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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디자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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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파일:Vd_001.png]] <br> 시각디자인학과 학생스튜디오 전경 <br> <br> [[파일:Vd_002.png]] <br> 책: 헬베티카 시대를 읽고 문화를 창조하다 1975년 조형학부의 시작과 함께 장식미술학과에서 시각디자인의 교육을 시작했다. 1976년 장식미술학과가 산업미술학과로 명칭을 바꿨으며, 1977년 산업미술학과는 공업디자인학과와 시각디자인학과로 나누어짐으로써, 학과 단위의 전문화된 시각디자인 교육이 시작되었다. 주로 장식미술, 도안미술 일색이던 당시 학과 명칭에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디자인 교육 사상 국내 최초이며, 이는 한국 최초의 외래어 학과 명칭이기도 하다. 시각디자인학과의 40년 역사는 출범 초기의 인쇄매체와 광고를 주로 다루는, 이른바 그래픽 디자인 중심의 교육으로부터 매체기술의 혁신적 발전에 힘입은 영상매체나 멀티미디어 영역으로까지 확산된 교육으로의 이행이었다. 이는 보다 세분화, 전문화되고 첨단 매체 친화적인 교육을 위한 커리큘럼을 개발하고 수행했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초기 인쇄 매체 위주의 교과목인 색채학, 사진학 등의 과목을 전문적인 디자인 중심의 색채디자인, 사진디자인으로 교과과정을 개편하는 한편, 비디오그래피, 씨네마토그래피 등 시대에 한발 앞선 교과과정을 도입함으로써 시각디자인 교육의 지평을 확장하였다. 또한 실기교육과 함께 디자인 이론과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력, 언어 구사능력 등을 포함한 인문학적 교육을 병행하여 기술과 함께 문화적 소양을 강화시켰다. 시각디자인학과는 출범 초기부터 안정언, 정시화, 김인철, 윤호섭 교수와 같은 기존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유능하고 열정적인 교수들을 영입함으로써, 국제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교과과정을 개편함과 동시에 학생들의 조형적 기량과 디자인 감각을 효과적으로 신장시킬 수 있는 실질적이고도 참신한 형식의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 디자인계의 선구적인 이론가였던 정시화 교수는 교육 전반의 바탕이 되는 디자인이론을 체계화시킴으로써 시각디자인학과뿐만 아니라 조형대학 전반의 교육 방향과 정체성을 구축했다. 학과의 교육은 이후 유영우, 백명진, 전승규, 김민, 이준희, 김양수 교수 등의 중진들에 의해 더욱 구체적으로 정립되었다. 그리고 세분화된 각 영역에 최고의 교수들이 합류함으로써, 통합적이면서도 선진적인 시각디자인교육을 이어왔다. 시각디자인학과는 1999년에 당시 김인철 학장의 주도로 출범한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의 체계를 구성함에 있어서도 크게 공헌했으며, 대학원 내 시각디자인을 기반으로 하는 여러 전공을 개설함으로써 그 규모를 더욱 확장했고 신설된 박사 과정을 통해 고급 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했다. 한편, 시각디자인 분야의 팽창은 2010년 조형대학에서 신설된 영상디자인학과의 출범으로 이어졌으며, 전승규, 하준수, 오승환 등 시각디자인 분야의 교수들이 신설학과로 이적해 영상디자인학과의 교육 체계와 내용을 정립시켰다. <br> <br> [[파일:Vd_003.png]] <br> 2012년도 졸업전시회 풍경 <br> <br> [[파일:Vd_004.png]] <br> 2013년도 쓸만한구석 전시포스터 <br>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는 지난 40년 동안 교육 내용, 교수 방법, 평가 제도에 있어 높고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왔다. 학과에서는 매년 1학기의 교내 졸업작품전, 2학기의 교외 기획전시를 운영하는데, 교외 전시는 다른 대학의 일반적인 졸업전시회와는 달리 뚜렷한 주제를 갖는 기 획전의 형식으로 개최됨으로써, 학생들의 작품 속에서 주제의식과 이를 해석하는 창의력을 볼 수 있는 전시회로서 외부에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시각디자인학과의 졸업과정은 4차에 걸친 엄격한 심사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졸업을 위해서는 모든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까다로운 심사과정은 학생들에게 학습에 대한 명확한 동기는 물론 조형대학 시각디자인학과 졸업생으로서의 높은 자부심을 부여한다. 