Coleridge는 “강압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는 행복은 없다”고 말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현재를 즐길 수만 있다면, 이야말로 미래의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
이 대 원 공예미술학과 금속공예전공 89학번
현 금속공예가, 가구디자이너, AA공작소 운영
대장공예+3, 예술의전당 갤러리 7, 서울, 2013
개인전 7회, 단체전 100여 회
미국 남일리노이주립대 대학원(Blacksmith) M.F.A, 2003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금속공예전공 M.F.A, 1999
디자인대학원, 늦깎이 학생
졸업과 동시에 나는 교수님 추천으로 파인주얼리Fine Jewelry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었다. 그곳은 특급호텔에 위치한 귀금속 전문점으로, 단순히 귀금속 판매에 머무르지 않고 금속공예작가들을 후원하거나, 초대전을 개최하기도 했던 곳이다. 나는 직접 작품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분야의 전공자들과 교류하며 그들이 꿈을 이루는 데 적게나마 도움을 주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한 1980년대 후반에는 여성의 직업이 다양하지 않았고 더구나 미대를 졸업한 후에는 직업선택의 폭이 더욱 좁았다. 금속공예를 전공한 대다수의 선후배들은 대학원 을 진학하거나 개인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만들곤 했다. 큰 꿈을 안고 졸업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많았고 결혼과 동시에 전공과 멀어지는 친구들도 많았다. 그런 사회분위기에서 나는 감사하게도 25년 이상을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큰 행운이었다.
나는 늦깎이 대학원생이다. 디자인대학원에서의 공부는 직장을 다니면서 젊은 친구들과 경쟁하는 일이기에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이 2년 반의 시간은 나에게는 흘려보낼 수도 있던 일상에 신선한 활력을 불러 일으켰으며, 이제까지와는 전혀 또 다른 일에도 새롭게 도전할 수 있겠다는 의지가 자라날 수 있게 했다. 나는 그동안의 긴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도전을 시작해 나만의 파인주얼리샵 ‘보연’을 2015년 오픈했다. 고인 채로 멈추지 않고 과감히 새롭게 떨쳐나설 수 있는 용기를 낸 결과이다. 과거 내 인생의 미욱하나마 진지한 첫 발자국을 뗄 수 있게 격려해준, 그리고 지금의 내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다독여준 디자인대학원과 금속공예학과의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조 영 선 공예미술학과 금속공예전공 84학번
파인주얼리샵 보연 오픈, 2015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주얼리디자인전공 졸업, 2015
파인주얼리샵 명보랑 실장, 신라호텔, 2004-2015
명보랑 입사, 하이얏트호텔, 1988
국민대학교 공예미술학과 졸업, 1988
도자공예학과
세 번의 인연
학창시절에서 의미 없는 만남들은 없었고 평범한 인연도 없었다. 마치 미래의 어떤 시간들을 위해 이미 과거부터 준비되었던 것처럼 모든 만남은 각각의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대전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대학을 다니던 나는, 어느 날 국민대학교 공예미술학과를 졸업하신 선배님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새로운 운명을 꿈꾸게 되었다. 나는 미련 없이 다니던 학교를 떠나 재수의 길을 택했다. 입학 후 흙이라는 생소한 재료와의 만남의 충격으로 나는 또 어려움에 빠졌으나, 88학번 선배들과의 만남은 전공에 대한 혼란을 극복하고 분명 한 목적의식을 갖고 전공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아직도 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졸업을 전후해 친구들이 하나 둘 학교를 떠날 때, 지도교수이셨던 노경조 선생님과의 만남은 도자공예가로서 나의 학문적 성장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을 불혹의 나이에도 나는 여전히 느린 걸음이지만 꿈을 향해 꾸준히 걷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언제나 직선이 아닌 곡선의 형상으로 목표에 도달했던 것 같다.
Transformational Hybrid 935713-02 Porcelain과 혼합점토, 상감, Computer decal transfer, multi 소성, Rhinoceros 3D와 keyShot5, 24×25×85.5cm
박 중 원 생활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93학번
현 도예가
영국 웨일즈 대학 대학원 졸업, 2009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자공예학과 졸업, 2003
국민대학교 생활미술학과 도예공예전공 졸업, 2000
세계도자비엔날레 특별상 등 다수 수상
죽을 때까지 재미난 길
생활미술학과 2학년, 금속공예와 도자공예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나는 도자를 선택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돈이 덜 들 것 같았고 선배의 강압(?)이 있었다. 정 많은 선배 때문이었다. 실기실은 둥근 비닐하우스 모양의 양철집으로 기억하는데 선배 여학생들이 초벌 그릇을 들고 줄을 서면 기사님이 유약을 발라주셨다. 큰 경유가마에 불을 때는 날은 잔칫날이었다. 돼지머리 놓고 고사를 지낸 다음 막걸리와 함께 먹고 흥에 취해 노닥거리다가 ‘가마실’을 찜질방 삼아 숙면했다.
