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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칼럼 | 내가 본 조형대학과 한국 디자인 교육==== | | ====외부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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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했던 디자인 교육, 행복을 줄 디자인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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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형대학의 야외 스케치 행사, 태릉, 1992
| | '''내가 본 조형대학과 한국 디자인 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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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대학의 전공 교육은 그 대학의 정체성을 만들 뿐 아니라 다른 대학들의 전공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말하자면, 어느 대학의 디자인 교육이 그 분야 사람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게 되면 적어도 국내 대학의 디자인 교육 전반에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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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이하, 조형대)의 디자인 교육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할 사례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 보면, 1980년대 후반에는 지금처럼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할 매체가 없었기 때문에 조형대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풍문으로’ 들어야 했다. 조형대학에 디자인과 건축이 함께 있다는 것,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다는 것, 조형전에 전 학년이 참여한다는 것 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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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당시에는 조형대의 대외적인 활동이 지속적으로 대중에게 노출되면서 짧은 기간에 이목을 끌었고 결과적으로는 조형대 디자인 교육이 서울대와 홍대의 경쟁구도에 균열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의 디자인 교육 전체로 본다면 새로운 구도, 다양한 모델이 형성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것은 오랫동안 굳어져 온 관행을 벗어나기 힘든 두 학교들에 비해 신생 대학인 조형대가 당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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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컨대, ‘산업미술’이라든가 ‘산업도안’이라는 학과 명칭을 사용하던 시절에 조형대가 ‘시각디자인’, ‘공업디자인’이라는 대학 학과 명칭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단과대학의 명칭 자체도 미술대학이 아닌 조형대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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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젠가 한 매체에 실린 정시화 교수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조형대는 1970년대 말에 구조조정을 통해서 응용미술관련 학과로만 구성한 한국 최초의 디자인 대학인 조형대학을 만들었으며, 원래는 ‘디자인 대학’이라고 명명하려 했지만 당시 일반적인 사회통념이 디자인을 외래어로 인식하고 있어 부득이 ‘조형대학’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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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에는 정부의 정책과 대학 경쟁력 때문에 다양한 단과대학 구성이 이뤄지고 있고 학과 명칭도 제각각이었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주목할 만한 시도였다. 신생 대학이라고 해서 어느 대학이나 이런 시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자적인 디자인 대학을 선언하려는 교수들의 의지가 확고해야만 가능하다. 조형대학 설립 초기에 3년간 연속해서 전국 순회 조형전을 추진했다는 것이 이 사실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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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형전을 비롯해서 교육의 비전을 제시하려고 한 노력은 90년대에 전국적으로 디자인학과가 각 대학에 신설되던 시기와 맞물려 파급 효과가 한 층 컸다. 디자인 분야에서 후발 대학들은 자신들의 포지셔닝이 필요했고 어떻게든 인지도를 높여야 했었는데 이때 조형대가 롤모델이 되었던 것이다. 즉, 상대적으로 전통이 짧은 대학이라 하더라도 영향력 있는 대학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이렇게 ‘우리도 조형대처럼’ 해보자는 노력이 곳곳에서 나타났지만 현실적으로는 제 2의 조형대가 등장하기는 어려웠다. 디자인학과가 급증했고 다들 비슷비슷한 전략을 취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전시 형태로 학교 활동을 보여주거나 디자인공모전에 출품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는 그나마 이런 활동도 지속적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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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이런 현상은 결과적으로 조형대의 인지도를 더욱 높여주는 역할을 했고 이미 안정적인 교육 과정을 갖춘 조형대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입시 제도와 컴퓨터 교육에서 나타났다. 디자인학과의 입시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미술대학의 입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디자인 입시 실기에서 어느 대학이든 소묘와 구성으로 평가했었는데 이것은 서양화과가 소묘와 정물화로 평가하는 틀을 따른 것이었다. 조형대는 과감하게 구성 시험을 폐지했다. 이후에 실기 전형에 몇 차례 변화가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관행을 벗어난 선발 방식으로 시도했다는 점이다. 또 80년대말에 컴퓨터실을 구성하여 교과목에 반영했던 것도 이에 못지 않은 과감한 시도였다. 그 당시에 그만한 장비를 갖춘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예산 부담이 큰 일이었다. 게다가 전산학과도 아닌 디자인학과에 그만한 투자를 한다는 것은 몹시 이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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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실은 학생들이 학교에 오래 머물러 작업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요즘처럼 개인이 노트북을 들고다니는 상황이 아니었고 집에 데스크탑을 소유한 학생을 찾아보기 힘든 때였기 때문이다. 필자가 대학원에 재학 중일 때도 밤늦도록 학생들이 컴퓨터실을 드나들면서 작업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장비를 어렵게 갖추었다고 해도 디자이너들이 볼 만한 매뉴얼도, 가르칠 강사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학습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관심있는 학생이 어느 정도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게 되면 후배들에게 알려주는 일이 빈번했고 그런 상호관계가 지속되면서 자연스레 학교 생활이 활기찬 모습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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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대 대학원을 다녔던 개인적인 경험 외에도 조형대의 디자인 교육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두어 번 있었다.