학생들의 진로지도와 비전창출을 위하여 매 학기 주제를 정하여 외부 디자이너들을 초빙하여 진행하고 있으며 선배들과 학생들의 유기적인 관계형성 및 진로지도를 위한 선후배 멘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2013년도에는 졸업한 선배들이 후배들을 위하여 《FYI: 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당신에게 펼쳐질 일들》이란 제목으로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또한 실험적인 수업의 결과물들이 학생들의 주도아래 《Dear Sgemister》, 《헬베티카》, 《온돌1, 2》, 《시각 현상탐구:한반도》, 《타이포그래피 챕터99》 등 다양한 형식으로 출판하고 있다. 나아가 3년에 한번씩 조형대학차원에서 열리는 조형전에서 커리큘럼을 입체적으로 전시하는 한편 시각디자인 분야의 컨퍼런스를 진행해오고 있다. 실험적인 교육은 물론 학생들의 실무적 경험을 중시하여 30여 개의 디자인분야 산학연계 기업들과 현장 실습교육을 진행해오고 있으며 디자인 리더십을 통한 창업관련의 교육에도 노력을 경주해왔다. 이러한 교육방침에 따라 졸업한 동문들은 ‘미디어포스’, ‘그린나라’, ‘포스트비주얼’, ‘디자인피버’ 등 국내 각 디자인 전문분야를 대표하는 기업들을 이루어냈다. 최근에는 국내소셜펀딩의 대표적인 기업 ‘텀블벅’, 소규모 디자인스튜디오 ‘선샤인 언더그라운드’ 등 새로운 시도들이 그 뒤를 잇고 있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는 국제교류의 확대와 체계화를 위하여 주요핵심수업들을 영어수업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장 폴로Jean Georges Poulot(2004년 임용), 크리스 로Christopher J. Ro(2010년 임용) 교수 등 해외 우수인재를 교수로 초빙하여 국제화된 교육을 진행해왔으며 미국의 칼아트California Institute of Arts, US, 프랑스의 HEAR Haute ecole des arts du Rhin France, 태국의 실파콘Silpakorn University,Thailand 등 세계 유수의 디자인 대학과의 연계를 통하여 전시, 교환학생, 워크샵 등 여러 프로그램으로 세계 속의 시각디자인학과로서 자리매김해가고 있다.학문적 실험성과 현장중심 교육을 바탕으로 시각디자인학과 학생들은 다양한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ADC, TDC, 깐느광고제 등 국제적인 디자인 경연대회뿐만 아니라 국내외 유수 디자인 어워드에서 100여 건이 넘는 수상실적을 자랑하고 있다. 2007년에는 국내 최초로 어도비 우수디자인상Adobe Design Achievement Awards 프린트 디자인 부문에서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4학년이었던 안수진이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고, 다음해인 2008년, 서동주 학생이 같은 대회 7개 부문 중 3개 부문 에서 최우수상하기도 하였으며, 2011년에는 이송은 학생이 애니메이션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매해 최우수, 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지속적으로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br> <br> [[파일:Vd_005.png]] <br> 2014년도 졸업전시회 ‘파티션파티’ 포스터(부분) <br> <br> [[파일:Vd_006.png]] <br> ‘파티션파티’ 전시회 풍경 <br> 40여 년의 역사와 함께 무수히 많은 졸업생들도 배출되어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시각디자인학과 출신의 디자이너들은 광고, CF 등에서 많은 두각을 나타내어 제일기획, 맥켄에릭슨, LG애드, 이노션, 대흥기획, TBWA 등 국내유수의 광고회사에서 그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거쳐 지금은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송성각을 비롯하여, 역시 제일기획을 거쳐 지금은 서원대학교 교수인 김규철, 나라기획, 제일기획, TBWA 등을 거친 김호철 등은 시각디자인학과 출신의 광고인이다. CF 분야에는 스타 감독들이 유독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세종문화를 거쳐 지금은 Boom Production의 대표인 김한수를 비롯하여, 최근 유명 광고들 대부분을 감독한 이성호, 염규복, 그리고 최근에는 서태지 뮤직비디오 등을 연출한 한동욱 등이 있다. 시각디자인학과는 교과과정에서 인터랙티브미디어 분야를 초기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영향으로 허승일(미디어포스), 설은아(포스트비주얼), 노진영(디자인피버) 등 동문들이 창업을 통해서 뉴미디어 디자인 분야를 이끌어가고 있다. 