복학을 하면서 도자기로 중소기업을 이루겠다는 꿈을 꾸었다. 대학원을 마친 1989년, 신림동 부모님 집의 지하방을 개조하고 좁은 마당에 가마를 놓아 드디어 나만의 공방을 설립 했으나, 만들어 팔 곳을 몰라 바퀴달린 여행용 가방을 끌고 동네 시장에서부터 인사동, 남대문시장,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등을 찾아 다녔다. 1996년에는 화성군에 넓은 작업실에서 6명이 함께 일하며 만든 많은 양의 도자기를 택배 운송에 의한 전국적인 납품을 시작했다.
이 같은 노력들이 쌓여 지금은 경치 좋고 공기 좋은 이천의 산수유마을에 자리 잡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중소기업의 꿈은 접었으나, 죽을 때까지 재미있을 것 같은 작업을 계속하며 행복한 작가로 살고 있다.
정인모 작품
정 인 모 생활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79학번
국민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 1990-현재
공방 모완도예 운영, 1989-현재
개인전 3회, 단체전 100여 회, 1987-현재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자공예학과 졸업, 1988
국민대학교 생활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졸업, 1986
365일 설렘으로
물레 위에서 마술처럼 변해가는 그릇들, 가마에서 보석처럼 변해 나오는 각양각색의 작품들을 보며 학부 시절부터 도자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일 년 365일 중 학교에 나가지 않 은 날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지금의 분청작업도 3학년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분청사기특별전을 통해 전통 분청작품들은 새롭게 보게 되고 그때부터 옛 도자기와 문화에 대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마침 분청작업을 하는 송정인 선배님이 첫 강의를 나오실 때였고, 노경조 교수님이 또한 길잡이가 되어 주셨다. 박물관, 사찰, 개인수장가,고미술상가, 가마터에서 접한 모든 것이 새로웠고 경이로웠다.
가마터에서 사금파리를 찾듯 눈을 반짝이며 벌판을 뒤지던 그 마음. 옛 절집을 함께 걸으며 느꼈던 호연지기, 그런 마음들을 모아 1997년 꿈에 그리던 작업장을 양평 중미산 산자락에 열었다. 분청사기의 여러 장식기법 중 하나인 박지분청 제작의 즐거움에 빠져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감사하게도 큰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었고 또 후배들을 지도하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의 학교를 오르는 그 행복한 설렘. 가마 문을 열 때와 같은 그 기분을 나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허 상 욱 공예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88학번
현 도예가
개인전 7회,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7회 출품
영국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 등 여러 미술관에 작품소장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도예학과 졸업, 1998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예미술학과 도자공예전공 졸업, 1995
의상디자인학과
‘무엇이 될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생각하면 교수님들께 참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초보적인 저의 생각을 가지고 선생님들께 거침없이 주장하고, 요구하고, 시키는 일은 안하고 엉뚱한 일만 하는 저를 그래도 응 원해 주시고 지도해주셨던 교수님들이 계셨기에 제 꿈을 구체화 할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졸업 작품 발표회 때도 파티한복이나 예복드레스가 아닌 생활복을 중심으로 한 소박한 우리 옷을 무대에 올릴 수 있게 되었고, 그 계기로 저는 한복의 생활화에 나의 미래를 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될 것인가, 어떻게 남들에게 비추어질 것인가가 목표가 되어선 안 된다고. 하루하루를 어떤 모습, 어떤 자세로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노력하다 보면, 무엇인가가 되는 거라고.저도 늘 초심을 잃지 않고 사는, 자기 관리를 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 남 희 의상디자인학과 87학번
열 가지 장생의 이야기를 담은 영 브랜드 꼬마크(Ccomaque) 런칭, 2014
문화관광체육부 중소기업 문화대상 수상, 2013
2006 Han 브랜드 박람회 문화관광부장관상(한복부문 최우수상), 2006
우리옷 돌실나이 설립, 1995. 1.
