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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ranslations:대문/276/ko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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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6-22T15:03:1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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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FuzzyBot: 외부 원본에서 새 판을 가져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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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5-06-24T10:07:5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외부 원본에서 새 판을 가져옴&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영상디자인학과는 조형대학 40년의 역사에서 일곱 번째 학과로 2010년 문을 열었다. 산업화와 정보화시대를 거쳐 새로운 가치창출의 시대를 향하는 전환기에 조형대학은 영상디자인학과를 개설하여 엔터테인먼트문화를 디자인할 전문가양성에 도전했다. 영상디자인학과의 첫 졸업생이 배출된 2014년을 전후로 한국의 명운을 좌우할 국가적 화두로서 창조산업이 대두된 점은 조형대학의 미래비전이 자의적 명분이 아닌 시대적 요구를 통해 설정된 것임을 방증한다. 특히 한국 최초로 Entertainment Design&lt;br /&gt;
이란 개념을 학과명에 도입한 점은 40년 전 처음으로 독립된 디자인단과대학을 설립하고 조형대학이라 명명한 특유의 선견 DNA가 세대를 거쳐 면면히 이어져온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lt;br /&gt;
2010년을 전후로 조형대학은 자동차디자인분야, 콘텐츠디자인분야의 학과 신설을 대학 측과 협의하고 있었으며, 이 중 콘텐츠·영상디자인분야의 개설을 먼저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2010년 본부로부터 30명의 정원을 지원 받아 영상디자인학과를 신설하였다. 이에 따라 시각디자인학과에서 영상디자인 교육을 담당하던 하준수 교수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콘텐츠랩 소속의 오승환, 전승규 교수가 신설 학과로 이적하였으며, 조형관 우측에 위치한 형설관의 7개 층 중 4개 층에 교육공간을 마련하였다.&lt;br /&gt;
2010년 드디어 30명의 1기 신입생이 입학했다. 융합학문을 추구하는 학과의 목표를 살리고자 정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10명의 학생을 수학능력시험 점수로만 선발하여, 실기 중심의 학생 선발에 체질 변화를 시도했는데, 이는 국민대학교의 창의융합프로그램인 지암 Innovator’s Studio1)에 영상디자인학과 학생이 조형대학 1호 장학생으로 선발된 결과로도 나타났다.&lt;br /&gt;
5년 간 교원의 구성에도 단계별 변화가 있었다. 개설 시 이적한 3인의 교수는 교내 학사 경험을 바탕으로 학과의 정착에 주력하였으며, 전승규 교수는 스토리텔링과 한국문화원형을, 오승환 교수는 뉴미디어디자인, 그리고 하준수교수는 영상디자인과 다큐멘터리를 맡으며 핵심 전공교육을 담당하였다. 4개 학년이 모두 충원된 2013년에는 프랑스 국적의 장 줄리안 푸Jean Julian Pous 교수를 초빙하여 3D애니메이션과 시각특수효과VFX 분야의 국제교육을 시작했다. 2015년 영상커뮤니케이션융합디자인 분야에 박제성 교수(전 이화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디지털비디오프로덕션 교육에 손영모 교수(전 서울예대 영화과 교수)가 임용되었다. 이들 전임교원은 교육과 더불어 국민대학교 평의원과 환경디자인연구소장(전승규), 조형대학 부학장(하준수) 등 여러 행정보직을 맡으며 대학본부와 조형대학의 대내외 교무에도 적극 참여하였다.&lt;br /&gt;
전임교원과 더불어 산업연계 목적으로 초빙된 비전임 겸임교수1)와 100% 실무 전문가로 위촉된 교외 강사진은 현장의 실용교육의 밀도를 더욱 높였다. 이러한 아카데미즘과 실용주의의 조화를 갖춘 교수진의 노력으로 영상디자인학과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애플컴퓨터, 어도비시스템, KBS, 소프트뱅크코리아, 매크로그래프, SKⅡ, 한국수자원공사 등 국제적인 기업·기관과 다양한 형태의 산학협력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한국 최초로 할리우드 영화의 특수효과를 수주한 매크로그래프의 시각특수효과팀이 직접 수업을 운영하며 우수한 학생에게 인턴의 기회를 제공하는 산학연계 수업2)이나 KBS가 CG 작업에 투입된 학생들에게 한 학기 전액 장학금을 증여하는 방식의 교육지원 프로그램3)이 그 좋은 사례이다.&lt;br /&gt;