교육분야에서도 다수의 졸업생들이 활동하고 있는데 청주대 학교 김태철, 영남대학교 김해태, 호서대학교 박재모, 숙명여자대학교 유택상, 상명대학교 정재욱, 아주대학교 이주엽, 이경원 등이 교육자로서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언론재단에서 근무하는 최성훈 등 정부 부처에서 디자인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 이외에 배우이자 방송인 이세창, 만화가 양영순 등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strong> 시각디자인학과의 교육</strong><br> 시각디자인학과의 교육 목표는 전문 기술과 지식의 습득뿐만 아니라 문화 창조자 및 해석자로서 자질을 배양하는 것이다. 즉, 문화를 이해하는 통찰력과 이것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는 조형능력을 갖추고 정보생산과 유통에 이르는 전 과정에 참여하여 창의적 사고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제시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교과 과정은 그래픽 트랙, 브랜딩 트랙, 미디어 트랙으로 나누어지며 다양한 매체의 경험과 전문적 깊이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6년 기초교과과정의 기본적인 재정비에 이어 2012년 현재의 교과과정이 정립되었다. 이때 교과과정 연구의 목표는 기술 및 정보의 급진적인 발전양상에 따라 시각디자인 교육에서 필요한 기초조형능력을 규정하고 이를 세부분야와의 관련성에 따라 정리하였다. 이는 표현력 이전에 선행해야 할 정보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와 분석 그리고 각 과정과 기술을 융합할 수 있는 종합적인 사고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즉 전통적인 디자이너로서 갖추어야 할 조형능력을 새로운 교육방법을 통하여 강화하는 동시에 인문학적인 지식과 안목에 근거한 창조적 제안을 능동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사고 융합적 디자인과목을 개설하였다. <br> <br> [[파일:Vd_007.png]] <br> 2015년도 MT <br> 이에 따라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교과과정이 마련되었다.2012년 이후의 교과과정은 크게 1-2학년의 ‘기초’ 과정, 3학년의 ‘심화, 실험’ 과정, 4학년의 ‘종합, 창작’ 과정으로 구성된다. 1, 2학년의 기초과정에서는 ‘타이포그래피1, 2’와 ‘그래픽디자인1, 2’를 중심으로 시각 조형 형식과 논리를 맥락 중심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점을 두며 동시에 ‘디자인과 글쓰기1, 2’ 수업을 통하여 정보에 대한 이해와 논리적 접근능력에 집중한다. 또한 ‘미디어디자인’ 과 융합교과목인 ‘디지털드로잉’, ‘디지털모델링’ 등을 통하여 새로운 표현 매체와 기법을 교육한다. ‘전산1, 2’와 ‘디자 인워크샵1, 2’, ‘인터랙션디자인 1’을 통하여 프로그래밍 능력과 이를 통한 디자인 표현능력을 연계하여 정보화 시대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3학년은 이러한 기초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그래픽-브랜딩 계열, 이미지-일러스트레이션 계열, 뉴미디어-인터랙션 계열로 크게 나누어지며 각자의 세부적인 관심에 따라 보다 심도 있는 교육 및 실험적 주제접근이 이루어진다. 4학년은 학문적 관심과 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하나의 단일한 프로젝트를 구성하고 이의 개념, 내용, 형태가 융합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구성하고 있으며 이러한 교육이 실질적인 진로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디자인전략1, 2’, ‘캡스톤디자인스튜디오 1, 2’ 등의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은 기존의 시각디자이너가 가져야 할 기초적인 조형능력을 보다 새로운 방법으로 구체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단순한 실무능력 배양만이 아니라 이를 학문적인 체계 안에서 사고할 수 있는 종합적이고 능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었다. 동시에 새로운 시대정신에 대응해 조형능력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사고력, 매체제작능력, 리더십, 도전의식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후 문화와 산업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세부적인 조정을 거듭하여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발전을 추구할 것이다 --------- {| class="wikitable" |+ 학과연표 |- ! 연도 !! 내용 !! 