나의 꿈이 시작되었던 곳
한산모시, 안동포 등의 우리 전통 소재를 이용한 이새의 디자인
조형대 안에서의 디자인에 관련된 다양한 체험들과 조형전은 공동으로 협업해서 하나의 디자인이 탄생되는 과정을 통해 인고의 고통과 성취감의 희열을 동시에 맛보게 하였다. 물론
동기들 간의 우애는 덤으로 얻은 선물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교수님 한분 한분의 열정과 사랑은 지금의 내가 성장하는 데 충분한 밑거름이 되었다. 같은 학번 동기들과 ‘우리 입거리 연구회’를 만들어 정규 커리큘럼에는 부족했던 우리복식과 관련된 부분을 같이 자료를 찾고 토론하며 학구열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패션경기가 불황으로 치닫고 있는 요즘과 같은 상황에도 ㈜이새는 뚜렷한 콘셉트와 특화된 소재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니, 조형대학에서의 학창시절은 지금의 나를 만들고 현재 성 공적인 브랜드사업의 커다란 주춧돌이 되어 준 셈이다. 그런 주춧돌의 역할을 조형대가 영원히 이어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 경 아 의상디자인학과 87학번
현 ㈜이새 FnC 대표이사, 2006-현재
이새 브랜드 론칭, 2005
돌실나이 공동대표, 1995-2001
디자인 대학원 실내설계전공
공간철학
그 중에서도 박길룡 교수님의 설계 스튜디오 및 일반 이론 수업은 매 학기마다 백미였다. 해박한 지식과 명강의를 통해 학생들은 밤늦게까지 공간에 대한 토론과 질의를 통해 디자인의 본질적 문제를 탐구했고 실무에서의 답답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 자신도 디자인의 개념, 목적, 과정 철학 등을 다시 한 번 사고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었다. 담당 지도 교수님의 역할은 당시의 모든 학생들에게 많은 깨달음을 주셨고, 조형대만의 실험적 창의성이라는 교육이념은 지금도 커다란 토대가 되고 있다. 그래서 지난 디자인대학원 시절은 내가 디자인을 하는 데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디자인 할 것인가에 대한 공간철학을 갖게 했고 이를 통해 후배들에게도 전하려 한다.
유 정 한 디자인대학원 실내설계전공 94학번
현 유정한 스페이스 대표,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
Korea Design Award Space 부문 대상 수상, 2014
한국공간디자인대상, 한국 실내건축가 협회상 및 갈메상 수상, 2009, 2012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실내디자인전공
붉은 벽돌에 담은 그리운 풍경
서초동 ‘Brown Haus’ 사옥 건축설계 및 인테리어, 2014
나는 지금 인테리어와 건축설계, 환경디자인을 주 업무로 하는 디자인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당시 고작 실무경력 2년 만에 회사를 만들었을 때 주변의 우려는 컸지만 어느새 올해로 12년이 되었다. 돌이켜보니 짧은 경력과 젊은 나이에 용감하게 회사를 열고, 치열한 디자인바닥에서 나름의 차별화전략으로 회사를 운영해올수 있었던 근간에는 조형대학과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의 소중한 경험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나는 건축학도였지만 조형대학의 테두리 안에서 다양한 온, 오프라인 활동으로 타 디자인전공 친구들과 밀접한 교류를 할 수 있었다. 그러한 교류는 어렴풋이나마 건축과 디자인의 접점에 대한 고민, 좀 더 포괄적인 안목에서 사람을 담는 ‘조형(디자인)’의 가치 등 타대학의 건축학도였으면 가질 수 없었던 고민과 이해의 시간을 보내는 계기가 되었다. 건축학과를 졸업하던 2000년,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통합디자인교육을 지향한다는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 주저 없이 실내디자인전공 1기로 진학하였다.
‘실무 없는 이론은 공허하고, 이론 없는 실무는 천하다’라는 말이 있다. 굴지의 기업들과 함께 산학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론과 연구를 겸하는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의 2년은 말 그대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통합디자인’ 능력을 갖출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디자인과 건축이 실용학문이라면 이론과 실무, 가치와 생활, 개념과 실제의 연결점을 고민하고, 실험하고, 찾고, 실현하는 일련의 과정 전체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밤샘 작업을 마치고 늘어지게 조형대학 교정에 앉아 따스한 봄 햇살을 만끽하던 20년 전 그 느낌을 곱씹어본다. 아! 언제나 돌아가고픈 그리운 풍경이다.