정규수업과 함께 학생들의 자율적 활동도 자리 잡았다. 바로 ‘크루활동Crew Donation’과 ‘스크리닝’이다. 크루는 동&lt;br /&gt;
료의 작업에 참여하여 촬영, 편집, 녹음, 색보정, 모션그래픽, 특수효과, 케이터링Catering 등 세분화된 역할을 맡는 일원을 의미한다. 이는 학번·학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특기를 살려 작업에 동참하는 주체적인 행위로서 한국의 많은 디자인학과에서 선배의 작업을 도와주는 후배 도우미-일명 ‘시다’4) 활동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적극적 협업이다. 또 하나의 핵심 활동인 스크리닝은 일종의 상영회이지만,‘Screening’이란 단어가 지닌 ‘상영하다’와 ‘진단하다’의 중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다른 명칭을 쓰지 않고 있다. 매 학기 말, 역시 학술회의장에서 열리는 스크리닝은 완성된 우수작만을 선별하여 보여주는 예사 상영회와는 달리, 진행 중인 작업, 미완성 작품, 신입생 워크숍 등 조금은 부족하지만 동료들과 함께 나누고 피드백을 받고자 하는 작품까지 모두 선보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이다.&lt;br /&gt;
학과의 출범 이후 첫 졸업생이 배출되기 전에도, 재학생들의 주목할 만한 활동과 성과가 있었다. 2014년, 제1기로 입학한 강석민 학생은 은퇴하는 노교수의 열정을 통해 아우디의 브랜드 철학을 상징화한 졸업 작품 ‘Forever Young’으로 아우디디자인챌린지의 영상부문 최고상을 차지하였으며, 사운드디자인부문에서는 동기인 손윤지 학생이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었다. 아우디디자인챌린지는 아우디 독일 본사에서 후원하는 전문디자인공모전으로 총 상금 규모가 디자인분야로서는 가장 큰 1억 원에 달하며, 각 부문별 최고우승자에게는 2천만 원, 파이널리스트에게는 2백만 원의 상금을 수여하고 있다. 또한 같은 해 역시 1기 김민정 학생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2°C라는 키워드로 명쾌하게 표현한 졸업 작품으로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주최한 디지털영상애니메이션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4년, 1학년에 재학 중인 박지윤 학생(14학번)은 ACA World Championship5)에서 1위를 차지하며 한국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는데, 이는 영상디자인학과의 AATC 인증교육이 거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많은 학생들의 크고 작은 수상과 전시 실적이 이어졌지만, 이러한 성과의 의미는 최근 학생들이 졸업&lt;br /&gt;
후를 대비하여 가열하게 준비하는 소위 ‘스펙쌓기’가 아닌충실한 교육과 학습의 결과라는 점이다. 학생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고무적인 성과로 학생들에게 강한 영감을 주었는데, 두 번째 실습조교를 맡은 이태호 동문(시각디자인학과 08학번)은 미국 국무성의 풀브라이트 장학생6)으로 선발되어 미국의 명문 예술대학인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의 영상과에 입학했다. 누구든지 학과의 울타리 안에서 결실을 맺으면 모두의 역사가 되는 순간들이었다.&lt;br /&gt;
2014년 처음으로 4명의 첫 졸업생이 배출됐다. 고은별, 구한얼, 구혜원, 임솔희. 어디든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특별함이 있다는 뜻이겠으나, 이 ‘첫’ 이라는 의미는 앞으로 이 학생들, 그리고 영상디자인학과가 극복해야 할 금기어이기도 하다. 첫 졸업생이 아닌 빛나는 졸업생으로 신설학과가 아닌 선두 학과로 스스로의 호칭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졸업생이 처음 배출되는 해에 일반대학원에 영상디자인학과가 개설되며 네 명 중 한 학생의 진학으로 이어졌다. 신설의 순간보다 이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한 학과의 역사를 만든다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놓치기 쉬운 진리를 보여주는 대목이다.&lt;br /&gt;
대학교육의 성과는 한두 가지 시금석으로 진단되는 것이 아니며, 무엇보다 대단히 장기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영상디자인학과에 대한 평가는 어쩌면 다음 40년 후에나 논하는 것이 온당할 지도 모를 일이지만, 학교 본부와 학과의 교수, 학생 그리고 직원이 ‘애정’이란 강력한 동력으로 채워온 지난 5년은 분명 하루하루의 완성이 쌓아온 소탈한 발전의 시간이었다.&lt;/div&gt;</summary>
		<author><name>FuzzyBot</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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