비고 |- | 1973 || 장식미술학과 신설 || |- | 1974 || 정시화 교수 임용, 2007년까지 재직 || |- | 1975 || 조형학부 신설 || |- | 1976 || 김인철 교수 임용, 2013년까지 재직 || |- | 1977 || 산업미술학과로 명칭 변경 || |- | 1980 || 윤호섭 교수 임용, 2008년까지 재직 || |- | 1983 || 산업미술학과가 공업디자인학과와 시각디자인학과로 분리 || |- | 1985 || 유영우 교수 임용, 2012년까지 재직 || |- | 1990 || 정시화 교수 조형대학 제5대 학장으로 취임 || |- | 1992 || 백명진 교수 임용, 1994년까지 재직 || |- | 1994 || 윤호섭 교수 조형대학 제7대 학장으로 취임 || |- | 1995 || 전승규 교수 임용, 2010년 영상디자인학과로 전보 || |- | 1998 || 김인철 교수 조형대학 제9대 학장으로 취임 || |- | 2000 || 김양수 교수 임용 || |- | 2001 || 이준희 교수 임용 || |- | 2002 || 유영우 교수 조형대학 제11대 학장으로 취임 <br>장혜원 비정년 전임교수 임용, 2005년까지 재직 || |- | 2004 || 장뽈(Jean Georges Poulot) 교수 임용, 2007년까지 재직 || |- | 2005 || 하준수 교수 임용, 2010년 영상디자인학과로 전보<br>정재욱 비정년 전임교수 임용, 2010년까지 재직 || |- | 2006 || 성재혁 교수 임용<br>이재곤 비정년 전임교수 임용, 2010년까지 재직 || |- | 2010 || 정지홍, 반영환, 조현신, 김민, 변추석 교수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으로부터 시각디자인학과로 전보<br>변추석 교수 조형대학 제15대 학장으로 취임 <br>노지수(Christopher J. Ro) 교수 임용, 2014년까지 재직<br>정지홍 교수 퇴직 || |- | 2011 || 정진열 교수 임용 || |- | 2012 || 변추석 교수 조형대학 제16대 학장으로 연임<br>정연두 교수 임용<br>이지원 교수 임용 || |- | 2013 || 최승준 교수 임용<br>박경근 교수 임용, 2014년까지 재직 || |} --------- <strong>외부칼럼 | 40년의 인연</strong><br> <br> <br> [[파일:Vd_008.png]] <br> 김현 ㈜디자인파크 대표 <br>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조형대학과는 어떤 관계가 있으셨는지요? 각별한 인연이죠. 저와 교수님들과의 인연이 그렇고요, 제가 운영해 온 디자인전문회사 ‘디자인파크’와 깊은 인연이 그러합니다. 하나 더한다면 80년 대 중반부터 8년 반 동안 조형대학에서 강의한 것 또한 소중한 인연이지요.<br> 정말 여러 겹의 인연이네요. 교수님들과의 인연부터 말씀드리지요. 제가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인 5년제 국립경기공업고등전문학교를 마치고, 현재 중앙대학교인 서라벌예술대학 3학년으로 편입했던 1970년에 정시화 교수님의 강의를 처음 들었습니다. 늘 시작 전에 강의실에 도착해 정확히 마감 시간까지, 때론 시간을 넘기며 열강하시는 모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졸업 후에 뵐 때도 “필드에서 열심히 뛰는 사람이 중요하다. 기운 내서 잘 버텨라”라고 늘 애정 어린 격려를 주셨습니다. <br> 1970년이면 조형대학이 생기기도 전인데요. 김인철 교수님과는 학창 시절부터 어찌어찌 알게 되어 40년 지기 친구가 되었습니다. 연배는 저보다 2년 위지만 스스럼없이 대해 주시지요. 제가 직장생활을 접고 ‘디자인파크’를 시작했을 때부터 10년 이상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셨지요. 디자인회사의 기본철학과 이념, 그리고 기획서 작성부터 전술 전략에 이르기까지 조언해주시며 기틀을 잡아 주셨죠. 당시 다른 디자인회사들의 큰 부러움을 샀죠. 어떻게 그런 환상적인 콤비를 이룰 수 있냐고. 교수님은 술자리에서도 한 수 위지요. 아무리 많이 해도 흐트러진 모습이 없었고, 술자리에서조차 항상 도움이 될 만한 스토리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근래에는 오랜 기간 ‘단’을 수련해서 ‘사범을 심사하는 사범’의 경지에 올랐고, ‘태극권’에도 심취하셨는데요, 제 생각에는 이게 모두 좋아하는 ‘주’님을 오래도록 모시고픈 작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대작하기 위해서 북한산 새벽 등반으로 심신을 연마한 지 올해로 29년째입니다.<br> 건강을 위해서, 술을 위해, 정말 좋은 작전인 것 같습니다. 윤호섭 교수님은 저에겐 큰 형님 같은 분이셨죠. 1976년 봄에 ‘대우그룹’ 디자인팀에 총책임자로, 나는 좋게 말하면 오른팔 역할의 보좌역으로 5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만능 스포츠맨에 배우 뺨치는 멋진 인상, 후리후리한 몸매,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과 몸에 밴 겸손은 누구라도 매력을 안 느낄 수 없었죠. 윤 교수님은 디자인부문 총책임자로서 확실하게 부서직원들을 믿어주었고, 외부로부터의 간섭이나 압력을 백퍼센트 차단해 주셨습니다. 그런 분과 직장생활을 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죠. 