전 미 화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실내디자인전공 00학번, 건축학과 95학번
현 키플랜 건축사사무소 & 디자인 대표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실내디자인전공 박사과정 수료, 2010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실내디자인학과 출강 및 겸임교수, 유학대학교 출강, 2009-2014
㈜한샘 디자인개발실, ㈜민경식건축사사무소 인테리어팀 근무, 2002-2003
일반대학원 공간디자인학과
새 우물을 파다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공간디자인학과가 처음으로 개설되어 1기로 대학원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일반대학원은 전문대학원과는 다르게 이론 위주의 교육적 차별화가 있어서 나 의 진학의도와 맞는 듯 했다. 처음에는 별다른 기대가 없었고 그저 학업에 대한 약간의 갈증만 해소해야겠다는 오만한 생각은 수업을 들을수록 달라지는 나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해온 실무들과 비슷한 듯 하지만 전혀 다른 디자인적 방법론을 배우면서 새로운 생각들로 채워지기 시작하였고, 디자인과 인문학의 융합적 디자인 방법론을 접하면서 좀 더 디자인에 대한 깊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후 나의 디자인은 대학원을 다니면서 확연히 달라지게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학원 과정을 마친 후,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였지만 논문을 잠시 보류하고 다시 실무의 현장으로 뛰어 들었다. 공연은 텍스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로 디자인 컨셉을 출발하게 풀어 나가야 한다. 따라서 대학원에서 공부한 인문학적 사유들을 통해 작품이 주는 철학적 메시지와 문맥적 상황과 심리묘사 들을 더 연구하게 되었고, 디자인의 격을 올리기 위한 시도를 함으로써 더 많은 호평을 받게 되었다. 당당함과 자유로움으로 가득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마치 인생에서의 새로운 탈피과정을 겪고 난 뒤 더욱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느낌이었다.
황 수 연 일반대학원 공간디자인학과 00학번
현 무대디자이너, 소품디자이너
서울종합예술학교 출강, 2013
국립극장 소품디자이너, 2005-2006
영상디자인학과
첫 입학, 졸업, 진학생으로서의 감회
‘처음’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시도나 도전, 또는 시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새로움을 계속해서 직면하고, 또 그안에서 경험하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2010년 영상디자인학과의 첫 입학생, 2014년에는 첫 졸업생으로, 그리고 새로 개설된 대학원의 첫 진학생으로 학과의 모든 처음을 함께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게는 의미가 깊다.
영상매체에 대한 흥미가 가장 앞섰지만, 입학할 때부터 ‘디자인 융합’ 이라는 키워드에 더욱 관심이 많았다. 모든 디자인 분야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다양한 요소들이 섞여 새롭고 창의적인 가치를 창출해 내는 매력은 내가 영상디자인학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지난 4년은 ‘Entertainment Design’이라는 학과의 영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화, 기술, 디자인이 융합하여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영상의 스펙트럼을 경험하고,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1기로 영상디자인학과에 들어온 이후, 평소 음악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만큼 사운드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주로 진행했으며, 학과의 다양한 커리큘럼 덕분에 평소 하고 싶은 자유로운작업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졸업 작품으로는 연극과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무대를 디자인하고, 사운드에 맞춰 오브제들이 움직이는 Live Action Video와 3D Animation이 결합된 영상을 제작했는데,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오랜 시간과 노력,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만들어낸 작품이 관객들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 나에게도 기쁨이었다.
그리고 2014년, 졸업과 함께 새로 개설된 일반대학원 영상디자인학과에 진학하여 이전의 작업을 바탕으로 더욱 실험적이고 심화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디지털 매체를 활용한 공간 연출 분야를 연구하여 관객의 물리적 체험을 공간적으로 확장하며 무대 자체로 드라마를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졸업작품 ‘The Magician’, Live Action Video, 3D Animation, 10분, 2014
구 혜 원 영상디자인학과 10학번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영상디자인학과 졸업, 2014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영상디자인학과 졸업전시회 로그플래닛전, 2013
두 전공을 공부하다 보면
입학할 때부터 해당 학과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는 학생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와 19살 국민대학교에 원서를 넣던 때를 떠올리 는 것도 우습지만, 그때 당시 학과를 선택한 내 나름의 기준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터무니 없을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지 않았나 싶다. 내 경우엔 내 스스로가 디자인적인 성향이 아 니라 판단하여 공예과를 지원했었다. 고작 입시를 몇 년 한 것으로 그런 판단을 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내 스스로가 참 용감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대단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입학 을 하더라도 그것이 적성을 보장한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 의문이다. 조형대학의 모든 학과가 그러하듯 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해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원할 수도, 접 을 수도 없는 것이다.
다전공 기간 중의 작품‘Missng’, Live Action Video, Motion Graphics, 5분, 2013
물론, 처음 다전공생으로서 영상디자인학과를 드나들기 시작 했을 때 이미 훈련된 학생들과 처음 시작하는 나의 능력 차이로 힘든 부분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주로 개인 단위로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예과의 성향과 달리 팀 작업에 익숙한 영상디자인학과 학생들은 내가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은 배려해주고 도와주었다. 지금도 이 부분에 대해선 여전히 말로 표현 못할 고마움이 있다. 당시 경험치가 없던 내 의견도 존중해주며 나를 마치 입학 동기처럼 의지하고 같이 고생해주었다.