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기 시작해서 처음 맡은 전시가 디자인교육전(2001)이었는데 그때 국내 여러 대학의 교과과정을 살펴보았다. 당시에 전시의 영문 부제를 ‘Designing Designers’로 정한 것은 디자인 전문가를 교육하는 것뿐 아니라 디자인 교육과정 자체를 계획하는 것까지 다루려고 했기 때문이다. 조형대 자료도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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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론 포함되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기술교육대, 서울건축학교 등 독자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기관을 다루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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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번은 네이버캐스트의 ‘디자이너 열전’에 올린 원고를 위해 정시화 교수를 인터뷰했던 때였다. 이 전에 전시를 기획하던 때보다는 시간이 지나기도 했고 객관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였다. 정시화 교수도 정년퇴임 이후에 지난 일을 돌아보면서 차분하게 생각을 풀어주었다. 그러면서 발견한 것은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교육과정의 완결성, 또는 학교의 지원 체계, 대외적인 활동보다 더 중요한 동력이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예컨대, 디자인교육전에서는 80, 90년대 교과과정의 변화를 추적하면서 다른 학교들과 비교 분석해 보고 졸업전에서 어떤 결과물들이 나왔는지 살펴보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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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랙티브 미디어 수업,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영상디자인학과,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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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교육을 담당했던 이들의 의식과 태도가 어떠했나 하는 것이었다. 조형대의 경우를 압축해서 보자면 젊다는 것이었다. 교수진이 생물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젊었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이 가능했던 것 같다. 젊다는 것은 여러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었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의기투합할 수 있었음을 뜻한다. 이것이 조형대 교육의 특징이자 강점이라고 하겠지만 좋은 측면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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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학교나 교육의 특징과 강점이 있으면서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디자이너로서, 또 큐레이터로서 여러 전문가들과 만난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조형대의 저돌적이라 할 만큼 열성적이고 성실하며 조직적인 움직임이 적어도 90년대 말까지는 이견이 없을 만큼 적확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일사분란한 그 움직임이 여전히 유효한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말하자면, 우수한 학생 집단이 매년 졸업하는 것보다 어쩌면 다양한 성향을 갖고 다양한 진로로 나아갈 개인들이 배출되는 것이 더 나은 시대가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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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분히 개인적인 판단이긴 하지만 조형대 디자인 교육은 디자이너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일정한 역량을 갖추기 위한 교육 또는 사회 진출을 위한 적정수준의 능력을 갖춘 것에는 성공했다고 본다. 또 지속적인 노력으로 전문 디자이너에 대한 사회적 수요와 기대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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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사회적 수요란 뭔가. 우수한 학생의 역량을 따질 잣대는 또 무엇인가. 그것을 당대의 교육자가 판단하거나 정의할 수 있을까.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교육과정이 탄탄할수록 비전이 명확해서 어쩌면 학생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것은 90년대 말에 한국 국민이 경험한 전지구적 변화, 특히 국내 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포함한 변화를 말한다. 물론 조형대는 전공을 다각화해서 어느 대학들보다도 빨리 대응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우려가 있다. 사실은 쉽게 풀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고 조형대에만 해당되는 우려도 아니다. 핵심은 디자인 교육에 있어서 정책적 대응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우선, 지난 몇 년간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 디자인 붐이 갑작스레 일었다가 가라앉으면서 디자인 전문가들이 혼선을 겪었고 최근에는 대학 전체에 새로운 용어를 동원한 교육 정책이 변화무쌍하게 추진되어 교육 현장은 늘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제는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이니셜로 지칭되는 수많은 사업, 무슨무슨 특성화 사업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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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면 오래전 BK21을 이야기할 때가 참 낭만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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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연장해서 말하면, 앞서 살펴본 조형대의 활동, 즉 교육의 비전을 세우고 열성적인 노력으로 추진해왔던 그 풍경이 낭만적이었다는 것이다. 복잡한 오늘의 상황을 고려할 때, 낭만적인 시대를 기억할 수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몇 십 년 뒤에 다시 이런 글을 통해서 필자의 생각이 기우였다고 할 만큼 멋진 교육 모델이 기록된다면 더욱 행복할 것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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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rong>김상규</strong><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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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랙티브 미디어 수업,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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