근래, ‘그린디자인’이라는 커다란 테마를 붙들고 매진하시는 모습을 보며 역시 그 분답다고 생각합니다. <br> 세 분 모두 시각디자인과의 어른들로 이제는 정년퇴임을 하셨는데요, 현직에 계신 교수님들과도 교류가 있으셨죠? 물론이죠. 우선, 테크노디자인대학원의 김민 교수님께는 많은 신세를 졌죠. 저희 회사와 산학협동 프로젝트를 여러 차례 진행했고, 그때마다 대학원생들을 독려하며 애를 많이 쓰셨죠. 변추석 교수님은 중앙대 후배로 협회활동을 함께하며 가깝게 지냈죠. 변 교수가 대학으로 오기 전에는, 저의 회사가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LG그룹의 광고대행사에서 근무했으므로 더 친숙해졌지요. 이준희 교수는 1988년 제 강의를 들었는데 유학 후에 모교의 교수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감개무량했습니다. 김양수 교수와는 부친이신 김영학 교수님으로부터 경기공전 시절 ‘제도학’ 을 배웠던 인연이 있습니다. 그 밖에도 김철수, 유영우, 전승규, 하준수, 성재혁, 정도성 교수 등 많은 분들과의 관계도 소중합니다. 많은 교수님들과의 사연이 끊임없네요. 세상사가 결국 사람 사이의 일입니다. 조형대학과 우리 회사와의 인연도 특별합니다. 많은 시각디자인학과 출신들이 입사하고 함께 일을 했는데요, 그 중에서도 1994년에 졸업한 ‘채영’씨는 현재 부사장이며 디자인총괄 디렉터로 21년째 근무 중인, 실질적으로 회사를 이끌어가는 주역입니다. 그의 부인 역시 ‘테크노디자인대학원’ 출신입니다.<br> 8년이나 강의를 하셨던 80년대 중반의 말씀을 해 주시겠어요? 중요한 얘기를 할 차례군요. 대우그룹에 근무했던 1978년부터 모교인 중앙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디자인파크’를 시작한 1984년부터 국민대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두 학교 모두 4학년 수업을 같은 내용으로 진행했습니다. 단번에 비교가 되었죠. 당시 우리나라 디자인 분야는 서울대와 홍익대, 소위 ‘관악파’와 ‘와우파’가 세력을 양분하고 있다고 얘기할 때였습니다. 다른 많은 대학들이 ‘디자인과’를 시작하는 단계였고, ‘서라벌예술대학’이 역사도 짧고 인원도 많지 않았는데 똘똘 뭉쳐 열심히들 하는 바람에 ‘다크호스’로 떠오른다는 얘기가 돌 때였지요. <br> 디자인계의 ‘관악파’, ‘와우파’, 그리고 ‘다크호스’, 점점 재미있어지는데요. 이때 중앙대학교에서는 디자인학부를 포함한 ‘예술대학’이 경기도 안성으로 가게 되면서 분위기가 다소 바뀌는 느낌이었고, 반면 국민대학교 조형대학이 무서운 속도와 힘으로 치고 올라온다는 말이 여러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되었습니다. 그러던 1984년에 제가 두 학교에서 동시에 수업을 진행했던 것입니다.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면서 저로서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국민대 조형대학이 부럽기도 했죠. ‘다크호스’가 바뀐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고 할까요. 시각디자인을 포함한 조형대학 전체가 디자인교육 방법과 실행 면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게 된거죠. 주변으로부터 정시화, 김인철, 윤호섭, 세 분의 힘이 시너지효과를 낸 것이라는 얘기도 여러 번 들었습니다.<br> 우리 대학에 대한 최근의 평판은 어떤지 들으신 적이 있나요? 솔직히 최근 정황은 잘 모릅니다. 세상이 많이 변해서 옛날의 잣대로 지금을 잴 수도 없을 뿐더러 의미 또한 다르니까요. ‘조형대학’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지만, 국내의 수많은 대학의 디자인 전공자들이 모두 열심히 합니다. 2002년 기준으로 정규디자인전공 졸업생이 매년 3만 6천 명이 배출된다지요? 또 무서운 거인으로 등장하는 바로 옆나라 중국은 매년 수십만 명의 디자이너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판이 달라졌다고 봐야죠. 경쟁은 치열해지는 가운데 저희는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데요, 정리의 말씀을 겸해서 저희 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도 특별한 성장 과정을 거치며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습니다. 디자인분야도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놀랄 만큼 발전해 왔지요. 이젠 세계를 상대로 기준을 잡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낮은 수준에서 보통 수준으로, 보통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울 수도 있지만, 높은 수준에서 한 뼘 더 높은 수준으로 올리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일이지요. 