지금은 모두 너무나 사랑하는 동료들이다. 지금 나는 어느새 영상디자인학과의 1기 대학원생으로 입학하여 재학 중이다. 다전공과정을 통해 해온 경험들은 흥미롭고 다양했지만 한편으로 영상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바랐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대학원 재학 동안 또 다른 배움, 그리고 또 다른 소중한 사람들이 있어왔다. 머지않은 날, 지금까지 5년 넘게 쉬지 않고 다녀온 학교를 떠나게 될 것이다. 한동안은 주위에 눈 돌릴 겨를 없이 지내게 되지 않을까.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지든 영상디자인학과에서의 지나온 3년간의 경험은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리게 해 줄 것이다. 선생님, 친구들에게 언제나 감사한 마음이다.
김 민 선 일반대학원 영상디자인전공 14학번
국민대학교 일반대학원 영상디자인전공 입학, 2014
국민대학교 도자공예학과 졸업, 영상디자인 부전공, 2014
또 다른 이야기
인생을 바꾼 한국행
금속공예학과
조형대 최초의 교환학생
캐나다 할리팩스에 위치한 노바스코시아미술디자인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7년, 나는 지도교수님의 권유로 학생교환 프로그램을 막 시작한 국민대학교로 가기위해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 모험은 내 인생을 바꿔버렸다.
학교식당에서의 첫 아침식사는 미역국에 공기밥, 세 가지 반찬이었으며, 한국인들이 금속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정감 넘치는 붉은색 벽돌로 이루어진 조형대학 건물은 그 배경을 이룬 푸른 산세와 절묘하게 어우러져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수업 첫 주부터 마주친 뛰어난 교수님들과 학생들—그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금속과 다양한 재료를 통해 훌륭한 작품을 디자인하고 만들어내는 수많은 이들의 모습을 접하면서, 여기가 바로 금속공예 전공생이었던 내가 꿈꾸어왔던 이상향이라고 생각했다.
수업은 학교 밖으로도 이어졌다. 야외 오리엔테이션, 마치 군대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단체 활동과 소그룹 모임, 온갖 게임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들어선 구식 화장실에서의 황당한 경험 등, 매일 새로운 것들에 부딪히고 배워 갔던 추억이 새록새록 쌓였다. 후문에 위치한 명원민속관에서 접한 인간문화재 강사로부터의 한국 전통다도수업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문화적 충격과 엄청난 과제로 인해 나는 학기 내내 바쁠 수밖에 없었으나 교수님들의 각별한 지도로 인해 큰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같은 학년의 동료들은 늘 방황하지 않고 답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알려주었다. 이들보다 나이가 많았던 나는 대학원생들과도 친구가 되었으며, 어느 날 바다를 보여주겠다는 이들을 따라 동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한국의 친구 모두와 나는 다른 문화를 함께 공유하는 방법을 배워나갔던 것이다.
한 해 동안 국민대학교에서 체험했던 교환학생 경험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보여준 친절과 호의 그리고 우정에 늘 감사하며 조형대학 40년의 역사 속에 한 부분이 된 것을 자축하고 싶다.