우리의 디자인분야가 바로 이런 지점에 서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복잡해지고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덴티티디자인’을 40년 넘게 해오면서 제가 느끼는 것도 똑같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이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나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인가? 나의 경쟁자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 나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나? 나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그것을 위해 어떤 일을 어떤 순서로 해야하나? 이상의 질문들에서 ‘나’를 ‘조형대학’으로 바꾸면 그 안에 모든 답이 있다고 봅니다.<br>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저희들과의 소중한 인연도 계속 이어주시길 빕니다. 인연에 관해 마지막으로 하나 더할 것이 있는데요. 아들 녀석이 ‘조형대학 시각디자인’ 출신(’12년 졸)으로, 지금은 영상디자인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부형이기도 했죠.<br> <strong>김 현</strong><br> ㈜디자인파크 대표 ------------ <strong>동문 글 |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꾼다</strong><br> 아침마다 등교시간에 맞춰 숨을 헐떡이며 달리던 모교의 언덕길은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 때 등하교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늘 다짐했던 말이 있었다. ‘하면 된다, 하면 된다, 하면 된다’ 이 말을 중얼거리며 매일매일 학교 언덕을 오르내렸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거의 매일 수업이 끝난 후 인사동에서 광화문으로, 충무로로 걸어 다니며 화랑에 그림을 보러 다녔다. 학교에서 내준 과제를 밤새워 해 놓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 아쉬워하기도 하면서도 틈날 때마다 학교 밖으로 전시를 보러 다니던 내게 정시화 교수님께서 학교에 좀 붙어 있으라는 주의를 하실 정도였다. 2학년 때 충무로에서 본 동판(메조틴트)화가 김구림 선생의 전시를 보고, 판화를 배우고자 10여 년을 선생님께 매달렸다. 지금까지 나는 시각디자인과 함께 회화 작업도 병행해 오고 있다. 오늘날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가 있기까지 정시화 교수님이 틀을 세우시고, 윤호섭, 김인철 교수님이 살을 붙이셨고, 유영우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교수님들이 디자인대학으로서의 명성을 일으키셨다. 생각하기에 그 분들의 노력에 존경을 바친다. 사람들은 만드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고들 말한다. 공감한다. 이제는 디자인이 많이 보편화되어 디자인에 대한 인식도 폭넓고 그에 대한 안목도 깊다. 최근 젊은 디자이너들의 다양성과 전문성이 시선을 끈다. 지금까지 시각예술의 주도 세력이던 회화 영역에서도 점점 디자이너들의 출현을 보게 되어 나름 반갑다. 그리고 작가주의 디자이너의 출현으로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변화하는 움직임을 볼 수 있어 반갑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도 지금까지 쌓아올린 명성을 지키면서 또 다른 발전을 할 것이라 기대해 본다.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못 바꾼다. 나의 뿌리는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다. <strong>김태철 장식미술학과 시각디자인전공, 75학번</strong><br> 현 청주대학교 예술대학 시각디자인과 교수<br> 전 한국예총 청주지부장<br> 전 한국미술협회 충청북도 지회장, 청주시 지부장 <br> 전 한국북아트협회 회장<br> 전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회 부회장<br> <br> <br> [[파일:Vd pro 001.png]] <br> 박철희, Adidas Menifesto <br> <br> <br> [[파일:Vd pro 002.png]] <br> 서원경, Pathfinder Award <br> <br> <br> [[파일:Vd pro 003.png]] <br> 소원영, Small World <br> <br> <br> [[파일:Vd pro 004.png]] <br> 강수영, Daily Moment <br> [[Category:조형대학]] [[Category:시각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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