금속공예학과 인생을 바꾼 한국행
조형대 최초의 교환학생
이 안 요 브 도 석 캐나다 노바스코시아미술대학, 97년 금속공예학과에서 수학
조형대학 최초의 교환학생이었던 이안 요브도석은 1997년 1년 동안 금속공예학과 교환학생으로 수학했으며, 귀국 후 노바스코시아 예술디자인대학을 졸업한 후 한국의 국비장학생으로 다시 우리대학 대학원 금속공예학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009년부터 계원예술대학 디지털이미지 디자인학과의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금속공예가, 디자이너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필연 같은 우연
콘텐츠디자인전공
부부 동문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콘텐츠 랩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1학기를 보내며 배우고 연구하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지만 흥분되는 것들이었습니다. 학부 때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신세계처럼 여겨졌고 내가 해야 할일이 여기 다 모인 것처럼 하나하나가 모두 즐거웠습니다. 새로 들어올 신입생 면접 때 지금의 아내를 처음 만났습니다. 랩 실이 우리의 까페가 되어주고 뒤뜰이 우리의 산책로가 되어주며 매일 함께 과제하며 밤새우고 수업 받고 하는 학교생활이 매일 즐겁고 설레는 나날이었습니다. 같은 학교의 같은 전공에 같은 수업을 받는다는 것이 항상 함께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더욱 즐겁게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필연 같은 우연이라는 것이 바로 우리 부부를 가리키는 것처럼, 우연의 만남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정해진 것처럼 결혼을 약속하고 제가 졸업하던 해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미래가불분명한 학생의 결혼이기에 주변의 걱정이 많았지만 순조롭게 결혼했고 아이를 낳고 지금도 나름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미래의 불확실성보단 함께 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했으며 서로를 의심하지 않고 사랑했던 것이 지금의 행복을 만들어 줬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아내는 두 아이의 엄마로, 또 웹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는 프로젝션매핑을 통한 미디어 아트 콘텐츠 제작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학원 생활에 있어서 또 하나 필연 같은 우연은 현재 제가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션 매핑입니다. Pablo Valbuena의 ‘Augmented Sculpture’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공간 과 오브제, 미디어가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런 종류의 작품들은 많았지만 프로젝션매핑은 좀 더 새로웠습니다. 공간과 오브제가 정확히 일치하며 그것이 또한 살아 움직이듯이 이야기를 하며 흘러 다니는 모습은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저에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과제와 연구방향이 프로젝션매핑으로 이어졌고, 당시 기술 레퍼런스가 전무한 실정이었고 부족한 영어실력에도 인터넷을 떠돌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픽 툴 역시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해 독학으로 공부하며 기초적인 비주얼부터 만들어 갔습니다. 공간과 오브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나씩 작품을 만들어가며 발전시켰고 졸업논문을 거쳐 중 소기업청의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루잇’ 이라는 회사를 창업하였고 미디어아트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시 프로젝션 맵핑 방향으로 취업할 회사가 없던 터라 직접 사업화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프로젝션매핑의 기술과 기법에 초점이 많이 이루어졌다면 현재는 회사의 아이덴티티를 잡아가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소프트웨어부터 하드웨어까지 다 양하고 빠르게 기술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현재는 오히려 콘텐츠가 더욱 집중되고 있습니다. 프로젝션매핑이라는 기술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구분 없이 표현되는 판타지 는 대중에게 감동과 즐거움 이상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현재 ‘루잇’을 통해 테마파크, 공연, 웨딩, 관광, 광고, 전시 등 다양한 프로젝션매핑의 새로운 길을 꾸려가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조금씩 판로가 개척되고 있고 내부에서도 재미난 다양한 방향의 작품들을 만들며 즐겁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 정 호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콘텐츠디자인전공, 09학번
현재 미디어아트디자인 회사 ‘루잇’ 대표
실내 동물 테마파크 ‘주렁주렁’ 프로젝트 등
동문이라는 또 다른 인연
의상·시각디자인학과
부녀 동문
1980년 3월
나는 국민대학 조형학부 의상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조형造形’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게 느껴질 때, 군대까지 다녀온 남자가 의상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입학 직후는 물론이요 재학기간 내내 만나는 사람들에게 조형이라는 대학명칭에 대해 설명해야 했고, 남자가 의상학과에 다닌다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약간은 유명인사가 되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의상학과는 여자만이 입학할 수 있는 금남의 학과였습니다. 하지만 국민대학 조형학부에서는 미래를 앞서보는 탁월한 안목으로 의상학과에도 재능 있는 남학생의 입학을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대학보다 먼저 남학생의 입학을 허용한 결과, 의상디자인이나 의류마케팅에 뜻이 있는 남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자졸 업생은 주로 디자인분야에서 남자졸업생은 의류기획/마케팅 분야에서 능력과 실적을 보이면서, 의상학과는 전체 조형대학의 위상을 앞장서서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하였습니다.
1984년 2월
시간이 흘러 입학한 지 4년 후 졸업하였고, 동시에 남성복 선두업체에 입사하였습니다. 입사 후 패션/의류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뛰어난 업무능력을 발휘하여, 2년 만에
계장, 또 2년 만에 대리, 다시 2년 만에 과장, 다시 2년 만에 차장으로 고속 승진하였습니다. 8년 만에 주요브랜드의 사업부장을 맡으면서 회사전체 4개 브랜드의 상품기획을 총괄
하게 된 것입니다. 근무하는 동안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캐나다, 일본, 홍콩등 패션산업이 발전되어 있던 나라에 출장 다니면서 패션산업의 가치를 배웠는데, 이는 안목이 넓어지는 기회였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대학에서 창의적이면서도 실용적인 커리큘럼으로 교육받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조형대학 내 다른 디자인학과 친구들
과의 교류에서 얻은 영감이 사람과 디자인의 소통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형대학의 분위기가 사회에 진출했을 때 실무에서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도록 훈련
받은 결과라고 믿습니다.
요컨대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은 디자인 및 패션산업이 가까운 미래에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여줄 블루오션으로 판단하여 타 대학교보다 먼저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창조적이면서도 실용적인 교육을 통하여 능력 있는 졸업생을 배출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2008년 3월
막내딸이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시각디자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조형대학은 이미 위상이 높아질 대로 높아져, 과연 내 딸이 입학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할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좋
은 성적으로 입학하여 가족들이 기뻐하였습니다. 남들에게 딸 자랑을 하면, 30여 년 전 내가 입학할 때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이상하다고 바라보던 사람들이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
았군” 하면서 부러워합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딸이라는 인연에 더하여 동문이라는 또 다른 인연을 갖게 되었습니다.
2015년 2월
딸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UABUniversitat Autonoma de Barcelona의 ‘조형대학’ 격인 EINA대학의 대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2015년 9월 석사학위를 받기 위하여 스페인어로 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딸은 대학 3학년부터 스페인 유학을 꿈꾸어 왔습니다. 19세기말 20세기 초에 걸쳐 최고의 조형건축가와 예술가인 가우디Antoni Gaudi, 피카소Pablo Picasso, 달리Salvador Dali 등이 나고 자라고 활동한 바르셀로나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올해가 조형대학 설립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끊임없이 노력하여 한국에서 디자인분야 최고의 대학으로 자리매김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말고, 앞 으로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 눈을 돌려 글로벌한 역량을 지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조형대학이 한국을 넘어 글로벌 디자인 대학으로 성장하고 인정받는 데에 우리 딸의 고생과 열정이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바르셀로나에서 먹고 마시 고 울고 웃으며, 몸과 마음을 부딪쳐 유럽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는 우리 딸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조형대학 설립 4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아버지에서 딸로 이어진 조형대학동문이 자랑스럽습니다.
진 용 은 의상디자인학과, 80학번
진 산 호 시각디자인학과, 08학번
사심 가득한 인터뷰
영상·시각디자인학과
부녀 동문
3남매에 동문
동명 안녕하세요! 글 의뢰를 받아, 부끄럽지만 조형대학을 다니고 있는 3남매는 어떻게 학교를 다니는지, 어떤 고충이 있는지 셋이서 털어놓아보려 합니다. 게스트로 시각디자인과 두 분을 모셨습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슬기 안녕하세요. 시각디자인과 13학번 김슬기입니다. 흠, 멘트가 좀 오글거리지 않나요?
지혜 안녕하세요! 시각디자인과 14학번 김지혜 라고 합니다. 슬프게도 3남매 중 혼자 재수를 했기 때문에 슬기와 같은 나이지만 마지막으로 조형대학에 들어왔어요.
동명 저는 영상디자인학과 12학번 김동명입니다. 자기소개는 숫자 말고 개성 있게 하고 싶지만 이렇게 소개해야 알아보기 쉬우니까요! 세 명 다 정상은 아니라서 그러면 너무 길어질 것 같네요.
지혜 맞습니다. 저희 집안은 다자녀교육의 긍정적 효과로 인해 평등한 인간관계를 추구하지요.
슬기 하하, 무슨 말도 안 되는…….
동명 좋아요. 많은 분들이 조형대에 세 명이 다니니 편한 점이 있는지 궁금해 하시던데요…. 딱히 조형대학에 세 명이 다닌다고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아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느낌인 거죠?
슬기 저 같은 경우에는 신입생 시절에 영상디자인과 오빠가 있으니까 배울 수 있는 게 많을 거라 기대했죠. 그런데 막상 학교를 와보니 오빠는 자기도 바쁜 처지라 하나도 안 도와주고 모든 걸 혼자 했어야만 했던 슬픈 기억이 있네요.
동명 잠깐… 사실이 아닙니다!
슬기 다만 기숙사생인데도 자취하는 오빠 방에 놀러 가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했다는 게 편한 점이라 할 수 있겠네요. 또 오빠가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먹을 것을 많이 만들어 줬어요. 제가 돈이 궁할 때나, 가끔은…
동명 자, 잡담은 그만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죠.
슬기 아니 본론 말하고 있잖아…!
동명 지혜 씨는 어떤 게 편했나요?
슬기 내 말 좀…!
지혜 저는 쌍둥이인 슬기가 같은 과라서 좋았던 점은 시각디자인과의 행사나 분위기를 차근차근 잘 가르쳐 줬다는 거예요. 전공을 선택할 때도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지원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동명이 영상디자인학과
라서 후에 영상디자인학과에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된것 같아요.
동명 안타깝게도 학과 사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없습니다만….
지혜 조용히 해. 아직 희망은 있으니까….
슬기 그런 건 조형대 학생에게는 있을 수가 없어.
지혜 맞다, 그리고 조형대 학생들은 특성상 야간작업을 많이 하는데 형제가 같이 야간작업하면 집 가는 길도좀 덜 위험하고…. 먹을 것도 가끔 사달라고 하고. 그래서 좋았어요.
동명 저는 밤에 조형관을 출입하고 싶으면 출입증이 없어도 콜택시가 두 명이나 있으니, 전화만 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죠, 후후. 또, 집에 가면 누가 누워 자고 있을지 모른다는 게 서스펜스인데요. 과제를 끝내고 먼저 컴백 홈하는 사람이 침대를 차지하는 법이죠.
슬기 하지만 침대는 대개 비어있었죠. (침울)
동명 저희가 3명이라, 가족 장학금에 대해서도 많이들 궁금해 하시던데요.
지혜 네. 세 명이나 있는데 아무도 장학금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아서 기한을 넘겼던 기억이 있어요.
슬기 아니, 그거 말고… 학교에서 세 명이 학사과정을 밟는 경우가 없었다는 걸 말하는 것 같은데.
동명 대학원을 제외하고는 세 명이 학교를 동시에 다니는 경우는 불가능하다 여겨졌는지, 장학금 규정에도 3명의 경우는 추가 혜택이 언급조차 없더군요. 흑.
지혜 그래서 그 핑계로 장학금을 받으려고 발버둥쳤는데, 본부 측에서도 좀 불쌍하게 여겨주더라고요.
동명 네, 조금만 더 불쌍히 여겨주면 좋겠어요.
슬기 맞아요. 다들 졸업 전에 조형대학에서 이건 꼭 해보고 싶다 하는 거 있나요?
지혜 저는 뭔가 딱히 이룬다기보다 매 순간순간 학업보다도 제가 시각디자인학과에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을 놓치지 않으며 지내고 싶어요. 소모임이라든지, 행사라든지. 나중에 돌아봤을 때 성적보다 그런 것들이 제일 기억에 남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슬기 저는 좀 웃기는 얘긴데 몸이 시키는 것을 해보고 싶어요. 피곤할 땐 쉰다든가….
동명 에둘러 말하지 말고 그냥 과제가 많다고 말해요!
슬기 내키는 대로 사는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엉엉.
동명 저는 조형대 타과 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한 작업을
꼭 만들어보고 싶어요. 조형대가 아니더라도 영상에 적용할 수 있는 분야가 우리학교에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
서요. 사실은 음악학부와 교류를 통해 작업을 하고 싶은데 범접하기 까다로운 곳인 것 같더라고요….
지혜 저도 예술대학과의 교류는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동명 마지막으로 조형대학에 다니면서 당신이 생각하는 꿀팁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지혜 꿀팁은 만들어 가는 거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역시 제일 꿀팁은 누구의 비판이든 자유롭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게 학교 생활을 순조롭게 만들어 줄 테니까요.
동명 역시 지성을 대표하시는군요. 저는 학교 쥐구멍 같은 걸 생각했는데….
슬기 꿀팁은… 저도 쥐구멍…이랑 예술대학 카페에 맛있는 거 많다고…….
지혜 그리고 지각했을 때 택시 타고 조형관 뒤로 돌아오시라고.
슬기 복지관에 있는 파스타 집에서 파는 컵밥이 꽤 가격대비 이득이라는 이야기를… 흠흠.
동명 그건 조형대의 꿀팁이랑 거리가 좀 있어 보이네요.
슬기 아… 네, 실례했습니다. 사실 타과가 많이 궁금한 게 현실이지요.
지혜 저는 조형대 근처 이XX 카페에 미모의 알바생이 있다는 점을 높이 사고 싶군요.
슬기 글쎄요, 제가 거기서 알바를 하는데 미모의 알바생은 본 기억이… 착각하신 듯 하네요.
동명 비밀스런 질문이 하나 있는데… 시각디자인과의최고 미모의 교수님은 누구신가요?
지혜 최승준 교수님이요.
슬기 저는 김양수 교수님이라 생각하는데….
지혜 사실 두 분 다 우열을 겨루기가 힘든 분들이시죠.
동명 하하,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사심 가득한 인터뷰였습니다.
김 동 명 영상디자인학과, 12학번
김 슬 기 시각디자인학과, 13학번
김 지 혜 시각디자인학과, 14학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